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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갇힌 산동네 집배원들의 배달 `사투'>

넘어지는 건 다반사…위험천만 오토바이 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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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기자  2010.01.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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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는 건 다반사…위험천만 오토바이 운행

"급한 우편물은 어떤 상황에도 전달해야 한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산동네 눈 길에서 이동하는 집배원의 교통수단은 네 바퀴로 가는 오토바이였다.

서울에 관측 사상 최악의 폭설이 쏟아진 지 나흘째인 7일 노원구 상계동 산동네 '희망촌'에서 만난 집배원 이용(50)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얼어붙은 눈길을 오르는 동안 땅에서 두 발을 떼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 눈이 오면 빙판길에 미끄러지는 게 다반사다"라며 시속 10㎞도 안 되는 속도로 좌우로 뒤뚱거리며 언덕을 올랐다.

23년 집배원 경력에 이 지역을 전담한 지도 5년이 됐지만 얼어붙은 길의 편지 배달은 그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허가 주택이 많아서 주소가 아닌 이름으로 집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사람 이름을 모조리 외워야 해 이런 지역의 담당은 잘 바뀌지 않는다. 겨울만 되면 사고의 위험 때문에 많이 힘들지만, 보람도 있다"라며 웃었다.

다 탄 연탄을 버리려 문밖에 나섰다가 그에게 직접 편지를 받아든 권길래(85) 할머니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주 열심히 한다.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제대로 소화 못 한 1천여 통의 우편물을 다 처리하려면 내일까지 좀 정신없을 것 같다"며 추운 날씨에도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폭설이 쏟아진 뒤로 산동네를 맡은 집배원들이 한 것은 '배달'보다 '사투'에 가까웠다.

이제는 아주 높은 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눈이 걷혀 한숨을 돌렸지만, 그동안 집배원들은 때로는 시야를 가리는 눈은 물론 부상의 위험이 도사리는 빙판길과 싸워야 했다.

강북구 삼양동의 산동네를 4년째 맡은 김문권(33)씨는 "4일 폭설이 쏟아진 날에도 눈길을 뚫고 언덕을 올라 150통 정도 등기를 배달했다. 전화로 사정을 말씀드릴 수 없어서 급한 우편물은 어떤 상황에도 전달해야 한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김씨는 "그날 산동네 꼭대기에 사시는 동네 어르신들께서 오히려 혼을 내시며 걱정만 끼치게 뭣 하러 여기까지 왔느냐고 해주셔서 당황이 되면서도 뿌듯하고 기운도 났다"고 말했다.

노원구 중계본동의 산동네 판자촌 꼭대기에서 만난 문충식(55)씨도 "어제는 밀린 우편물을 배달하려 이번 주 들어 처음으로 이곳에서 오토바이를 탔다가 빙판길에 미끄러지면서 땅에 굴렀다"며 오른쪽 팔을 주물럭거렸다.

그는 "하도 자주 넘어지다 보니 이제 이골이 났다. 넘어지는 요령이 생겨서 괜찮다"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을 담당하는 서영훈(36)씨는 "배달 구역의 70% 이상이 경사지여서 오르거나 내려올 때 제설작업이 안 된 부분은 도보로도 이동이 어려울 정도다"라며 "우편물 배달을 도저히 미룰 수 없어 5일부터 무리해서 오토바이를 운전했는데 꽤 춥기도 하고 길이 미끄러워 힘겨웠다"라고 말했다.

집배원들은 이제는 눈이 본격적으로 녹기 시작해 어느 정도 업무가 정상을 되찾았다면서도 그들이 여전히 느끼는 남모르는 위협에 대해서는 다시금 우려의 목소리를 모았다.

"도로의 눈을 길가 곳곳에 모아 놓아 배달용 110cc 오토바이를 타고 1차선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앞뒤의 대형 차량이 경적만 울려도 가슴이 철렁합니다"

hapyr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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