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조재영 최현석 기자 = 사외이사 제도 개편으로 은행권 지배구조에도 큰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금융지주사나 은행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 의장이 사실상 분리되면 이사회의 경영진에 대한 견제 기능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확실한 대주주가 없는 상황에서 10년 이상 집권해 온 은행권 CEO들의 거취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사외이사 개편 작업이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절차에 대한 금융당국의 비판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실효성 없이 관치금융의 입김만 세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제도 개선 배경은
은행권이 사외이사 제도를 개편하게 된 것은 세계적 금융위기 여파로 은행이 부실화되자 이사회의 견제 기능이 마비됐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경영진의 독단을 견제할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CEO와 학연, 지연 등으로 엮이면서 경영진의 독단을 견제하지 못한 채 이른바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금융연구원이 은행권 전ㆍ현직 사외이사들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36명 가운데 자신을 사외이사로 추천한 인물로 경영진을 꼽은 사람은 36.1%였고, 정부 및 금융당국 인사와 주요주주도 19.4%와 16.7%씩이었다.
이들 사외이사가 경영진이나 주주, 정부 등 이해관계자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독립성 외에 전문성 부족도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다.
금융연구원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3.8%가 독자적 의사결정을 위해 사외이사의 금융 관련 전문성과 경영정보 제공이 먼저 강화돼야 한다고 답했다. 금융연구원 조사에서 현직 은행권 사외이사 중 금융인 출신 사외이사는 6.6%에 불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작년 사외이사 중심 이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사외이사에 대한 적격성 심사 강화와 공시를 통한 시장의 견제 및 평가 강화, 이사회의 전문성 제고 등을 권고하는 등 해외에서도 은행권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은행 지배구조에 영향 주나
사외이사 제도 개선 방안이 적용되는 3월 주총 때 사외이사 상당수가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KB, 신한, 우리, 하나금융지주 등 4개 은행지주사와 산하 4개 은행의 사외이사 62명 가운데 10여 명이 임기와 겸직 제한 등의 규정에 걸려 교체될 것으로 전망된다.
KB금융지주는 오는 27일 임시 이사회를 열어 사외이사제 모범규준의 적용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3월에 임기가 끝나거나 자격 논란에 휩싸인 사외이사 2~3명의 사퇴 표명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라응찬 신한지주 회장, 김승유 하나지주 회장 등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는 CEO들의 의장직 거취에도 관심이 쏠린다. 만일 의장직을 유지하면 겸직 사실을 공시하고 사외이사의 대표인 선임 사외이사를 둬야 한다.
선임사외이사는 사외이사회의를 소집, 주재하고 사외이사가 은행으로부터 자료제출 등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사회의 견제 기능이 강화되면 일부 금융 CEO의 장기 집권 구도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하나금융 김 회장은 1997년 하나은행장 취임 후 2005년 회장에 오르면서 하나금융 내 CEO 경력이 13년에 달하고 있으며 신한금융 라 회장과 신상훈 사장은 각각 19년과 7년째 집권하고 있다.
◇"반강제적 규준..관치 부작용도 우려"
전문가들은 사외이사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CEO와 의사회의장을 분리한 점 등은 글로벌 스탠더드 차원에서 볼 때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번 사외이사 모범 규준 자체가 업계의 자율적 의견 교환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기보다 금융당국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반 강제적인 규준이라는 점에서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아울러 개선안이 일반적 금융기관의 일반적 사외이사 현실을 반영하기보다 `KB금융 사태'에 초점을 맞춰 진행된 점도 문제라는 인식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한가지 특수한 사안을 놓고 일반적인 기준을 만들어 강제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사외이사 개편이 정부 주도로 이뤄지면서 이사회에 관치금융의 입김이 작용할 소지가 커졌다는 우려도 나왔다.
김 교수는 또 "모범 규준은 공통의 이해관계를 반영해 자율적으로 제정돼야 하는데 이번 모범 규준은 자율적 판단이라기보다 당국의 의사가 반영된 반 강제적인 조항"이라며 "시행과정에서 결국 현실과 충돌하며 의도하지 않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예금보험공사가 대주주인 우리금융은 CEO가 연임한 사례는 없지만, 이사회 의도와 무관하게 정부의 입김에 따라 CEO가 1년 만에 바뀌는 등 이사회가 관치금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우찬 KDI교수는 모범 규준에 대해 "전반적으로 사외이사를 과반수 이상 되도록 하고 의장과 CEO를 분리한 점, 임기를 짧게 가져간 점 등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사외이사 임기가 2년 이내로, 사내 이사 임기 3년 이내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둘 다 임기를 2년 이내로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며 "또 경영성과 연동보수를 지급 금지한 것은 너무 경직된 규정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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