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연합뉴스) 고승일 특파원 = 버락 오바마 제44대 미국 대통령이 오는 20일로 취임 1년을 맞는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원년을 상징적으로 압축하면 `개혁과 저항'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
공화당 조지 부시 전임 행정부 8년에 대한 회고적 반성에서 시작한 오바마의 개혁은 나라 안팎에서 기존의 패러다임을 뜯어고치는데 초점을 맞췄다.
미국내 문제로는 건강보험 확대 및 금융규제가 최대의 개혁 어젠다로 꼽혔다. 사실상 전 국민의료보험제 실시를 목표로 하는 건강보험개혁은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내걸었던 최대 공약이었던 만큼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집권 초기에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촉발한 금융위기의 재발을 막기위해 오바마 행정부는 금융규제 개혁에도 착수했다. 과거 공화당 정부가 금융권에 대한 적절한 규제.감독없이 시장을 방치함으로써 금융위기의 싹을 키웠다는 판단에 따라 곪은 곳에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댄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가 착수한 일련의 `담대한' 개혁은 불가피하게 보수층의 반발과 저항에 부딪혔다. 워싱턴 정가는 물론 미국 전역을 뜨겁게 달군 건강보험개혁 문제와 관련, 서민층은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지만 백인 보수 및 노년층은 반대전선을 구축해 가파른 대립각을 세웠다.
"가진 자들이 그렇지 못한 자들을 위해 조금 더 부담해야 한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호소는 보수층으로부터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이냐"는 메아리로 되돌아왔다. 또 금융규제 개혁은 전통적으로 `큰 정부'에 반대하는 공화당의 지지를 얻는데 구조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미국 정치는 전에 없는 이념적 양극화와 극단의 당파성을 드러냈다. 집권 민주당과 공화당은 사사건건 부딪히면서 으르렁대기 일쑤였다.
`단합된 미국'을 기치로 내걸고 당선한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하에서 당파적 대립이 극한으로 치달은 것은 아이러니한 측면이 많다. 실제 집권초 7천870억달러 규모에 달하는 경기부양법안의 표결에서부터 건강보험, 금융개혁, 기후변화 관련법에 이르기까지 각종 주요법안 표결에서 민주, 공화 양당 의원들은 철저하게 당파적 논리와 이익에 따라 투표했다.
이처럼 오바마 대통령의 개혁은 정치의 양극화 현상과 지지율 하락, 개혁추진 동력 상실이라는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12월초 여론조사기관인 `하트 리서치 & 여론 전략'이 공개한 조사결과에서 응답자의 75%는 "미국이 정치적으로 너무 분열됐다"고 답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 추이도 심상치 않다. 취임 당시 70%를 웃돌던 지지율은 갤럽 조사결과 1월16일 현재 49%까지 주저앉았다.
이런 지지율 하락은 집권 2년차 오바마 대통령의 개혁드라이브에 상당한 부담을 안겨줄 공산이 크다. 특히 올해 11월에는 오바마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띤 상.하원 선거가 치러질 예정이어서 민주당 의원들의 당락에 영향을 미칠만한 민감한 개혁과제를 밀어붙일 동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다 공화당의 정치공세는 더욱 강화될 조짐이다. 2008년 대선에서 부통령 후보를 맡았던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를 필두로 딕 체니 전 부통령, 칼 로브 전 백악관 비서실 부실장 등 보수 정치인들이 오바마 행정부를 겨냥한 외곽때리기를 계속할 태세다.
TV와 라디오를 통해 보수이념 전파에 열을 올리고 있는 러시 림보, 글렌 벡, 빌 오라일리 등의 논객들도 대대적인 여론전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 깎아내리기의 선봉에 선 상태다.
진보언론으로 평가받고 있는 CNN방송이 지난해 보수의 대변자격인 폭스뉴스에 크게 밀린 것은 오바마 행정부에는 달갑지 않은 신호가 아닐 수 없다. 폭스뉴스는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부터 지나치리만큼 비판적인 논조를 견지하면서 각을 세워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첫해에 이룬 일부 `값진' 성과를 당파적 이유를 들어 외면하는 것은 미국 정치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마지막 관문만을 남겨놓은 `전(全) 국민건강보험'은 `40대 젊은 대통령' 오바마의 야심찬 패기와 강인한 의지, 정치적 결단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대선후보 시절 건강보험 개혁을 주장했지만, 그가 집권했더라면 과연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 아랍권과의 화해 제스처, 중동평화 중재를 위한 노력, 미-러 전략무기 감축 추가협상 착수 등도 당장에는 빛이 나지 않지만, 국제무대에서 일방통행해왔던 미국의 이미지 개선에 커다란 뒷심을 보태줬다.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첫해에 보여준 이런 노력이 결국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이어진 측면을 부인하기 힘들다. 세계 곳곳에서 분열과 대립 보다는 평화와 공존을 이끌어낼 수 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잠재력에 투자가 이뤄진 셈이기 때문이다.
다만 오바마 대통령이 테러집단인 알카에다 섬멸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4만명의 병력을 추가 파병키로 결정한 것은 노벨평화상의 수상 의미를 퇴색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 입장에서는 노벨평화상 수상이 드러내는 이미지에 안주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발생한 노스웨스트 항공기 테러기도 사건은 오바마 행정부 외교.안보팀의 허술한 보안체계와 위기대처 능력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았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안팎에 엄청난 파장을 던진 이번 사건의 여진이 계속되는 동안 하와이에서 `한가롭게' 휴가를 보냈다는 정치권 일각의 비판을 받았다. 보수층 일부에서는 "디트로이트로 가던 항공기가 폭파될 위협에 처했을 때는 늑장대응을 하더니 미국도 아닌 아이티 지진에는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떠느냐"며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런 여러 정황으로 미뤄볼 때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2년차도 녹록지 않은 여정이 될 전망이다. 테러와의 전쟁, 일자리 창출을 통한 고실업률 잡기, 건강보험입법 등 개혁과제의 완성, 중간선거 승리, 국론통합 등이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력과 리더십을 시험할 도전과제로 다가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