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기적.유기적 SW전략 부재"
"뒤늦은 대책, 각부문 세심한 접근 필요"
(서울=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국내 IT 시장의 난맥상에 대해 장기적인 기획과 디자인 부문을 도외시한 일차적 책임은 산업계에 있지만 각종 규제권한을 갖고 정책을 펼쳐온 정부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정부는 특히 IT서비스를 근간인 소프트웨어(SW) 생태계의 변화에 대해 옛 정보통신부 해체 이후 큰 크림을 그리지 못한 채 주먹구구식으로 접근해온 것이 사실이다.
최근 지식경제부를 중심으로 정부가 발표한 SW 육성 종합대책에는 정책 실패에 대한 자성이 담겨 있다.
종합대책은 일부 내용이 추가되고 1조원 가량의 예산을 확보한 것 외에는 기존 정책이 뼈대를 이루고 있다. 이는 정부도 이미 정답을 알고 정책을 펼치고 있었지만, 전략이 부족한데다 시행과정에서 제대로 적용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하드웨어(HW) 중심으로 IT 산업구조가 굳어진 가운데 정부 정책 역시 HW 위주로 진행되다 보니, SW 정책에 대한 실행 의지와 지원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구글과 애플 등 해외 IT 기업이 수년 전부터 장기적인 전략 아래 전 세계적으로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눈 뜨고 지켜보는 처지가 된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정부 측도 10년간 사용해온 IT 강국이라는 구호를 과감히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 스마트오피스, 콘텐츠 등에 관한 육성책을 발표할 때마다 정부 측의 배경 설명에서 거의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것은 "한국은 IT 강국이다. 그러나..." 이다. 최근 떠오르는 IT 핵심 분야 등은 대부분 미국 등 선진국을 쫓아가는 모양새가 됐다고 자인하는 꼴이다.
이 때문에 뒤늦었지만, 정부 각 부처가 SW 산업에 대해 장기적이고 유기적으로 디자인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SW 종합육성책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더욱 필요하다.
김진형 KAIST 교수는 "SW는 금융 분야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면서 "SW 생태계 재편은 단기적인 과제는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각 부문에서 섬세한 설계와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종합적인 접근을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아직 시장에서는 정부 정책에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당장 장기적 안목이 부족한 각종 규제 등이 시장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스마트폰 관련 서비스 업체들과 보안전문가들은 입을 가린 채 금융감독원을 성토하고 있다. 대상은 금감원이 스마트폰 해킹 사고를 우려해 서둘러 발표한 보안 기준이다.
금감원은 스마트폰에 유선에서 액티브X 기반으로 작동되는 공인인증서 도입과 악성코드 예방대책 등을 제시했다. 문제는 이 같은 방식이 글로벌 흐름과 동떨어졌다는 것이다.
국내보다 2∼3년 먼저 무선 사회로 들어선 미국과 일본의 경우 대신 기업에 서버 보안과 네트워크 보안을 강조하고 있다. 그만큼 기업의 책임의식도 강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지적은 모바일과 관련 SW 시장을 바라볼 때, 보안 사고를 우려한 규제 중심적 사고가 앞서나가서는 안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대기업의 '모바일 쇄국정책'으로 뒤늦게 모바일 시장이 열려 허겁지겁 선진국을 쫓아가는 현실에서, 큰 안목을 가지고 민간 부문에 힘을 보태주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 보안전문가는 "정부가 나서서 모든 것을 제어하려는 발상을 버려야 한다"면서 "시장에서 보안이 충실한 기업의 서비스가 스마트폰 이용자들로부터 선택받도록 해야 기업이 자체적인 보안 수준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공인인증서를 내세운 금감원 기준을 맞추기 위해 은행들이 아이폰용 뱅킹서비스에서 공인인증서를 단말기에 내장시킨 것은 행정안전부의 공인인증서 외부 저장 방침과 어긋난다.
국가가 보유한 정보 자원을 공개해 민간이 활용토록 하는 이른바 '가버먼트 2.0' 정책도 각 기관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의 버스 정보 서비스를 이용한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인 '서울버스'를 경기도가 한때 차단하고, 한국석유공사의 유가정보 등을 이용해 값이 싼 주유소를 찾아주는 '주유소 서치'가 석유공사의 제동으로 애플 앱스토어에 등록조차 못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공개된 공공정보는 SW 개발자들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모바일 서비스 발전에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선진국에선 오래전 공공정보 공개화에 팔을 걷어붙인 상황이다.
이 대목에서 정부가 자체적으로 서비스를 하려는 욕심은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각 기관이 민간의 정보 이용을 차단하려는 데는 자체 서비스에 대한 욕심이 깔려있는 경우가 상당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예로 정부는 효율적으로 축구장만 마련해주면 될 뿐 직접 선수로 뛰어서는 안된다"면서 "정부가 선수로 뛰면 민간 분야 선수들이 뛸 공간도 없어지고, 경쟁구조도 만들어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SW 저작권이 음원, 영상, 책 등 성격이 다른 요소와 저작권법과 함께 에 함께 묶여 있는 점 등도 지적받고 있다.
구글의 모바일 서비스 '폭격'에 잔뜩 긴장하고 있는 인터넷 서비스 분야도 최근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한 인터넷 기반 서비스사업 기본법 최종 시안을 놓고 "규제가 확대되는 것 아니냐"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밖에 정부 측이 각종 산업과 관련된 전문 솔루션이 개발될 수 있도록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관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꾸준한 감시와 지원이 이뤄져야 하며, SW 개발비 산정 방식을 인력 수가 아닌 기능 위주로 확실히 추진해야 '스타' 개발자와 중소기업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SW 벤처기업 우암의 송혜자 대표는 "SW를 그야말로 지식산업으로 키울 것이냐에 대해 진심 어린 고민을 해야 한다"면서 "특히 SW는 전 산업에 걸쳐있기 때문에 유행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산업과 함께 동반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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