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밤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시청 광장에서는 매일 오페라를 상영한다. 유학길에 올라 비엔나에 도착한 첫 날 저녁에 설레는 마음으로 시청광장에 자리를 잡고 본 오페라가 바로 푸치니의 ‘라 보엠’이었다. 가난한 시인 로돌포가 바닥에 떨어진 열쇠를 찾다가 여주인공 미미의 손이 닿자 차가운 그녀의 손을 녹여주며 테너의 아리아 ‘그대의 찬 손’을 불렀다. 그 주인공은 루치아노 파바로티였는데 뚱뚱한 몸은 보이지 않고 멋진 시인의 모습으로 미미를 유혹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멜로디로 목석도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아리아를 작곡한 푸치니, 그의 음악세계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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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치니 모습 |
858년, 푸치니는 이탈리아의 루카에서 성당 오르간 연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푸치니의 가문은 5대에 걸쳐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루카에 있는 산타마르티노 성당의 음악감독을 배출했기 때문에 푸치니도 자연스럽게 음악인의 길로 들어섰다. 5세 때 아버지가 죽은 이후로 푸치니가 성장할 때까지 성당 오르간 연주자 자리를 비워두었을 정도로 교회로부터 인정받는 가문이었다. 그는 14세 때부터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했고 아버지의 제자로부터 음악을 배웠다. 그러나 1876년, 18세 때 피사에서 베르디의 오페라‘아이다’를 보고 오르가니스트가 아닌 오페라 작곡가의 꿈을 키웠다.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푸치니의 꿈을 위해 가족들이 유학자금을 마련해 그는 1880년 가을 밀라노 음악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이며 실내악 작곡가인 바치니와 오페라 작곡가 폰키엘리에게 작곡을 배웠다. 1883년 학위를 받으며 졸업작품으로 제출한 기악곡은 밀라노 음악계의 주목을 끌었다.
오페라 작곡의 시작
오페라를 작곡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본을 사야만 했다. 가난했던 푸치니는 그럴만한 돈이 없었다. 그러나 스승의 도움으로 후불대본을 받아 단막 오페라 경연대회에‘요정 빌리’를 제출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으나 작곡가이자 대본가인 아리고 보이토가 이끄는 친구들의 모임은 이 작품의 공연을 위해 찬조금을 모아 1884년 5월 31일 밀라노의 달 베르메 극장에서 초연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베르디 작품의 음악 출판업자인 리코르디는 2부로 확대한다는 조건을 명시하고 판권을 사들였다. 그리고 리코르디는 라 스칼라에서 공연할 새 오페라를 의뢰하고 월급도 지급했다. 이때부터 푸치니와 리코르디 사이의 오랜 친분관계가 시작되었으며 푸치니에게 진실한 친구이자 후원자가 되었다. 처음으로 수입이 생긴 푸치니는 기쁜 소식을 어머니께 전하는 편지를 썼지만 이 사실을 모른 채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리고 동생마저 죽음을 맞은 불행 속에‘요정 빌리’ 2부의 작품이 겨우 완성되어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상연되었지만 완전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스승과 주변 지인들의 후원으로 3년에 걸쳐 완성한‘마농레스코’를 통해 첫 성공을 경험하게 된다. 1893년의 초연은 대성공이었고 당시 베르디의 마지막 오페라 작품‘팔스타프’가 끝나는 시점이어서 이탈리아 오페라계 작곡가의 세대교체로 평가받게 된다. 이것으로 푸치니는 명작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푸치니의 3대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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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 ‘라 보엠' |
-1896년 작‘라 보엠’
이 작품은 파리의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의 웃음과 눈물 어린 청춘의 사랑 이야기로 인물의 성격이나 장면의 묘사가 푸치니 자신의 어려웠던 지난날을 보여주듯 사실적인 표현이 매우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당시의 청중들은 푸치니가 서민을 향해 품고 있는 따뜻한 마음가짐을 느끼고, 그의 애절하고 매력적인 선율의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그 후 푸치니의 작품에 많은 기대를 가졌다. 남자 주인공 로돌포는 가난한 처녀 미미와 사랑에 빠지고 미미는 병에 걸려 죽음으로 슬픈 이별을 하는 통속적인 이야기이지만 테너의 대표 아리아‘그대의 찬 손’과 소프라노의 아리아‘내 이름은 미미’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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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스카 역의 마리아 칼라스 |
-1900년 작‘토스카’
여주인공인 토스카는 로마 최고의 성악가다. 그녀를 사랑하는 야비한 비밀경찰이 그녀의 애인을 정치적으로 모함해 죽이고 그녀는 복수를 결심하며 자살하는 내용으로 처음 등장하는 1막에서부터 애인을 조급히 불러대며 끊임없이 질투하고 과감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모습은 과거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성격의 오페라 여주인공이다. 푸치니는 1막에서 사랑스럽지만 단순하고 충동적인 토스카의 모습을 그려내며 그녀가 불행할 것이라는 암시를 보여준다.“하느님 앞에서 보자!”라고 처절하게 외치며 성벽 아래로 몸을 날리는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은 그녀가 이 억울한 운명의 장난에 순응할 생각이 없으며 하느님 앞에 가서라도 시비를 가리겠다는 결심을 표현한 것이다. 여태까지 대부분 푸치니 오페라 여주인공들이 자신을 이렇게 만든 세상을 용서하거나 용서해 달라는 말을 남기며 자비로운 모습으로 세상과 이별하는 모습과는 다르다. 이렇게 원한을 드러내며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토스카의 대표적 아리아인‘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도 오로지 노래와 사랑만을 위해 살며 선한 일만 하고 살았는데 하느님은 내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냐는 원망조의 내용이다. 이‘토스카’는 세기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를 오페라의 여신으로 만들어준 배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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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나가사키 구라바엔 정원에 있는 나비부인 동상 |
-1904년 작‘나비부인’
푸치니는 사랑에 헌신하는 여인의 이야기를 좋아했는데‘나비부인’은 지고지순한 동양여인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일본의 개항기를 배경으로 일본에 온 장교가 아름다운 일본 아가씨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다시 돌아온다는 약속을 하며 본국으로 돌아가고 나비부인은 그의 아들을 낳아 키우며 남자를 기다린다. 3년만에 돌아온 남자는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되어 있었고 나비부인은 아들을 맡기고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 나비부인 역의 소프라노는 1막에서 아기자기하고 지고지순한 여인으로 2막에서는 의지의 희생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는 설득력 있는 연기가 중요하다. 그래서 소프라노들의 아주 까다롭고 어려운 배역이 이 나비부인 역이다. 또 소프라노들이 꿈꾸는 역이기도 하다.
푸치니의 영화 같은 사랑
푸치니의 아내 엘비라는 원래 친구의 부인이었다. 말 그대로 불륜의 관계였다. 어머니를 잃고 슬픔에 빠져있을 때 한 여인이 위로해주었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나중에 친구의 부인, 유부녀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열정적인 사랑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불륜으로 주위의 지탄을 받자 고향인 루카를 떠나 밀라노 근처에 자리 잡게 된다. 사랑 때문에 고향까지 떠난 푸치니는 결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지 못했다. 부인 엘비라의 성격은 불같이 급하고 고분고분한 여성적인 면은 전혀 없는 데다가 의부증까지 있었다. 집안의 하녀를 의심해 괴롭히자 그녀가 음독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죽은 하녀의 가족이 억울해 부검을 하자 처녀로 밝혀졌고 푸치니가 많은 위자료를 주어 아내 엘비라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게 만든 영화 같은 일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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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루카에 있는 푸치니 동상 |
푸치니의 죽음
푸치니는 오페라‘투란도트’의 마지막 사랑의 2중창을 쓰다가 죽음을 맞았다. 인후암을 앓고 있던 그는 수술을 위해 브뤼셀로 갔지만 미완성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1924년 눈을 감았다.‘투란도트’의 마지막 두장면은 그가 이미 스케치 해놓은 대로 프랑코 알파노가 완성했다.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엄숙한 장례식이 거행됐고 푸치니가 30년 가까이 살았던 밀라노 근처 호숫가 토레델라고에 묻혔다. 1926년‘투란도트’초연때 친구 토스카니니는 푸치니가 작곡한 마디까지만 지휘를 하고‘여러분, 여기까지가 푸치니의 작품입니다’하며 지휘대를 내려왔다고 한다. 그 후 완성된‘투란도트’는 큰 성공을 거뒀다.
기자후기
사람들은 베르디와 푸치니를 비교하곤 한다. 베르디는 민족적인 정신을 일깨우며 인기를 얻었고 청중에게 호소력 있는 사랑의 아리아로 사랑을 받았다. 푸치니는 사랑 숭배자였다.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을 완성해가며 슬프고 애절한 여자 주인공 소프라노의 아리아를 만들어갔다. 푸치니는 오로지 대중을 위한 사랑이야기로 쉽고 가벼운 감상주의적 작품으로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대중적이라고 예술성이 없다고 평가받지 않는다. 예술성 있는 영화가 흥행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있고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재평가를 받고 관객의 기억에 남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음악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제일 먼저 연주가가 감동을 받아야 한다. 푸치니의 음악은 성악가들이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들이 많다. 주인공들이 먼저 아름다운 선율에 젖어 아리아를 부르고 관객들은 주인공의 그 영혼의 소리에 감동을 받아 오페라에 빠지게 된다.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멋진 시인으로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