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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1년> ⑤ 인종문제 빛과 그림자

`검은 명예혁명' 신화 불구, 상처받기 쉬운 소...

연합뉴스 기자  2010.01.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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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명예혁명' 신화 불구, 상처받기 쉬운 소수

인종화합 새지평 열었지만 오랜 `편견' 해소 숙제



(워싱턴=연합뉴스) 김재홍 특파원 =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지난 1년은 미국의 과거와 현재에서 지울 수 없는 인종문제의 무게를 새삼 일깨워줬다.

오바마 대통령의 1년 전 의회에서의 대통령 취임 선서와 백악관 입성은 흑인은 물론 히스패닉, 아시아계 미국인들, 그리고 백인들에게까지 지금도 여전히 잊을 수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검은 명예혁명'의 살아있는 신화와 역사가 함께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의 가슴은 누구 할 것 없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흑인과 백인의 피를 한몸에 지닌 오바마 대통령을 선출했다는 자부심과 오랜 인종편견의 굴레에서 벗어난 그야말로 완벽한 `칼라 블라인더'의 시대가 찾아왔다는 기대감이 한껏 부풀었다.

미국에서 흑백이 지닌 의미는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보다 특별하다.

20여명의 흑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네덜란드 배에 실려와 1619년 미국 땅에 첫발을 디뎠을 당시 이들은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백인 정착자들에게 물건처럼 배분돼 노예가 됐다. 흑인 노예가 받은 인종적 사회적 속박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흑인 노예가 백인의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는 흑인으로 노예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흑인의 피가 한 방울만 섞여도 평생 흑인의 멍에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캔자스 출신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엄밀히 따지면 인종적으로 흑백 혼혈로 불려야 한다.

그런데도 굳이 흑인 대통령으로 그의 정체성을 규정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이러한 미국의 어두운 역사의 그림자와 결코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 만큼 오바마 대통령의 지난 1년은 상처받은 흑인들의 영혼을 달래준 기간이기도 하다.

흑백차별을 직접 체험하고 자란 세대인 흑인 노인들은 자신들과 같은 피부색을 지닌 오바마가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그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길에는 항상 존경과 애정이 가득차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첫 내각을 다양한 인종을 포함한 `무지개 내각'으로 꾸림으로써 이러한 기대에 화답했다.

그는 내각에 첫 흑인 출신 법무장관 에릭 홀더를 비롯해 흑인 각료 4명, 에릭 신세키 보훈장관 등 아시아계 3명, 힐다 솔리스 노동장관 등 히스패닉계 2명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등 여성 7명을 포함시켰다.

또 대법원 판사에 처음으로 히스패닉 출신 여성 판사인 소니아 소토마요르를 임명, 인종화합의 새 지평을 열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도 잠재된 일종갈등을 언제든 폭발시킬 수 있는 불씨는 불쑥불쑥 튀어나와 오바마 대통령을 시험대에 올려 놓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백인 경찰관이 자신의 친구인 하버드 대학 흑인 교수를 체포한 사건을 두고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표현했다가 인종편견적인 발언이라는 호된 후폭풍에 직접 시달려야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건강보험 개혁법안 관련 의회 연설 도중, 공화당 조 윌슨 하원의원으로부터 `거짓말이야'라는 고함을 듣기까지 했다.

미국 주류언론들은 이 사건을 흑인이 미국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백인들의 불만에서 비롯된 반(反) 오바마 정서가 근본원인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당시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는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를 향한 증오와 추악함, 나쁜 그 어떤 것이 있다"고 지적했다.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2008년 대선 당시 오바마 후보를 가리켜 "피부색이 너무 짙지 않고 니그로 방언을 쓰지 않는다"고 발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사퇴 압력에 시달리고 사과 발언을 해야 했다.

또 얼마 전에는 미국 인구조사국이 2010년 인구조사 설문에 흑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여겨져온 '니그로(Negro)'를 사용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흑인들은 이를 두고 "대놓고 우리 빰을 때리는 격이다. 화가 난다. 정말 나쁜 말이다"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흑인들의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열정도 식어가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와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는 흑인들이 여전히 아직도 상처받기 쉽고 모호한 소수자의 지위에 머물러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나온 것 자체가 큰 진전이라는 사실 만큼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적.사회적 용광로에 오랜 흑백갈등을 녹여 새로운 법과 제도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jaeh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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