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식 통계 없어…'투명인간'으로 존재
성적 정체성 따른 인권 보호대책 필요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다음 달이면 연예인 하리수로 상징되는 성전환자(트랜스젠더) 신드롬이 불거진 지 햇수로 10년이 된다.
2001년 3월 한 화장품 회사의 TV 광고 모델로 등장한 '여자보다 예쁜 남자' 하리수는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됐던 성전환자 문제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일부 성전환 연예인의 화려한 이미지와 달리 대다수 트랜스젠더는 여전히 국내에서 '투명인간'과 같은 신세다.
18일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성전환 수술을 받거나 이성(異性)의 호르몬을 투약받는 이들과 관련한 정부 공식 통계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적이 없다.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니 정부 통계가 전혀 없고 해당 용어를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으로 지나치게 좁게 규정하는 등 개념이나 정의조차 모호하다는 것이다.
'한국에 성전환자가 몇 명인가'란 단순한 질문에 정부 관계자조차 "생각보다는 많을 것"이란 어이없는(?) 답변을 내놓는 실정이다.
수술과 호르몬 요법이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 아닌데다, 기존 법상 성전환자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아 굳이 조사 사업을 벌일 이유가 없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의료적 조처를 받은 사례뿐 아니라 심리적으로 자신을 육체와 정반대의 성(性)적 존재로 느끼는 사람까지 범주에 넣으면 문제는 훨씬 복잡해진다.
성전환자를 비정상으로 핍박하는 상황에서 당사자가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밝히기를, 소위 `커밍아웃'하기를 기대하기가 어려워 실태 조사가 어려울 뿐 아니라 그렇게 집계한 숫자가 사실을 반영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진보신당 나영정 정책연구원은 "최소한의 의료적 조처를 받고 본인의 (성전환) 의사만 명확하면 법적 성별을 바꿀 수 있는 제도가 나오지 않는 이상 이들은 계속 국가의 사각지대에 묻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별 전환의 조건을 완화하는 제도는 2002년 김홍신 전 의원(한나라당), 2006년 노회찬 전 의원(민주노동당)이 각각 특례법안 형태로 제안했으나 국회 논란 끝에 모두 무산됐고, 현재는 논의가 끊긴 상태다.
제도권에서 성전환자를 규정한 경우는 법원의 '성별정정 허가신청' 판례가 유일하다.
그러나 해당 판결들은 성전환 허가 요건으로 ▲성전환 수술을 하고 ▲정신과 진단을 받고 ▲결혼을 하지 않고 자녀가 없어야 한다고 명시해 트랜스젠더를 협소하게 규정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수천만∼1억원의 비용이 드는 성전환 수술을 성전환자의 핵심 요건으로 내세워 경제적 이유 등으로 시술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은 트랜스젠더 범주에서 제외되고 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한채윤 대표는 "수술비가 비싸 부작용을 감수하고 불법 시술을 받거나, 아예 시술을 포기하고 호적 변경을 하지 않은 채 숨어 사는 이들이 부지기수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성전환 수술을 받고 2002년 법원에서 성별을 바꾼 연예인 하리수씨 등의 사례만을 트랜스젠더로 보지 않도록 대대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외적 측면보다는 개인 내면에서 자신의 성(性)을 어떻게 보는지를 따지는 '성적 정체성(Sexual Identity)'을 판단 근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정춘생 정책위원회 전문위원은 "트랜스젠더란 개념이 하나의 (고정된) 편견으로 변질해서는 안 된다. 이들의 인권을 폭넓게 보호할 수 있게 심도 있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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