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 새판짜기..美 조기재개..中 시간끌기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 6자회담 재개를 둘러싸고 북.미.중 3국의 수계산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겉으로는 6자회담 조기재개 분위기를 띄우면서도 물밑으로는 서로에게 '공'을 떠넘기며 제각기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기 위한 수싸움에 골몰하고 있다.
우선 북한은 6자회담의 '새판짜기'에 전략적 방점을 찍고 있다는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회담의 틀과 의제를 새롭게 짜 사실상 5대 1로 포위된 고립구도에서 탈피하고 논의를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나가려는 포석이다.
북한이 1일 신년 공동사설에서 평화체제 논의를 핵심화두로 띄운 것은 이런 맥락이다. 비핵화 논의의 '종속의제'로 치부돼온 평화체제 논의를 '주(主)의제'로 끌어올림으로써 협상의 틀을 완전히 바꾸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북한이 6자회담 복귀에 대한 '확답'을 미루는 것도 바로 미국으로부터 평화체제 의제화에 대한 양해를 끌어내려는 포석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평화체제와 함께 북.미 관계정상화도 북한이 미국에게 '답'을 듣기 바라는 의제다.
그런 한편으로 북한은 중국이 계속 '든든한 원군'으로서의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북.중간 고위급 인사교류가 활발해진 가운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것은 이런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이 중국 지도부가 강조해온 '대화와 협상'이라는 표현을 신년 공동사설에 원용한 점도 외교가가 유의하는 대목이다.
미국은 6자회담의 조기 재가동에 일차적 목표를 두고 있는 분위기다. 이란 핵문제와 아프간 테러로 정치적 환경이 어수선한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북핵 문제에서 가시적 성과를 끌어올리려는 분위기가 읽혀진다. 특히 4월 핵안보정상회의와 5월 NPT(핵무기비확산조약) 평가회의를 앞두고 있는 점은 '핵없는 세계' 구축을 공약으로 내건 오바마 대통령에게 심리적 부담이 되고 있다.
이언 켈리 미 국무부 대변인이 5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에 대해) 말이 아닌 실천을 기대한다"고 강조한 것은 6자회담 재개의 성과를 조기에 거양하려는 미 행정부의 분위기를 보여준다는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하지만 미국이 실제로 기대를 거는 쪽은 중국이다. 6자회담 의장국이면서 북한에 대해 실질적 영향력을 가진 중국이 대북 설득에 나서는게 가장 유용한 해법이라는게 오바마 행정부의 인식으로 보여진다.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지난달 국무부 브리핑에서 "중국이 향후 몇 주간(few weeks) 이니셔티브를 (6자회담 재개에 대한) 조율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체제 논의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일단 한국과 궤를 같이한다. 평화체제 논의가 비핵화 논의의 초점을 흐리지 않도록 비핵화 논의가 일정한 진전을 거둔 이후에 논의하는 쪽으로 한.미간 공감대가 구축돼있다는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미국의 입장은 유동적으로 흐를 개연성이 적지 않다.
6자회담 재개의 키를 쥔 중국은 '만만디 전략'이다. 북한의 손목을 이끌고 서둘러 6자회담장으로 나오라는 미국의 요구에 일단 수용하는 자세이지만 쉽게 움직이지는 않으려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내부 인사이동과 연초의 빼곡한 일정이 부분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사이동에 따른 내부 체제를 정비하고 업무를 준비하려면 물리적으로 구정연휴(춘절) 이전에 6자회담을 재개하기가 어렵다는게 소식통들의 얘기다. 중국은 4일 추이톈카이(崔天凱) 주일 중국대사를 외교부 부부장에 임명하는 등 외교라인 일부를 교체했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이유이고 내용상으로는 시간끌기의 의미가 강해보인다는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중국으로서는 6자회담 재개와 이후 협상과정에서 확실한 이니셔티브를 구축한다는 목표 아래 시간을 최대한 끌면서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말해 미국이 주도하는 북핵논의의 흐름을 일정정도 제어하고 북한을 자신의 '우산'아래로 끌어들이려는 구상에 골몰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정일 방중설'도 이와 맞물려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이 김정일 방중이라는 '빅 이벤트'를 연출하는 모양새를 갖춰 6자회담을 재개함으로써 자신의 위상을 과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북핵업무의 중심축이 중국 외교부에서 당으로 넘어온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은 더이상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더이상 테스트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며 "북한에 대해 손을 놓치 않겠겠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6자회담 핵심 플레이어들의 수싸움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6자회담 재개의 초침이 빨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는게 외교가의 지배적인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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