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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품질神話 붕괴> ④'남의 일' 아니다(끝)

日 벤치마킹해온 국내 대기업도 위험성 다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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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기자  2010.02.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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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벤치마킹해온 국내 대기업도 위험성 다분

원가절감의 허점 교훈..'품질혁신'만이 살길



(서울=연합뉴스) 권혁창 기자 = 도요타 리콜 사태를 우리 기업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품질의 대명사'로 불리던 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추락이 일단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의 반사이익으로 직결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바클레이스 캐피탈은 도요타 사태로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의 시장점유율이 0.7%포인트가량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지난 1월 도요타의 판매는 전년 동기대비 16% 감소했고, 현대차는 무려 24% 늘어났다.

도요타에 이어 일본 제2의 자동차 회사인 혼다마저도 대량 리콜을 발표하면서 이번 사태는 도요타라는 일개 기업이나 일본 자동차 업계의 문제가 아니라 소위 '모노즈쿠리'(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제품 만들기)로 대변되는 일본 기업 전체의 신뢰도 훼손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 기업들의 위기는 이렇듯 각 산업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에 글로벌 톱 기업으로 뛰어오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일본 기업들을 벤치마킹해온 우리 산업계로선 일본 업체들을 덮친 파도가 우리에게도 곧 쓰나미처럼 닥쳐올 수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다.

무엇보다 도요타의 추락은 급속한 양적 팽창을 따르지 못한 품질 관리의 허점 때문인데, 이는 소위 '마른 수건도 짜낸다'는 식의 부품 단가 인하와 이에 따른 원가절감을 고스란히 부품업체에 떠넘긴 것이 원인 중 하나였다.

실제로 도요타는 지난달 국내외 부품업체에 2013년까지 납품 가격을 30% 이상 낮출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청업체 쥐어짜기'에 관한 한 우리 대기업들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가격경쟁력을 위한 원가절감을 우선적으로 협력업체에 전가하는 관행은 자동차업계를 비롯한 산업계 전반에 확산돼 있다.

한국산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4년 전보다 5.3% 줄어든 반면, 국내 5개 자동차업체에 납품하는 우량 협력업체 17개사의 평균 영업이익은 22.4%나 감소했다.

또 부품업체 중 현대차 계열사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003년 8.4%에서 2008년에 9%로 높아진 데 비해 비계열사는 4.8%에서 2.9%로 오히려 떨어졌다. 협력업체, 특히 비계열 협력업체들이 극심한 납품단가 인하 압력에 시달리고 있음을 방증한 것이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11일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가 지속되면 도요타 사태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우려했다.

도요타 사태에서는 전 세계 각지에 공장을 세우고 생산량을 단기간 내에 늘려가고 있는 데 대한 위험성도 교훈으로 읽힌다.

도요타의 경우 규모 확대의 경쟁이 결과적으로 '품질 신화'의 붕괴를 가져온 케이스다.

전 세계 자동차경기가 활황세를 타던 2004∼2007년 도요타는 멕시코, 체코, 중국, 미국, 러시아 등지에서 매년 60만대씩 생산을 늘려가면서 3년 만에 총 300만대에 달하는 생산능력을 키웠고 여기에서 품질 관리에 구멍이 생겼다.

현대.기아차 역시 최근 3∼4년간 기아차 슬로바키아, 현대차 체코, 현대차 인도 2공장, 현대차 중국 2공장, 기아차 미국 조지아 공장 등에 각각 최대 연산 30만대씩 생산능력을 확충, 조만간 650만대의 글로벌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대.기아차의 확장된 생산능력이 디딤돌이 될지 걸림돌이 될지는 역량 구축의 정도에 달려있다"며 "생산능력을 자랑하기보다 어떻게 어디에 팔 것인지를 걱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패한 회사는 규모가 경쟁력이 아니라 걸림돌이 됐으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도요타에 앞서 미국의 빅3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도요타가 몰매를 맞는 배경에 미국이나 유럽의 '일본 때리기'적인 요소가 있다면 이 역시 우리 기업에는 반가운 일이 아니다.

도요타 본사가 공식 사죄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신속한 사태 수습을 약속했는데도 미국 교통장관이 "리콜 차량의 운행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한 것은 의도적일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미국 빅3가 몰락하는 와중에 도요타가 미국 시장을 장악하며 세계 1위로 기세 좋게 치고 올라오는 것이 못마땅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의도적 때리기는 언제든 한국 제품을 겨냥하게 될 수 있고 '동양 제품'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왜곡될 소지도 없지 않다.

무역 전문가들은 불똥이 자동차뿐 아니라 전자, 반도체 등 다른 제품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에서 유독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대기업들은 이런 미묘한 이상기류를 면밀하게 점검하고 차분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삼성전자나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업계에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품질 경영에 총력을 쏟아왔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지적도 있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1995년 통화 품질에 문제가 있던 휴대전화 15만대(500억원 어치)를 구미공장에서 불태운 사건은 '애니콜' 신화의 밑거름이 됐으며 이는 '불량은 암이다'라고 강조해왔던 이 전 회장의 품질 제일 경영론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도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현지에 연구팀을 보내 현지 날씨와 도로 상태는 물론 운전습관까지 품질에 반영시키는 정 회장이 현대차의 성공 원동력"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품질을 제1의 화두를 삼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도요타의 경우에서 보듯 아무리 잘나가는 기업도 품질이나 안전성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한순간에 위험해질 수 있다. 더욱이 기업은 지금까지 자신들을 성장시켜온 기술력을 과신하면서 '성장의 덫'에 걸릴 수도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기아차, LG전자, 포스코 등 우리나라의 글로벌 기업들이 가혹하리만큼 중단없이 이어지는 고통스러운 혁신의 길을 감내하지 못한다면 체질적으로나 국제적 상황으로 보나 언제든 일본 기업들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장수 기업일수록 품질을 향한 끊임없는 혁신이 필요하다'는 말이야말로 우리 대기업이 새겨야 할 금과옥조가 아닐 수 없다.

<사진설명> 도요타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사장이 9일 리콜 파문 발생 이후 두 번째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사과하고 있다.

fait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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