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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방

우리나라 최초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감정관 김형영

“같은 것과 다른 것을 식별함은 어렵지 않습니다


김형영(제일문서감정원 대표) 문서감정사는 반백년 넘게 문서 시시비비를 가려왔다. 1979~1992년까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문서감정실장으로 근무하며 문서감정의 체계를 잡았다. 퇴직 후 20년 넘게 서초동 법원 앞에서 문서감정원을 하고 있다. 이제는 문서를 손에 쥐고 보면 감이 온다고 한다. 대부분 법정 다툼의 문서이기에 세밀하게 필적, 도장, 작성년도, 위조, 변조, 지문, 사인 등 종합적인 검토를 하고 감정서를 발급한다. 돈이 걸린 다툼에서 누군가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 직업으로 난관도 많았다. 법정에 서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과학적인 근거를 기준으로 명확하게 제시하는 그의 감정은 말과 추측이 통하지 않는 법정에서 도리어 인정을 받는다.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사건을 보며 김 대표를 취재하게 되었다.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사건


1991년 천경자 화백은 미인도가 자기 작품이 아니라 고 부정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국으로 떠나 2015년 타계했다. 현재까지 유족과 국립현대미술관과의 다툼은 진행 중이다. 2016년 12월 19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미인도는 진품으로 판정된다.’고 공지했다. 며칠 뒤인 12월 27일 국제적인 과학감정전문기관인 프랑스의 뤼미에르 테크놀러지 장 페니코 대표는 직접 한국을 방문해 검찰발표에 대해 반박을 하며, 진품일 확률이 0.0002%라고 했다.


2017년 5월 24일 검찰은 유족의 항고를 기각함으로써 진품이라는 데 힘을 실어줬다. 이런 와중 국립현대미술관은 2017년 4월 19일 미술관 소장품 <균열>전을 열며, 작가의 이름을 빼고 미인도를 전시했다. 1991년 미인도 작품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있었을 때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도 필적 의뢰를 했었다는 소식을 듣고 수소문해서 찾은 사람이 당시 김형영 문서감정실장이다.





미인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필적 의뢰


김 대표에게 물었다. “당시 실장님이셨으니 이 사건에 대해 잘 알고 계시죠?” “네 그렇습니다. 윗분의 지시가 있어 필적 감정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근무할 당시 국과수는 범죄에 대한 의뢰 소견만을 공식 문서로 낼 수 있었습니다. 필적 감정은 했지만, 국가 기관에 근무했던 직원으로서 이 일에 대해 말할 수 없음을 양해 바랍니다” 기자로서는 맥빠지는 답을 들어 필적 감정에 관해 물었다.



필적 감정


문서나 미술품 감정에서 주요 분석요인 중 하나가 필적이다. 필적감정을 위해서는 입체현미경, 고정밀영상 투영기. 계측기 등 과학기기를 이용하여 필의 구성과 배자의 형태, 운필방향과 각도, 필획 간에 연결되는 위치와 간격, 기필부분과 종필 처리형태 등을 비교 검사하고, 기재과정상의 변화상태 및 개인의 잠재습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대체적으로 위조 필적은 곱고 닮게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고 한다. 50년 넘는 세월 동안 필적 감정은 최첨단 장비를 동원한 관찰과 오랜 경륜에서 오는 종합적인 감과 분석 능력에 의한 가설 그리고 검증을 하는 과학적인 단계를 통해 하고 있다.





김형영 문서감정사


1939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해방되던 해 서울로 왔다. 고학으로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글씨를 정갈하게 잘 쓰는 소질을 살려 인장업을 시작했다. 꼼꼼하고 정확한 성격에 맞아 5년만에 을지로에 문화당이라는 인장·인쇄소를 내어 사업을 하던 중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공채로 문서분석실에서 일을 시작했다. 인장과 출판을 하던 경륜과 파고드는 세심한 작업스타일이 인정받아 2년만에 우리나라 최초 문서감정관이 되었으며, 문서감정실장으로 13년을 근무했다.


인장에 관해서 「인각교법」, 「인장보감」 도서를 출판했으며, 1981년 대한민국 전통예술대상전 전각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1998년부터 현재까지 일본 문서감식학회 특별회원이며, 한국법과학학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법연수원과 법무연수원에서 문서감정 강사를 역임하였으며, 문서감정분야 최고전문가로 법조인들이 인정한다. 대표적인 일례로 2014년 강남에 있는 갤러리 대표의 그림 사기사건이 있었을 때 모 미술협회에서 단순히 위작이라고 했던 작품의 사실 여부를 가리는 재판에서 필적감정의 과학적 근거를 들어 승소한 판례가 있다.


일에 있어서는 철두철미한 성격에 융통성 없다는 평을 듣지만, 가정에서는 인자한 아버지로 신귀분 여사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다. 아들들은 서울대에서 딸은 연세대에서 모두 전자공학을 공부한 수재집안이다. 장남 홍규는 넷마블컴퍼니 부사장으로 있으며, 박사학위 받은 차남 익규는 현대자동차에. 딸 지혜는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진·위라고 하는 것에 대한 근거를 밝혀라


미인도 사건을 보며 김 대표를 찾아갔던 터라 미술품의 진위를 가리는 데는 어떤 방법이 있을지 물었다. “작가의 필적뿐만이 아니라 분석해야 할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재료, 작가의 시기에 따른 화풍, 소장 경위 등 과학적인 분석과 아울러 각 분야 전문가들의 안목이 중요합니다. 누가 미술품 진위판정에 참여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미술품이 진·위라는 판정을 내렸는지 설명이 있어야 의뢰인이 이해가 가고 공신력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요? 작금의 현실은 작품 사진과 함께 진·위 한글자만 감정서에 써주니 미술품 진위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다시 물었다. “김 대표의 문서감정 여부는 100% 확신할 수 있나요?” “그렇습니다. 비교 분석할 수 있는 신뢰 자료가 충분할 때는요. 감정서 결론은 3가지 중 하나입니다. 자료가 충분치 않을 때는 당연히 이유를 적어 감정불가라고 합니다. 어떤 자료를 근거로 감정을 했으며, 그 방법과 결과에 대해 소상히 밝힙니다. 제 의견과 다른 사람은 저와 같이 감정사항, 방법, 소견, 결과 등을 말이 아닌 서류로 만들어 자기의 의견을 충분히 밝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쉽게 말을 하고 발표를 해요. 예를 들어, 한 방송사의 예전 골동품 감정하며 딱 떨어지게 200년 전이라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몇 년에서 몇 년 전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이 말
이 정확한 거죠.”





취재후기


2008년 5월20일 <미술품 진위 감정의 비밀> 소제목을 단 「眞相(진상)」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의 저자 이동천은 중국의 양인개 선생(중국 서화 감정의 대부)의 제자로 국립중앙박물관, 삼성미술관 Leeum, 간송미술관 및 각 지역과 대학 박물관의 수장품 중 위작이 있다는 것에 관해 썼다. 이 저자의 논리에 대해 기자는 지식이 없다. 그러나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 있다. 537쪽 ‘남은말’의 한 구절이다. ‘현재 중국 상해박물관 소장의 고서화·도자기·청동기 등 전체 수장품을 보면 전문감정가의 감정을 거쳐 등급이 정해진 문화재는 12만점이고, 진위가 의심되거나 위작인 참고품은 70여만점이다. (출처: 汪慶正 , 「序」, 鄭重, 『海上收藏世家 上海書店出版社』 2003)


논란이 많은 미술계의 진위를 가리려면 진품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필수다. 한데 상해박물관에 있는 진품과 참고품 비율이 12만대 70여만이라니…. 우리나라는 이런 자료라도 있는 것일까? 김형영 대표는 첨단장비에만 의존하여 분석하려는 것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한다. 문서감정은 장기간의 경험과 안목이 중요한데, 현재 맥이 거의 끊기는 상황에 대해 아쉬워했다. 며칠 전 기자는 구글번역기의 성능이 상당히 좋아졌다고 하기에 시험을 해봤다. 비교적 영어로 번역하기 쉬운 한국말만을 골라 음성번역을 해봤으나 전혀 다른 뜻으로 나오는 것이 있었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김 대표의 말이 금방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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