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량 운전자 비협조와 도로혼잡 때문
"1분이면 생명 살린다…가족 탔다고 생각해달라" 호소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처자식이나 부모가 구급차에 타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안 비켜주지는 않을 텐데요. 운전자들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가 잦습니다"
서울 광진소방서에서 7년째 119구급차 운전요원으로 일하는 오경태(35) 소방교는 19일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를 태워 단 1초의 시간이라도 아껴 병원으로 데려가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방관적인 모습을 보이는 일반 차량 운전자들의 몰양심적인 세태에 강한 실망감을 토로했다.
119구급차가 지난해 출동한 143만여 건 중 신고 접수 후 4분 안에 현장에 도착한 사례가 고작 32.8%에 그친 것은 운전자들의 비협조적인 태도가 최대 원인이라는 게 오 소방교의 지적이다.
4분은 산소를 공급받지 못한 환자의 뇌손상이 시작되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운전자들이 구급차에 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은 꺼져가는 생명을 보고도 수수방관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오 소방교는 구급차에 대한 국민 의식의 문제점과 도로사정, 구급관련 규정 등을 거론하며 구급차 3대 가운데 2대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먼저, "구급차를 믿지 못해 길을 열어주지 않는 운전자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운전자가 구급차를 봐도 환자를 싣고 가는지 다른 볼일을 보려고 서둘러 가려는지 알 수 없어 길을 비키지 않는다는 것.
오 소방교는 "구급차라도 사고가 나면 운전자가 법적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구급차가 신호를 어기거나 중앙선을 넘어가면서 급하게 운행할 때는 정말 긴급한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당부했다.
구급차에 대한 인식이 개선돼 길을 열어주려는 운전자가 그래도 많지만, 간혹 일부러 구급차의 진로를 막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오 소방교는 "긴급 상황이 발생해 사이렌을 틀고 편도 1차선 도로를 달리는데 앞차가 길을 비켜주지 않아 중앙선을 넘어야 했다. 그런데 앞차 운전자는 창문을 열고 팔을 내 놓은 채 운전하고 있었다"며 고의적인 이송 방해 사례를 소개했다.
혼잡한 도로사정도 구급차의 도착이 늦어지는 원인으로 꼽았다.
오 소방교는 "교통체증이 심하거나 도로공사 중이면 운전자들도 비킬 수 없다. 정말 급한 신고를 받고 출동했는데 운전자들이 길을 비켜주지도 못할 만큼 도로가 혼잡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도로교통법도 구급차 운전자의 발목을 잡는다고 오 소방교는 목소리를 높였다.
긴급출동한 때에 구급차는 도로교통법을 무시할 수 있으나 사고가 나면 일반차와 똑같이 운전자가 사고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응급환자를 이송하다 사고가 나 운전면허가 정지되거나 취소되면 구급차 운전요원은 당장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돼 구급차 운전요원이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는 게 오 소방교의 설명이다.
그는 구급차에 길을 내줘야 한다는 의식을 뿌리내리게 하는 것만이 이송 지연을 막는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구급차 운전자에게 1분은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자기 가족이 구급차에 타고 있다는 생각으로 양보해주시면 고맙겠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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