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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국방

호국의 영웅 고(故) 전승남 이등중사 귀환 행사

19세에 1951년 10월 ‘백석산 전투’ 전사…75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대한뉴스 한원석 기자)=4월 7일(화),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지키다 19세의 나이로 산화한 호국영웅 고 전승남 이등중사(현 계급 병장)가 가족의 품으로 귀환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2024년 11월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 방산면 송현리 일대에서 육군 제21보병사단과 함께 발굴한 유해의 신원을 국군 제8사단 10연대 소속의 고 전승남 이등중사로 확인했다.


고인은 올해 국유단이 네 번째로 신원을 확인한 호국영웅이다. 이로써 2000년 4월 유해발굴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국군 전사자는 총 272명으로 늘었다.


고인의 유해는 21사단 용사가 최초 식별한 유해를 국유단 전문 발굴팀이 수습하던 중 인근에서 추가로 발견되었다.

 

 


국유단은 지난 2024년 9월 23일(월)부터 11월 8일(금)까지 21사단과 협력하여 강원 양구 지역에서 유해발굴 작전을 전개해 총 27구의 유해를 수습했다.


이 중 고인의 유해는 11월 4일(월), 21사단 장병이 최초 식별한 유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확인되었다.

 

당시 국유단 전문 발굴팀이 해당 유해의 주변부를 정밀 노출 및 확장하던 중, 인접한 위치에서 고인의 유해(왼쪽 넙다리뼈)를 추가로 발견한 것이다.

 

이후 고인의 유해는 국유단 발굴팀장(나군 오승래) 지도 아래 전문 발굴병(예비역 병장 남성진·이찬희)의 손을 거쳐, 발견 나흘만인 11월 7일(목)에 최종 수습되었다.


유가족 유전자 시료는 2017년과 지난해 고인의 남·여동생 및 친조카를 대상으로 채취했으며, 유해 유전자 시료 분석과 유해-유가족 유전자 시료 비교 분석을 거쳐 최종적으로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는 국유단뿐만 아니라 각급 부대에서의 지원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본 사례의 경우, 지난 2017년 7월 육군 제9보병사단에서 여동생 고 전순덕 씨(1933년생, 당시 84세)의 시료를 채취하며 신원 확인의 단초를 마련했다.

 

이어 지난해 10월에는 국유단 유가족 탐문관(7급 조석진)이 남동생 고 전승용 씨(1940년생, 당시 85세)와 친조카(전승용 씨의 딸) 전명숙 씨(1960년생, 당시 65세)를 방문해 시료를 추가 확보했다.


2018년 당시 여동생의 유전자 시료 분석은 완료했으나, 고인의 유해가 발굴되지 않아 신원 확인은 불가했다.

 

이후 2024년 유해를 수습하여 지난해 2월 유해 유전자 시료 분석을 진행했으며, 기 확보된 여동생의 데이터 및 추가 채취한 남동생·친조카의 시료를 통합 비교 분석한 끝에 올해 1월 형제·남매 및 삼촌·조카 관계를 모두 확정 지을 수 있었다.


고인은 1931년 12월 전라남도 나주시에서 태어나 1951년 5월 17일에 입대했으며, 국군 제8사단 소속으로 참전한 백석산 전투에서 1951년 10월 9일에 전사했다.


고인은 1931년 12월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에서 6남매(2남 4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고인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는 두 동생 중 한 명인 고 전순덕 씨는 2023년에 작고했으며, 다른 한 명인 고 전승용 씨 또한 지난 2월 세상을 떠났다. 전승용 씨의 경우 별세 1개월 전 대면 조사 당시 이미 투병 중으로 의사소통이 제한적이었기에, 고인의 성장 과정이나 입대 당시 상황에 대한 증언을 청취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고인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5월, 대대적인 병력 징집 시기에 제주도 제1훈련소로 자원 입대했다.

 

훈련을 마친 뒤 국군 제8사단 10연대에 배치된 고인은 중동부 전선의 격전지였던 백석산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당시 육군의 매화장 보고서에 고인의 사인이 “두부 관통으로 인하여 전사함”이라고 명시된 점은, 고인이 마지막 순간까지 얼마나 치열한 사투를 벌였는지를 여실히 뒷받침하고 있다.


백석산 전투(1951. 8. 18. ∼ 10. 28.)는 휴전회담의 우위 선점과 군사분계선 확정 시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기 위해 국군 제7·8사단이 북한군 및 중공군을 상대로 강원도 양구군 북방의 전략적 요충지인 백석산 일대의 고지군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공격 전투다.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4월 7일(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에 거주하는 고인의 친조카 전명숙 씨 자택에서 열렸다.

 

 


지난 1월, 고 전승용 씨는 형의 유해를 찾았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하나님의 은총이다. 축하할 일이다. 백석산에서 돌아가신 줄은 알았지만 유해를 찾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라고 힘겹게 소회를 밝혔다.

 

또한, 유가족 대표인 전명숙 씨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산에서 유해를 찾느라 고생하신 모든 분께 감사하며, 이제 국립서울현충원에 정중히 모셔드리고 수시로 찾아 뵙겠다”고 전했다.


행사를 주관한 김성환 국유단장 직무대리(육군 중령)는 유가족에게 호국영웅 귀환 패와 신원확인 통지서, 발굴 유품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했다. 이어 고인의 참전 경로와 유해발굴 경과, 신원확인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김성환 중령은 “시료 채취에 참여하셨던 고인의 여동생분은 지난 2023년에, 남동생분은 올해 초 안타깝게도 작고하셨다”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김 중령은 이어 “생전에 고인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드리지 못한 송구함과 더불어, 남겨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간절함을 뼈저리게 느낀다”며, “단 한 분의 호국영웅이라도 더 늦기 전에 모시기 위해서는 국민 여러분의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 참여가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으나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6·25전사자의 신원확인을 위해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는 6·25전사자의 유가족으로서 전사자 기준으로 친·외가 8촌까지 신청 가능하다.

 

제공하신 유전자 정보를 통해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될 경우 1,0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정부 24”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현재 참전용사와 유가족의 고령화 등으로 유가족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하루하루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만큼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


국유단은 전국 각지에 계신 유가족분들을 찾기 위해 오늘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유전자 시료를 제공하고 싶어도 거동이 불편해 참여가 어려운 분들께서는 대표번호 1577-5625(오! 6·25)로 언제든 연락 주시면 직접 찾아뵙고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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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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