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계획경제 복원을 겨냥한 북한의 화폐개혁 및 시장폐쇄 조치가 극심한 인플레와 공급경색에 막혀 사실상 실패로 끝날 것이 유력한 가운데 북한 당국이 다시 시장을 허용하면서 주요 품목별 `국정가격'(한도가격)을 공표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북한 당국이 왜 이런 조치를 취했는지를 읽기 위해서는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호언하며 시작된 계획경제 복원 시도가 불과 두달여만에 `용두사미'로 끝나게 된 과정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작년 11월 말 화폐개혁을 단행한데 이어 지난달 중순에는 주요 도시의 종합시장을 모두 폐쇄하고 대신 열흘마다 열리는 농민시장에서 일부 농산물만 거래하도록 했다.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국가의 부족한 배급망을 보충하는 역할을 해온 시장이 `조연'에 그치지 않고 주민들의 중요한 경제생활 터전으로 자리잡자 사회주의 근간을 흔드는 환부로 간주해 정면으로 `메스'를 들이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을 대신해 주민들에게 각종 필수품을 제공해야 할 식량배급소, 국영상점 등 `공적 공급망'은 북한 당국의 기대만큼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옛돈과 새돈을 100 대 1 비율로 바꾸는 화폐개혁을 하고도 노동자, 농민 급여를 종전과 비슷하게 지급해, 일시에 구매력을 100배 가량 높여준 포퓰리즘 정책도 악화일로의 공급 부족을 부채질했다.
결국 시장을 통한 식량공급이 끊어지면서 함경남도 등 일부 지역에서 아사자가 속출해 민심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북한 당국은 화폐개혁 등 일련의 조치를 주도한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을 해임하고 시장 문을 다시 열기에 이르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런 정황을 종합하면 다시 허용한 시장 입구에 100가지 품목의 `국정가격'을 붙여놓은 북한 당국의 고민도 어느 정도 선명히 읽혀진다.
시장 단속에 나선 보위부원이 백주에 테러를 당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흉흉해진 민심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시장 폐쇄 방침을 뒤집기는 했지만 천정부지로 물가가 오르는 것을 마냥 내버려둘 수만은 없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것이다.
또한 쌀 1㎏을 기준으로 볼 때 이번 국정가격(240원)은 화폐개혁 직후인 12월 초 고시된 가격( 23원)의 10배가 넘고, 최근의 시장가격(600원)에는 절반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결국 북한의 의도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형성된 `시장가격'은 어느 정도 인정하되 인위적인 행정력을 동원해서라도 물가 상승세는 최대한 눌러 보겠다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시장을 통제하려는 북한 당국의 개입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귀결됐다는 점에서 이번 국정가격을 통한 물가억제 시도 또한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북한은 2002년 `7.1조치' 이후에도 `시장한도가격'을 정해 물가를 억지로 통제했고, 때로는 식량 등 곡물 거래를 금지시키기도 했지만 음성거래만 부추겼을뿐 정책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더구나 이번에는 인플레의 근본 원인 중 하나인 노동자, 농민 계층의 풍부해진 구매력이 그대로 살아있는데다 공급 부문에서도 획기적인 개선책이 나올 여지가 거의 없어 결국 국정가격 공표도 유야무야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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