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탄생 100주년 ‘시 낭송의 밤’…미발표 시 4편 공개

2015.02.27 16:32:00

-400여 관객 참석, 향후 뉴욕과 파리에서도 공연 예정

내 마음속 우리 님의 고은 눈썹을
즈문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서정주, ‘동천’


 
지난 26일 저녁 7시, 동국대학교 이해랑 예술극장은 시로 물들었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 기념 시낭송 공연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가 2시간 20분 간 진행되었다. 기획·대본은 미당기념사업회 전옥란 사무총장이, 총감독은 동국대학교 윤재웅 교수가 맡았으며, 약 400여 명의 관객이 참석해 시의 밤을 즐겼다.

본 공연은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으로서 널리 알려진 대표작 ‘자화상’을 이영광 시인이 낭송하며 시작됐다. 사회는 유자효 시인이 맡았다. 또 미당의 시를 좋아하는 시인 이영광, 이시영, 문정희, 정끝별, 김기택, 민영, 민용태, 김초혜, 문효치, 박형준, 허혜정, 김행숙, 정진규, 김희옥 14명이 그들이 가진 예민한 감수성을 담아 ‘동천’, ‘꽃밭의 독백’, ‘귀촉도’. ‘무등을 보며’ 등을 낭송했다.

김행숙 시인은 시 ‘1994년 7월 바이칼 호수를 다녀와서 우리 집 감나무에게 드리는 인사’ 낭송 소감에 대해 “낭송 공연을 준비하며 마치 잊었던 구절을 다시 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시간과 무의식속에 묻혀 있던 어떤 구절을 찾은 듯 해서 기뻤습니다.”라며 벅찬 감동을 전했다. 그러면서  “미당 선생님의 「화사집」을 읽었을 때, 그때 느꼈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네요.”라고 덧붙였다.

또 연극배우 오현경, 윤석화, 전무송, 손숙은 첼리스트 박시은의 연주를 배경으로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풀리는 한강 가에서’, ‘나의 시’, ‘상리과원’을 연기하듯 낭송했다.
배우 손숙은 "문화 융성이란 말이 많은데, 진정한 문화 융성이란 삶 속에서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당 서정주 선생님은 당신의 말년에 시 낭송회를 하며 보냈어요. 그 시기가 마치 우리나라의 르네상스 같아요."라며 생전에 시 낭송 모임을 즐겨 가졌던 미당을 회상했다.

특히 이날은 미당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미발표 시 ‘1995년 올해에는’, ‘바이칼 호숫가 돌칼’, ‘제비꽃’, ‘어떤 종이 친구에게’ 네 편이 발표됐다. '1995년 올해에는'을 낭송한 민용태 시인은 낭송에 앞서 "미당 선생님은 생전에 '동천'을 가장 좋아하셨습니다. 이 시에도 '동천'을 연상할 수 있는 대목이 있네요."라고 말했다.

1995년 올해에는
먼저 백두산 천지에 올라
두 손을 그 푸른 물에 한 번 적시어 보고
그 다음엔
당나라 서울 서안(西安)이나 한 번
휘 휘 둘러보고

그러고는
시인 이백의 고향
그의 아미산월가의 고장
아미산 밑의 평강 냇물에
두 발이나 적시고 앉어 봤으면 싶군.
아미산의 ‘아(峨, 높을 아)’자를 ‘아(娥, 예쁠 아)’자로 고쳐서
하늘의 미인의 눈썹같이 어여뿐
그 산 봉우리의 그림자를 비치며
평강 냇물이 흘러가는 걸
가만히 굽어보며 있어 봤으면 싶군.

일곱 살 때 여름에 한문서당에서 멋도 모르고 배워서
밤에 마당에 모깃불 피워 놓고
그 모깃불 에워싸고 읊조리며 돌던
그 아미산월가를
인제는 그 멋도 제대로는 아는지라
근사하게 한 번 더 읊어 봤으면 싶군.

                                                      -서정주, '1995년 올해에는' 
고요한 분위기 속 시 낭송이 주가 된 공연이었지만, 다양한 무대를 통해  낭송회를 넘어 선 '종합예술의 장'이 되었다. 인디밴드 커플디는 지난 2011년 「화사집」 발간 70주년을 기념해 미당의 시 ‘서름의 강물’에 곡을 붙여 만든 노래를 이날 관객들에게 선보여 호응을 얻었고, 미당의 명시 ‘신부’를 노래한 박정욱 명창은 열정적 무대에 큰 박수를 받았다. 또 소리꾼 장사익은 ‘저무는 황혼’, ‘찔레꽃’ 등을 부르며 관객의 흥을  한껏 끌어올렸다.
본 행사를 총 감독한 동국대학교 윤재웅 교수는 “ 역사적 논란이 있는 작가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우수한 문학작품을 좋아하지 못하고 탄생 기념일을 기리지도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라며, “눈치 보지 않고 작품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문학에 대한 자긍심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낭송회가 문학을 문학으로서 즐기는 장이 되길 바랍니다”라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서정주 시낭송 공연은 고창 국화 축제 때 또 한 번 진행되며, 미국과 프랑스에서도 공연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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