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의 만세 함성이 터진 1919년 3·1운동

2026.02.26 17:42:59

그 후 107년의 세월이 흘렀다

 

 

 

(대한뉴스 유경호 논설위원장) = 나라면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았을까. 온 나라가 일제의 수탈로 신음할 때 오직 광복을 위해 대한독립 만세를 뜨겁게 외친 독립운동가들. 나라를 되찾는데 남녀 구분은 따로 없었다. 1919년 3월 1일 대한독립선언서가 발표됐다. 거사는 애초에 파고다공원에서 열리기로 했으나 갑자기 태화관으로 장소를 바꿨다.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군중심리로 인해 혹 불상사가 생길까 우려됐고 일본 경찰의 눈도 피하기 위해서였다. 태화관은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은 이완용이 살던 집이었다. 지금의 종로구 인사동 194-27 태화빌딩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다. 그 후 107년의 세월이 흘렀다.

 

3·1운동의 주축이 된 곳은 서울 종로이다. 독립선언서를 총지휘했던 캠프 손병희 집 터,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곳 보성사 옛터, 독립선언서를 보관하고 배부했던 곳 이종일 집터, 독립을 선포한 곳 태화관, 학생들의 독립운동 본부였던 승동교회 등. 그중 이종일 집터에는 현재 세계 어린이 운동 발상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당시 3·1운동은 학생과 시민, 종교인과 지식인 등 신분과 계층을 초월하여 특정 집단이 아닌 ‘국민 모두의 운동’이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는 그날의 함성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3월 1일을 국경일로 정하고 기념하고 있다. 기념의 의미는 과거를 되새기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3·1운동 107주년을 맞이하는 지금, 독립을 외쳤던 선조들의 정신적 유산은 새로운 시대적 과제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그 과제는 무엇인가. 첫째, 민주주의의 성숙이다. 3·1운동이 보여준 주권 의식은 오늘날 시민의 책임 있는 참여로 이어져야 한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태도는 모두 독립 정신의 현대적 실천이다. 둘째, 사회적 연대의 확장이다. 당시의 만세가 종교와 계층을 넘어선 연대였다면, 오늘의 연대는 갈등과 분열을 넘어서는 포용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것이 바로 3·1운동의 공동체 정신을 계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셋째, 자주정신의 실천이다. 선조들이 꿈꾼 독립은 단지 정치적 해방이 아니라 스스로 설 수 있는 나라였다. 오늘날 이는 기술과 경제의 경쟁력을 키우고, 우리 문화를 세계 속에 당당히 세우는 일로 이어진다. 국가의 역량을 키우는 일은 곧 독립 정신의 연장선이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애국심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며, 기억이 아니라 실천이다. 우리가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1919년의 외침은 오늘에도 살아 숨 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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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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