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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평에서 겨울나는 사람들>

한파속 노숙인쉼터ㆍ쪽방촌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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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기자  2010.01.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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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속 노숙인쉼터ㆍ쪽방촌 탐방기



(서울=연합뉴스) 한상용 이한승 김연정 기자 = 온돌 바닥으로 된 190㎡(약 58평) 크기의 큰 방 하나에는 60∼70여명의 사내가 모여 앉아 있었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밖의 추위를 피하러 왔거나 일용직 일자리를 찾는 노숙자들이다.

14일 찾은 서울 용산구 갈월동의 노숙자 사회복지시설인 '다시서기 상담보호센터' 3층의 풍경이다.

한 사람당 한 평도 되지 않는 공간을 차지한 이들은 텔레비전을 보거나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실내에 모여 있어도 춥기는 마찬가지인 듯 노숙자들은 검은색과 회색의 두꺼운 점퍼를 입고 모자까지 눌러쓴 모습이었다.

다시서기 상담보호센터 이종만 실장은 "최근 날씨가 추워지면서 시설 이용자 수가 더 늘었다"고 전했다.

◇ 추위 피해 쉼터로…무료식사 두끼로 하루 = 20여명이 모여 있던 4층 온돌방의 풍경도 3층과 비슷했다. 방 옆 세탁실은 한파로 하수구가 얼어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5층은 전체 140명이 잠을 잘 수 있는 2층 침대가 빼곡하게 늘어서 있지만 개방 시간이 오후 7시~오전 6시라 청소를 하는 직원 2명을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방 옆에 샤워시설은 보수 공사 때문에 당분간 사용이 불가능했다.

이 시설은 술을 엄격하게 금지한 탓에 취한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지만 흡연자가 많아 계단 사이에 재떨이가 마련돼 있었고 2~3명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한 달 동안 이 시설을 이용했다는 노숙자 김모(35)씨는 "시설 면에서 이 정도면 수도권에서 최고라고 들었다. 다른 곳에서도 2~3개월 있어 봤지만 여기 시설이 제일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생활 보장이 안 되고 단체 생활을 해야 하는 탓에 김씨는 "가능하면 이곳보다는 고시원에 거주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방 크기보다 수용 인원이 많다 보니 옆에 누워 자는 사람이 코라도 곯게 되면 숙면을 취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 시설은 215명이 정원으로, 평소 200명~220명이 잔다고 센터측은 설명했다.

비슷한 시간대 서울 영등포역 인근 롯데백화점 뒤편 쪽방촌.

모두 570가구가 밀집해 있는 쪽방촌에 들어서면 약 1m 폭의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1~2층짜리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슬레이트 지붕에는 고드름이 달렸고 골목길에는 다 탄 분홍색 연탄재가 드문드문 널려 있다.

한 집당 보통 5~6개의 방이 있고 방 한 개의 쪽방 넓이는 약 3.3㎡(1평) 정도. 이들은 집주인에게 보증금 없이 대개 월세 20만∼25만원 정도를 내고 생활하고 있다.

집 문은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낮게 내리깔려 있어 출입이 불편했다.

난방은 연탄을 이용하는 집도 있지만 대부분은 전기장판을 썼다. 인근 교회에서 제공하는 무료 식사로 하루에 두 끼만 먹고 생활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1인 단독 가구주가 대부분이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를 데리고 사는 가정도 있었다. 50대 중후반의 남성과 고령자 부부가 눈에 자주 띄었다.

이곳에서 만난 이용전(62)씨는 "지난해 8월 쪽방촌에 들어와 혼자 살고 있다. 전기장판이 있지만 날씨가 너무 춥다"고 말했다.

또 다른 쪽방촌 주민인 박모(31.여)씨는 "전기장판을 켜고 옷을 두껍게 입고 자도 바람이 많이 불어 추위를 항상 느낀다"며 "빨리 겨울이 지나기만을 기다린다"고 했다.

◇ 자유없고 불편한 쉼터…"개선 서둘러야" = 노숙자들이 서울 곳곳의 쪽방촌에서 힘겨운 겨울나기를 하고 있고 노숙자를 위한 쉼터로는 주거 대책에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다시서기상담보호센터처럼 그나마 시설이 괜찮아 노숙자들이 자주 찾는 일부 쉼터도 있지만 많은 쉼터가 정원을 채우기 어렵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서울시는 일반 쉼터 24곳과 특화쉼터 13곳, 재활쉼터 2곳 등 모두 39곳의 노숙자 쉼터를 운영 중이다.

서울시와 각 구청은 길거리 노숙자에게 "쉼터에 들어가 몸을 회복하고 일자리도 구하라"고 요청하는 상황이지만 현실의 목소리는 다르다.

10여년간 노숙생활을 했다는 황모(58)씨는 "여러 차례 쉼터와 노숙자 복지시설에 들어가 생활했지만 기상과 취침 시간이 정해져 있고 발표도 해야 한다. 자유가 없고 불편해서 다시 나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숙자 정모(53)씨는 "노숙인 쉼터는 불편해서 안 들어간다. 여러 명이 공동생활을 하다 보니 별사람이 다 있고 생활 자체가 자유롭지 못하다. 고생하더라도 혼자가 낫다. 쉼터가 텅텅 비었지만 마음 불편해서 안 가는 거다"라고 했다.

홈리스행동 이동현 상임활동가도 "쉼터가 주거 공간으로서 적절치 않아 생기는 문제다. 내무반식 생활 구조에 한 방에 여러 명이 지낸다. 사람이 너무 다양해 (적응하기) 힘들다고 한다"며 쉼터의 구조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숙자들에게 충분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 사회의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박석진 활동가는 "노숙자에게 왜 일을 안 하느냐고 해도 그들 가운데 일부는 일하고 싶어도 노숙 생활하면서 건강 안 받쳐주는 것 같고 일할 기회 자체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 노숙자 관련 업무 담당자는 "쉼터의 이용에 대해서 일부 시각은 다를 수 있다"며 "노숙하는 분들의 얘기를 듣고 쉼터를 원하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서울 거리노숙자 489명…"배 이상 많다" 주장도 = 서울시는 작년 12월 말 기준으로 서울 노숙자 복지 시설인 쉼터 거주자 2천446명, 거리 노숙자 489명 등 전체 노숙자는 2천935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거리노숙자는 서울역이 158명으로 가장 많고 시청ㆍ을지로입구 주변 110명, 용산역 89명, 영등포역 75명, 종각 등 10곳 57명 등 순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 봉사단체 관계자는 "서울시는 도시 이미지를 고려해 노숙자 수를 적게 파악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실제 거리 노숙자는 물론 전체 노숙자 수도 서울시가 파악하는 것보다 배 이상은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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