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출구전략'.. 알 카에다에 집중하려는 듯
사회재통합 프로그램으로 탈레반 무장력 약화 노려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9년째 탈레반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아프간 평화를 위해 탈레반과 협상에 나설 움직임을 보여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은 9.11 테러를 주도한 알-카에다를 비호했다는 이유로 2001년 아프간을 침공,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킨 이래 이들과 전쟁을 벌여왔으며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아프간에 미군을 3만명 증파하기로 했었다.
이처럼 탈레반을 적으로 규정하고 대화를 거부해온 미국이 최근 들어 이들과의 협상 뿐 아니라 이들을 아프간 정부에 참여시킬 가능성까지 시사하면서 미국의 탈레반에 대한 접근이 급선회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은 25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군인으로서 내 개인적인 느낌은 전투는 충분히 치렀다는 것"이라며 협상 국면이 시작될 것임을 예고했다.
그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초점을 둔다면 모든 아프간 사람이 (아프간 정부에서)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탈레반이 정부에 참여할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미 중부군 사령관도 "아프간 고위 관리와 탈레반 등 무장세력 지도자들의 협상은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영국 일간 더 타임스에 말했다.
탈레반에 대한 미국의 유화 제스처는 9년째 계속되는 소탕작전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의 영향력이 여전히 건재한 상황에서 이들과의 협력으로 아프간 안정을 달성한다는 '출구 전략'을 모색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 탈레반과 알 카에다를 동시에 적으로 규정한 기존 접근 방식을 수정해 탈레반과 손을 잡는 대신 알 카에다에 대테러 전쟁의 초점을 맞추려는 전략적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아프간 정부와 함께 탈레반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 '당근'과 '채찍'을 함께 사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이날 터키 이스탄불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탈레반 요원들을 유엔 제재 명단에서 삭제해줄 것을 요청하는 성명을 아프간 국제회의에서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엔은 모하메드 오마르를 비롯한 탈레반 지도부 144명이 포함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계좌 동결과 회원국 입국 금지 등의 제재 조치를 취해왔는데 명단에서 이들의 이름을 지우는 것은 탈레반과의 협상을 위한 수순으로 해석되고 있다.
매크리스털 사령관은 FT와의 인터뷰에서 미군 증강으로 탈레반이 충분히 약화되면 탈레반 지도부가 평화협상을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미군 증파 계획도 협상을 위한 압박 수단으로 사용될 것임을 시사했다.
미국은 탈레반을 약화시키기 위해 탈레반 무장요원들에게 일자리 등을 제공해 사회에 통합시키는 '재통합' 프로그램도 같은 목적으로 강화할 계획이다.
리처드 홀브룩 미 아프간ㆍ파키스탄 특사는 오는 28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아프간 국제회의는 재통합 프로그램 기금을 마련하자는 아프간 정부의 제안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재통합 프로그램이 탈레반 분열 효과가 있다며 "과거 탈레반에 연루됐지만 폭력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아프간 정부가 끌어들일 수 있다면 평화 협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런 가운데 아프간 탈레반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으로 알려진 파키스탄 정보당국은 미국이 인도와 대립하고 있는 파키스탄의 지역 내 영향력을 지지해준다면 탈레반과의 협상을 중재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FT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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