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2007년과 2008년 각각 2개사에 이어 지난해 6개사가 상장을 마침으로써 국내 증시는 외국 상장기업 두자릿수 시대를 맞았다.
올해에도 외국 기업 상장 '러시'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거래소 측은 이미 상장한 10개사 외에 연내에 10~15개의 외국 기업이 추가 상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28일 거래소에서 열린 '코스닥 상장 외국 기업 합동 IR(투자설명회)'도 외국 상장기업들의 달라진 위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번 IR에는 중국엔진집단과 중국식품포장, 네프로아이티, 차이나그레이트, 3노드디지탈 등 코스닥 상장 외국 기업 5개사가 참여했다. 외국 기업 합동 IR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다면, 외국 기업들이 한국행을 재촉하는 이유는 뭘까. 그들에게 비친 한국 증시는 어떤 모습일까.
◇외국 상장기업 CEO들 "빠른 상장.저렴한 비용 매력적"
이날 만난 중국 국적 기업 차이나그레이트스타 우쿤량 대표이사는 국내 증시 상장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우 대표이사는 "상장을 통해 마련한 510억원의 공모자금으로 생산능력과 판매망을 확충하고 마케팅에도 힘을 쓸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한국 증시 상장은 중국에서 부는 '한류' 열풍과 맞물려 브랜드 이미지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며 "상장 심사 과정에서 경영의 투명성도 제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엔진집단유한공사 왕겅성 대표이사도 "풍부한 유동성과 활발한 거래 이외에도 중국 증시보다 훨씬 빠르게 상장할 수 있다는 점이 한국 증시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 증시의 엄격한 심사 과정을 통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중국 내에서 기업 이미지가 상당히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지적하듯 국내 증시 상장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시간이나 비용 측면에서 훨씬 수월한 게 사실이다. 국내 증시는 상장 청구 이후 통상 2개월 안에 모든 절차가 완료된다. 일본만 해도 상장 심사 기간만 1년이 넘는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에서 상장을 위해 대기한 회사만 해도 현재 2천~3천개에 이른다"며 "중국에서 상장하려면 보통 3~4년이 기본"이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성장 초기에 있는 외국 회사들이 사업확충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국내 증시로 몰리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국내 증시가 '벤처 캐피탈'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아냥거림도 나온다. 중국 같은 경우 간접자금 시장이 활성화돼 있지 않다 보니 자금 조달을 위한 쉬운 통로로 한국 증시를 이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같은 아시아권 증시로 문화적 이질감이 적고, 홍콩과 싱가포르에 비해 큰 시장 규모를 가진 점 또한 외국 기업, 그중에서도 중국 기업의 한국행 발길을 재촉하는 요인이다. 국내 증시 상장 10개 외국 기업 가운데 9개사가 중국 국적이다.
이와 함께 한국 경제의 빠른 회복세와 제조업 중심의 증시 특성 또한 중국 기업들이 홍콩이나 본토 시장보다는 한국시장에 상장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하게 만드는 요소다. 홍콩과 싱가포르 증시는 금융업종이 강한 편이다.
◇투명성 결여. 정보 빈곤 등 부작용도 잇따라
이렇듯 성장 초기에 있는 외국 기업들이 한국 증시 상장을 서두르다 보니 부작용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회계와 기업 지배구조 측면에서 국내 기업보다 투명성이 떨어지는 점은 어두운 단면이다. 실제로 지난해 상반기에 중국계 지주회사인 연합과기공고유한공사는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 상장 5개월여 만에 퇴출 위기로 몰리기도 했다.
지리적인 약점 이외에도 이러한 불안요소는 실적과는 관계없이 외국, 특히 중국기업들의 주가가 저평가를 받는 '차이나 디스카운트'로 연결된다.
중국엔진집단유한공사 왕겅성 대표이사는 이에 대해 "중국 기업들이 회사를 소개하기 위해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래소 측에서 외국기업들의 상장 심사를 보다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속포장용기제조업체 중국식품포장유한공사의 진민 대표이사는 "투자자들로부터 정말로 중국에 공장이 있기는 한 거냐는 식의 질문을 받는 등 신뢰가 많이 훼손됐다"며 "한국 투자자들의 잘못된 선입견도 중국 기업에 대한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일본 국적의 네프로아이티를 제외하고는 전통산업 위주의 사업 내용도 약점이다. 신발제조, 의류판매 자회사를 보유한 차이나그레이트스타와 모터사이클 및 잔디깎이 등을 주로 생산하는 중국엔진집단유한공사 같은 경우 저성장 산업에 속해 있는 데다 국내에서 비교 대상 기업이 흔치 않다는 점 역시 주가 저평가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회사 차원의 IR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증권사들도 이들을 대상으로 한 분석보고서를 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식품포장유한공사의 진민 대표이사는 "사업내용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탄탄한 실적을 내놓으면 투자자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며 "매년 3~4회 한국을 방문해 투자자들에게 회사를 제대로 소개하겠다"고 말했다.
중국엔진집단유한공사 왕겅성 대표이사도 "웹사이트를 통해 회사에 대한 소식도 전하고 앞으로 IR 활동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증시 상장을 계기로 회사의 이름을 널리 알려 한국과 일본 등에서 인재들을 영입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