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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12회째 재해현장 출동 김동수 교수

아이티 포함 해외 12개국서 의료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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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기자  2010.01.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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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포함 해외 12개국서 의료봉사



(포르토프랭스=연합뉴스) 한상용 기자 = "재해가 터지면 어떻게든 제가 가게 됩니다. 중독성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하하하"

세계 각국에 대규모 재해나 전쟁 또는 내전이 발생할 때마다 달려가는 국내 의료인이 있어 눈길을 끈다.

주인공은 연세대의료원에서 소아과 교수를 맡고 있는 김동수(57) 교수.

김 교수는 지난달 목 디스크 부상에도 불구하고 최근 대지진이 발생한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지난 22일부터 파견된 연세대 `의료봉사단' 단장 자격으로 이곳을 찾았다.

김 교수는 연세대의료원 내과와 마취과 전문의, 간호사, 약사 등 10명으로 구성된 봉사단을 총괄 지휘ㆍ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가 재해 현장을 방문해 직접 의료봉사 활동을 벌인 국가는 아이티가 12번째다.

1999년 대지진이 발생한 터키를 비롯해 2005년 1월 쓰나미가 휩쓸고 간 인도네시아, 그해 10월 파키스탄 지진 현장, 2002년과 2003년 전쟁 직후 국가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방문해 사랑의 의술을 펼치기도 했다.

또 방학 때면 베트남과 태국, 우즈베키스탄, 몽골, 카자흐스탄, 인도 등 의료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소외 지역을 찾아다녔다.

북한 용천 대폭발, 중국 쓰촨성 대지진, 미얀마 사이클론 때도 현장 봉사 활동을 계획했지만 각 해당국이 입국을 허락하지 않아 무산된 게 아직도 아쉽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교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 봉사 활동은 단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했을 때라고 한다.

그는 "이라크는 정말 죽음을 각오하고 갔다. 언제 내 머리에 총알이 날아올지 몰랐다. 눈앞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고 매일 밤 총소리에 잠도 제대로 못 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알 카에다 조직원과 우연히 맞닥뜨리고 나서 두목까지 만나 그를 진찰했던 일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김 교수는 "그때는 알 카에다 조직이 한국에 대해 잘 모를 때였다. 의료봉사 활동을 한다고 하니까 차를 내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자신의 신장을 검사해 달라고 해 진료를 해줬었다"고 회고했다.

김 교수가 이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세계 각국의 위험 지역에서 봉사 활동을 벌이는 이유는 힘든 만큼 어려운 사람을 돕는 보람도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상을 목적으로 한 봉사 활동은 아니었지만 김 교수는 2005년에는 세계의사협회가 주는 `세계의 참의사 상'을 받았고 왕성한 의료봉사 덕에 그해 외교통상부장관 표창장도 탔다.

김 교수는 "어려운 지역에 봉사활동을 가면 고생도 하고 어려운 만큼 보람도 크다. 그래서 한 번 갔다 오면 또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마약과 같은 느낌도 든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애초 주임교수인데다 목 디스크, 인턴 교육 등으로 아이티에서 봉사활동을 할 계획이 없었지만, 막판에 상황이 뒤바뀌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는 "1주일 전 한국에서 전쟁 꿈을 꿨는데 학교를 지킬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군이 함께 가자고 해서 학교에서 나왔다. 신기할 정도로 지금 상황과 비슷하다"면서 "앞으로 어떤 일이 제 앞에서 기다리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김 교수는 앞으로 목표에 대해 "재해가 일어나면 24시간 내로 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의료진 수준에 대해선 "미국, 일본 등과 비교해 해외에서 의료봉사를 한 역사는 짧지만 의료 수준은 매우 좋고 봉사활동을 할 때 세계 각국 주민에게서도 인기가 매우 높은 편이다"고 높게 평가했다.

gogo21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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