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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빌딩이 즐비한 21세기 우리나라의 한 구석을 들여다보면 쪽방촌이 존재한다. 전·월세 보증금 없이 월 20만원을 내야 하는 1평 남짓 몸 하나 누우면 그만인 쪽방, 현재 서울 5개를 포함해 전국에 12개의 쪽방촌이 있다. 이러한 쪽방촌 사람들을 위해 14년간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어느 취재원의 권유로 만나본 등대교회 김양옥 목사, 그가 남모르게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을 위해 봉사한 행적을 따라가 봤다.
시작은 미약하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김양옥 목사가 쪽방촌 봉사를 시작하게 된 것은 군 제대 후 전도사 시절 교회 관계자들이 도움을 받고자 찾아온 노숙자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돈을 조금 쥐어주고 돌려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물질적인 도움은 주지 못할지라도 밥 한 끼 차려주거나 따뜻한 말 한 마디 해주지 못할까 하는 마음이 들면서부터다. 그래서 나중에 거리의 노숙자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목회활동을 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그러던 2000년 신학대학 재학 중 영등포에 있는 광야교회를 알게 되는데, 그 교회는 영등포 쪽방촌 사람들과 노숙자를 위해 봉사하는 교회로, 그곳에서 4년간 부목사생활을 하며 평소 품어온 생활을 실천에 옮기게 된다. 뜻이 있으면 통한다고 했던가. 김 목사의 눈에 아무런 도움의 손길조차 미치지 못하고 있는 동대문 쪽방촌이 들어왔다. 김 목사는 주저 없이 2006년 3월 창신동 지하에 지금의 등대교회를 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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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시간을 주시되,
그로 인해 얻은 귀한 인연과 깨달음
동대문 쪽방촌이 서울에서도 규모가 가장 작은 쪽방촌이기는 하지만, 쪽방촌을 돕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쪽방촌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국민생활기초수급자로, 독거노인이거나 가정해체로 인해 혼자 사는 사람 등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 아무리 가난한 달동네라도 보증금이 있지만, 쪽방촌 사람들은 이러한 보증금마저 낼 여력이 없는 사람들로, 우리 사회에서 몰릴 대로 몰려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상황에 있는 사람들인지라 처음에는 김 목사를 경계하고 오해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들로부터 맞거나 배신을 하고 떠난 사람까지 있었다.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김 목사의 말 못할 고난의 시간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기도를 통해 김 목사는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특별히 아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게 된다. 쪽방촌 사람들과 노숙자들에게 더욱 다가가고 그들에게 곤란한 일이 생기면 김 목사가 나서서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김 목사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의 태도가 냉담해도 개의치 않고 그들에게 다가서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김 목사는 아내와 사역활동을 계속하면서 묵묵히 성도들의 변화를 기다려 주었다. 초기 서너 명이었던 성도가 지금은 80명 넘게 늘어났고, 380명이던 동대문 쪽방촌 사람들도 350명으로 줄어들었다. 김 목사가 쪽방촌 사람들에게 임대주택을 얻을 수 있도록 돕고 있기 때문인데, 이번 달에도 임대주택을 얻어 나가는 사람이 있다고 다행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등대교회를 열려고 마음먹었을 때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초기 힘든 시간을 보낸 김 목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이들을 아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이들을 위해 봉사활동과 사역활동에 마음을 다해 노력하기로 했다. 그런 마음을 알아주셨는지 김 목사에게 고마운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본사랑재단 최복이 이사장과의 인연을 소개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대하는 최 이사장의 마음이 남다르다고 했다. 2008년 교회에 찾아와 쪽방촌을 일일이 둘러보면서 눈물을 흘렸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교회에 도움을 많이 주면서도 이 정도밖에 돕지 못해 미안해하는 최 이사장을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김 목사의 아내인 이소영 사모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쪽방촌 사람들과 노숙인을 위해 지금까지 무료급식을 준비하고 김 목사를 묵묵히 도와주었기 때문에 김 목사가 더욱 힘을 낼 수 있었다.
또 하나의 고민, 그러나 길은 있을 것이다.
요즘 김 목사에게 고민이 하나 있다. 추운 날씨에 노숙인이 늘고 있는데, 잠자리가 없는 여자 노숙자 때문이다. 현재 지하에서 2층으로 옮긴 교회에서는 밤에 남자 노숙자들이 자고 있어 여자 노숙자들과 함께 혼숙하게 되면 안 되기 때문에 임시로 여관을 잡아준다고 한다. 그래서 1층 게임장을 임대해서 그곳을 여성 쉼터와 무료급식 장소로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여력이 되지 않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김 목사는 하나님께서 어려움을 주실 때에는 반드시 어려움 가운데 길도 함께 주신다고 말을 전했다.
본지 기자가 취재를 위해 두 번 등대교회를 들렀는데, 그때마다 그곳에 계신 분들이 자리를 권하고 음료를 권했다. 김 목사가 아니었다면 쪽방촌 안에서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봤을 그들이 먼저 사람에게 살갑게 다가서는 것을 보고, 김 목사처럼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일하는 분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