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스트리흐트조약의 '구제불가' 조항 해석 분분
"체면 구기더라도 IMF 구제받아야" 의견도
(브뤼셀=연합뉴스) 김영묵 특파원 = 유럽 발(發) 금융위기 진앙인 그리스의 심각한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유럽연합(EU), 특히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 회원국이 그리스를 구제할 수 있는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타 회원국이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을 제공할 수도 있고, 할 수도 없는 모호한 상황이다.
창설 조약인 마스트리흐트조약부터 EU는 공동체가 특정 회원국의 (재정적) 의무와 책임을 떠안지 못할 뿐 아니라 회원국 사이에도 의무와 책임을 떠안지 못하도록 하는 이른바 '구제 불가(no-bail out)' 규정을 제103조에 명시했다.
이 조항은 암스테르담조약, 니스조약을 거쳐 현재 리스본조약까지 계승돼 기본적으로는 공동체의 '지갑'이든, 다른 회원국의 '지갑'이든 어디에서도 그리스를 도와줄 방법은 없다.
그러나 또 다른 EU 법규에는 "이례적인(exceptional) 위기에 의해 회원국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는 재정적으로 도움을 줄 수도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어 창설조약상의 구제 불가 조항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제공할 여지는 있다는 해석도 없지 않다.
더욱이 구제 불가 조항도 "의무와 책임을 떠안지 못한다"라고 돼 있어 '기술적'으로 해석하자면 이 조항이 명백히 구제금융 제공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나와 상황 여하에 따라 다른 회원국이 그리스를 도와줄 여지는 충분하다.
다만, 문제는 구제금융 제공이 가능하더라도 과연 누가 먼저 도움의 손길을 뻗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리스는 이미 통계 왜곡으로 다른 EU 회원국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데다 루마니아, 불가리아 못잖게 부패가 만연한 국가로 낙인 찍혀 기꺼이 그리스를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국가가 아직은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위기는 그리스의 문제일 뿐 그로 말미암은 유로화 약세가 오히려 수출 경쟁력을 높여준다는 '근시안'에 매몰될 경우 그리스 구제에 나설 회원국을 찾기는 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회원국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그리스가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 유일한데 브뤼셀 외교가에서는 정치적으로 EU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해법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런 가운데 유럽 거시경제ㆍ금융 전문 싱크탱크인 브뤼겔의 장-피사니 페리 소장과 앙드레 사피르 브뤼셀자유대학(ULB) 교수는 지난 2일 파이낸셜 타임스(FT) 기고문에서 "정치적으로 체면을 구기더라도 EU 정상들은 그리스에 IMF 구제금융을 요청하도록 압박해야 한다"라고 충고했다.
27개 EU 회원국 정상들은 오는 11일 브뤼셀에서 경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특별 정상회의를 갖는데 이 자리에서는 그리스 등 일부 유로존 국가의 재정적자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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