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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故 원영철 일등중사, 6.25 전사자 중 137번째로 신원확인

전사기록에 의한 사전확인으로 최단기간(10. 1 ~ 11. 14), 45일 만에 신원확인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 2019년 10월 1일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의 신원을 故 원영철 일등중사(현 계급 하사)로 확인했다. 故 원영철 일등중사의 신원확인은 2000년 4월 유해발굴을 위한 첫 삽을 뜬 후 137번째이다. 이번 신원확인의 결정적 단서는 현장 수습 간 발견된 유해의 가슴부위에서 발견된 인식표였습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인식표에 적힌 고인의 이름을 토대로 전사자 명부와 매화장 보고서(전사기록지)에서 기록을 확인 했다.



또한, 신원확인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유가족관리/탐문관이 강원 원주시 일대에서 거주 중인 유가족의 남동생(원영화, 77세)과 여동생(원영숙, 87세) 및 친조카·외조카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여, 국방부 조사본부 유전자과에서 유해와 유가족의 DNA 비교 검사를 한 결과 남동생(원영화, 77세)과 여동생(원영숙, 87세)씨의 유전자가 일치하여 최종 신원이 확인되었다. 이는 6.25 전사자 확인사업을 시작한 이래 최단기간(10. 1 ~ 11. 14) 내에 가족의 품으로 보내 드린 사례이다.  이번 사례를 바탕으로, 앞으로는 발전된 유전자 기법과 더불어 유품, 기록 정황에 의한 사전 확인을 통해 신원확인이 보다 신속하게 지속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故 원영철 일등중사는 국군 제 8사단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하였으며, 1951년 8월 ~ 9월에 강원도 인제 서화리 일대에서 발생한 제 1차 노전평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 1차 노전평 전투간(’1951. 8. 9 ∼ 8. 14.) 제8사단은 제16연대와 제10연대를 투입, 전형적인 고지쟁탈전을 반복하면서 445고지 ∼ 1010고지로 이어지는 고지군 일대에서 북한군을 공격했다. 그러나, 당시 방어에 유리한 결정적 지형지물이 없었기 때문에 공방전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으며, 그로 인해 제 2차 노전평 전투  (’1951. 8. 18 ∼ 8. 24.)로 이어지게 되었다.  故 원영철 일등중사의 유해는 인식표를 포함한 버클, 단추, 전투화 등의 유품과 함께 발견되었다.

故 원영철 일등중사는 1930년 9월 15일 강원 원주시 흥업면에서 5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고인은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고, 일찍 작고하신 형님들을 대신해  책임감을 갖고 집안의 장남 역할을 해 왔으며, 고등학교에 재학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20세의 나이로 전쟁에 참전했다. 하지만 고인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유해조차 찾지 못한 채, 1953년경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사무소 직원에 의해 전사통지서만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당시, 남은 가족들은 사진 한 장조차 남아있지 않은 고인을 향한 애타는 그리움을 지금까지 가슴으로 묻고 살 수밖에 없었다.

고인의 동생 원영화씨는 “형님이 살아계셨다면 원주군수감이라고 동네사람들이 하나같이 이야기했었다”며, “결혼도 하지 못한 채 꽃다운 나이에 돌아가신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가족들이 형님을 많이 그리워 했었는데, 좋은 소식을 갖고 찾아와 주신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유가족들과 협의를 거친 후 귀환행사와 안장식을 통해 유해를 추후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故 원영철 일등중사의 신원확인 사례처럼 6.25 전사자 신원확인을 위해 최신의 다양한 신원확인 기법을 지속 적용하는 한편, 유가족 유전자 시료채취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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