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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부정선거’라는 말을 하셨나요?

민주주의 사회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참여하는 시민을 필요로 한다.

▲세종교육연구소장(영문학박사)

 

[대한뉴스=김기준 기자] 6.3지방 선거가 끝났다.

 

그런데도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를 하지 못한 후유증으로 우리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 민감한 시국에 필자는 정치적 중립이라는 이름 아래, 수업 중 발언이 문제 되어 오늘부터 6월 한 달간 ‘수업 배제’라는 일방적 문자 통보를 받았다. 세종시에 있는 양지고등학교(교장,김수동)에서 2,3학년 수업을 지난 6월 4일부터 15일(월)까지 약 22시간의 수업을 배당받아 진행해 왔었다.

 

그런데 어젯밤 늦게 담당 장학사(장유미 장학사)로부터 “낼과 모레 수업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 이유는 낼 아침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라고 문자메세지가 왔다. 그날 밤 심기가 불편하여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아침 9시경에 장학사로부터 전화가 와서 “ 대뜸 확인차 묻는다면서 왜 수업 중에 정치적 발언을 하셨을까요? 그리고 왜 학생들에게 SNS 계정(Instagram)을 알려주셨나요?”라며 학생의 일방적 의견만을 듣고 추궁하고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면서 낼, 모레 수업과 다음주 15일(월) 양지고 수업 모두를 못하게 하였다. 게다가 6월 나머지 수업도 못하게 수업 지원을 받지 말라는 통보를 하였다. 그때 순간, 아하! 앞으로 나의 발목을 잡고 나머지 6개월 수업도 못하게 막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어이가 없었고 분노가 치밀었다.

 

학생의 민원이 들어왔으면, 당사자인 교사를 교육청으로 불러서 자초지정을 다 들어보고 후 조치로 ‘수업 배제’를 하여도 충분히 납득이 갈 텐데 한 쪽 이야기만 듣고 일방적으로 무례하게 통보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양지고 교장(김수동)은 민원처리를 일방적으로 나에게 양해와 확인절차를 밟지 않고 신속하게 처리하였다. 이에 필자는 강하게 항의하였고, 절차적 정당성과 당사자인 필자에게 정확한 확인절차를 밟지 않은 점을 장학사 윗선인 장학관에게 강력하게 어필하고, 제가 할 수 있는 나름의 조치를 취하겠노라고 항의하였다.

 

수업 중에 시사 문제를 꺼냈다가 학부모 민원을 받은 교사, 주말 집회에 참가했다가 징계 위기에 처한 교사, SNS에 정치적 의견을 올렸다가 교육청 경고를 받은 교사. 이런 일들이 2026년에도 한국에서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교사는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정치적 중립'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시민이라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정치적 표현과 참여의 권리를 광범위하게 제한받는다.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다.

 

왜 교사는 정치적 발언을 하면 안 되는가? 이 금지는 어디서 왔는가? 그리고 그것은 정당한가? 오늘의 필자의 억울하고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경험을 하면서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교사는 어떤 존재인가."

 

20세기 초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교사 자신이 먼저 민주적 시민이어야 한다. 공동체의 문제에 발언하고, 권력에 질문을 던지고, 공적 삶에 참여하는 시민. 그런 존재로서의 교사가 교실 안에 있을 때,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살아있는 실천으로 배울 수 있다.”라고 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조건은 공적 영역에서 말하고 행위하는 것이었다. 타인과 함께 공적 문제를 논의하고, 자신의 판단을 발언하는 행위를 통해 인간은 비로소 시민이 된다. 공적 발언권을 박탈당한 존재는 시민이 아니라 사적 개인으로 축소된다.”라고 했다.

 

이 두 사상가의 논의를 교사의 문제에 적용하면, 한국에서 교사에게 부과된 '정치적 중립'의 실체가 드러난다. 공적 발언권을 박탈당한 교사는 아렌트적 의미에서 시민이 아니다. 그리고 시민이 아닌 존재가 다음 세대의 시민을 길러낸다는 것은 듀이의 논리에서 근본적인 모순이다.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교사의 가르치는 행위는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 교육은 언제나 현재의 불평등한 구조를 재생산하거나, 아니면 그것에 저항하는 방향 중 하나를 향한다. 교사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중립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는 편에 서는 선택이다. 침묵의 강요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행위다.

 

듀이, 아렌트, 프레이리. 세 사람의 논의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같은 결론을 향한다. 교사의 정치적 발언권은 부가적 권리가 아니라, 민주주의 교육의 존립 조건이라는 것이다.

 

교실이 특정 정당의 선전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 원칙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해왔는가이다.

 

실제 제재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외연이 얼마나 넓은지 드러난다. 2009년 전교조 교사들은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시국선언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형사기소되어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을 받았다. 2015년에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 시국선언이 교육부의 검찰 고발로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의 국가 책임을 묻는 교사 1만 5,853명의 집단 선언도 징계 방침을 촉발했다.

 

이들 중 누구도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았다. 국가 정책에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국가적 참사에 책임을 물은 것이 '정치적 중립 위반'이 되었다.

 

프레이리가 갈파했듯, 교육에는 중립이 없다. 침묵을 강요하는 제도는 그 침묵을 통해 이미 하나의 정치적 선택을 하고 있다. 권력에 질문을 던지지 못하게 하는 것은, 권력에 복종하는 편에 서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참여하는 시민을 필요로 한다. 그 시민을 길러내야 하는 교사가 스스로 그런 시민으로 살 수 없다면, 교실에서 무엇이 가르쳐질 수 있겠는가.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은 교사 개인의 권리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다음 세대에 전달되는 방식의 문제다.

 

그래서 필자는 그런 교육을 하고 싶었고, 그런 상황에서 침묵하지 않았다.

 

그 결과 생존권과 교권을 박탈당했다. 그래도 진실은 분명 밝혀지듯이 나를 알아주는 학생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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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준 기자

'정직,정론,정필.의 대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