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학번 전윤자씨 "배움 준 대학에 감사"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기자 = 한국전쟁 기간 캠퍼스생활을 했던 고려대 경영대 '여성 1호 졸업생'이 60년 만에 학교에 거액을 쾌척했다.
고려대는 5일 상과대 51학번 전윤자(78.여)씨가 고대에 발전기금으로 5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고대는 기부받은 부동산에서 나오는 연간 2천만원 가량의 임대수익금을 `전윤자 장학금'으로 조성해 경영대 여학생에게 지급할 계획이다.
금융계에서 20여년간 일해온 전씨는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게 대학에서 배움을 준 데 대한 고마움도 있었고 전체 학생의 40∼50%가 여성인데 여선배가 학교 발전을 위해 나서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기부 배경을 밝혔다.
전씨가 대학에 입학한 건 전시 상황이던 1951년. 학교 전체에서 여자 동기는 경제과와 법과에 다니던 두 명뿐이었다. 몇 년 새 여자 후배가 조금씩 들어왔지만, 학교 전체로 보면 여학생 비율은 여전히 매우 낮았다.
이 때문에 약 60년이 지나서도 기억에 생생히 남을 정도로 남학생들의 짓궂은 장난을 많이 겪어야만 했다.
전씨가 늘 교수님을 마주하는 강의실 맨 앞줄에 앉는다는 것을 안 남학생들이 의자 다리를 떼서 살짝 걸쳐 놔 '꽈당' 넘어지기도 했다.
남학생들 장난에 지도 교수를 찾아가 여대로 옮기면 어떨지 상의한 적도 있었고, 전씨를 위해 교수님이 수업 전에 '남자의 기사도'에 대해 특별 강의를 하기도 했다.
통금이 있고 남녀가 어울리는 게 흔치 않던 시절 여동기, 여후배와 몰려다니고 수업 들으며 대학 시절 추억을 쌓은 전씨는 스물넷이던 1955년, 졸업과 동시에 한국은행에 취직했다.
결혼하면 혹시라도 일을 그만둘까 두려워 입사 때 '25년 이상 있겠다'는 각서를 쓰던 시절이었다.
이후 12년은 한국은행, 13년은 외환은행에서 일하면서 전씨는 사회에서도 `1호' 꼬리표를 달 때가 잦았다. 한국은행에 상과대 출신으로 처음 입사했고, 첫 외환은행 지점장 대리도 전씨 몫이었다.
'1호'라는 수식어를 늘 달고 사는 생활은 화려하지만은 않았다. 직장 생활에서 남자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해야 했고, 보수적인 분위기 탓에 마음고생도 많았다.
여성 사회인이 겪는 여러 제약을 경험해 본 전씨는 은행에서 퇴직하고서 여성 전용 금융기관을 설립해 대출이 까다롭던 미혼모와 미혼여성을 위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전씨는 "요즘 대학생들은 자유롭게 좋은 환경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것 같아 부럽다. 다시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고대에서 가족과 함께 기부식에 참석한 전씨는 '기부' 두 글자를 듣고 자연스레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을 떠올렸다.
그는 "남편이 '이건 개인 것이 아니다'라며 평생 소중히 모은 조개껍데기 1만3천500점을 진도에 기부했다. 누구나 소중한 걸 기증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내 (기부) 이야기가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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