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방만경영의 대명사인 공기업이 변화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한국소비자원, 한국산업인력공단 등 일부 공기업이 조직과 인력의 고강도 구조개혁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연공서열 위주의 인사시스템에 경쟁 체제를 도입한 것은 기본이다. 무보직 발령 등 민간기업에서나 볼 수 있던 퇴출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시행하는 곳도 있다. 공기업에서 정년 보장의 개념이 무너지는 것이다. `철밥통'을 깨는 참신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가 일회성, 전시용에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상시적인 퇴출시스템을 정착시켜 공기업의 구조적 병폐를 척결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공기업 변화의 바람 중 한국소비자원의 인사 개혁은 주목할 만하다. 소비자원은 지난 14일 최고위직 부서장 8명 중 4명을 무보직 실무직원으로 발령하고 팀장 26명 중 8명을 팀원으로 보직 전환했다. 보직을 박탈한 강등인사라 할 수 있다. 비보직으로 전환된 부서장과 팀장은 1년 후 평가결과에 따라 보직 여부가 결정된다고 한다. 무사안일주의를 경계하고 성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한 시도라는 것이 소비자원의 설명이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4일 조직.인력 구조개혁 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14일에는 본부장보급 이상 임원 전원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신임 이사장에게 재신임을 묻는 차원이지만 상당수 교체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산업인력공단도 최근 기관장급 4명과 팀장급 8명에게 무보직 또는 하향보직 인사 및 경고조치를 실시했다. 공단은 매년 1,2급 정원의 10%를 이같이 발령할 방침이라고 한다. 과거 공기업 문화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하지만 공기업이 민간기업 못지않게 경쟁력을 갖추려면 인사체계에 경쟁 원리를 도입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런 필사적인 개혁 노력이 일부 공기업에 국한돼서는 안된다. 공기업의 방만경영은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경영을 실패한 민간기업이라면 문까지 닫을 수 있지만 공기업은 국민의 혈세로 적자를 보전하고 후생복리까지 챙기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가 지난해 92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경영평가에서 무려 23%에 달하는 기관장이 경고 또는 해임 건의를 받았다.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의 우수 기관장이 한명도 없을 정도로 상당수 공기업이 경영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공기업들이 방만경영과 과도한 후생복리, 도덕적 해이 등으로 비난을 받아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아직 일부 대형 공공기관과 금융 공기업들은 최고 수준의 임금과 복지 혜택을 받으면서 복지부동이라고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철밥통 깨기'가 일부 공기업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정부는 공기업의 개혁 노력이 확산되도록 철저히 감독해야 할 것이다. 방만경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데도 개혁이 지지부진하다면 민영화하거나 통폐합을 추진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