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뉴스 유경호 논설위원장) = 매년 7월 17일은 제헌절이다. 제헌절은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공포된 것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 출발한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날짜를 7월 17일로 정한 것은 조선 건국일(1392년 7월 17일)과 같은 날로 하여 새로운 나라의 출발을 상징하기 위해서다. 헌법은 국가 운영의 최고 법규로, 나라를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 국민에게는 어떤 의무가 있고 어떤 권리를 보호받아야 하는지 등을 정해놓은 것이다. 즉 헌법을 안다는 것은 ‘그 나라의 정신을 안다’라고 할 수 있다. 헌법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 ‘기본권’이 있다. 예를 들면, 최고의 가치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자유권, 평등권, 참정권, 청구권, 사회권 등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제헌절은 단순히 헌법이 만들어진 날을 기념하는 것을 넘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가치를 되새기는 뜻깊은 날이다. 제헌절은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과 함께 대한민국의 5대 국경일에 속한다. 제헌절은 1949년부터 공휴일이었지만, 주 5일 근무제 확대와 국가 생산성 등을 고려해 20
(대한뉴스 유경호 논설위원장) = 매년 6월 25일은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이 발발한 지 76주년이 되는 날이다. 전쟁 당시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다. 전쟁 후 1955년 유엔 한국재건위원회(UNKRA) 특별조사단장 벤가릴 메논은 보고서에서 이렇게 적었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겠는가?”산업기반은 거의 붕괴되었고, 군사력 또한 열세에 놓여 있었다. 나라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던 절박한 시기였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경제력은 일반적으로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10위권으로 성장했으며 민주주의와 산업 발전을 동시에 이룬 대표적인 성공 국가가 되었다. 국방력 또한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대표적인 군사력 평가 기관인 Global Firepower의 2026년 기준 평가에서는 대한민국이 세계 5위권에 포함되어 있다. 상위 5개국 중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로 언급되기도 한다. 1위는 미국, 2위는 러시아, 3위는 중국, 4위는 인도, 5위가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세계 최상위 수준의 예비군 규모, 첨단 무기 국산화 능력, 강력한 해
(대한뉴스 유경호 논설위원장) =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월 6일은 현충일, 6월 25일은 한국전쟁, 6월 29일은 제2연평해전 등이 일어났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고 산화한 호국영령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과 우리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6월은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시간이다. 사회 곳곳에서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지만, 정작 우리는 보훈의 의미를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있을까. 오늘날 대한민국은 결코 저절로 만들어진 나라가 아니다.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선열들이 있었고,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나라를 지켜낸 군인들이 있었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수많은 이름 없는 영웅들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은 이렇게 누군가의 비범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호국보훈은 단순히 과거를 되새기는 시간이 아니다. 선열들의 발자취를 기억하고 그 정신을 현재와 미래로 이어갈 줄 알아야 한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늘어나면서 안보와 국가의 소중함을 체감하기 어려워졌지만, 결코 역사를 잊은 사회는 미래를 지킬 힘도 잃게 된다. 보훈은 과거 선열들을 향한 감사이자 미래를 잘 지
(대한뉴스 유경호 논설위원장) = “정치에 관심이 없어도 정치는 모두에게 관심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선거와 투표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총선거는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제헌국회 선거이다. 북한을 제외한 남한에서 치른 선거에서 198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되어 제헌국회가 출범한 날이다. 유엔의 결의에 따른 감시 하에서 진행되었고, 제주도 일부 지역은 4·3사건으로 선거가 무기한 연기되어 198명만 선출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출발점이었다. 당시 투표율은 나라를 올바로 세우는 선거였기 때문에 95%가 넘을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투표권은 원래 모두에게 주어진 권리가 아니었다. 과거 많은 나라에서는 재산이 있거나 남성만 투표할 수 있었다. 여성 참정권을 얻기 위해 수십 년 동안 투쟁한 나라들도 많았다. 그래서 “정치에 관심이 없어도 정치는 모두에게 관심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내 한 표쯤이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한 표가 정치와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후보자의 공약과 자질을 살펴보고 신중하게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만드는 첫걸음이다. 투표용지를 들고 미래를 선택하는 날, 우리는 단순히 후보를 뽑
(대한뉴스 유경호 논설위원장) = 매년 5월 20은 세계인의 날이다. 제19회 기념식이 용산아트홀 대극장 미르에서 오후 2시부터 개최된다. 세계인의 날은 2007년 제정된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에 근거하여 시작되었다. 당시 한국 사회는 급격한 세계화와 함께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 결혼이주민이 빠르게 증가하던 시기였다. 오랫동안 한국은 “단일민족 국가”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산업구조 변화와 국제 교류 확대 속에서 사회 구성원이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외국인 주민과 한국인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공존하자는 취지로 세계인의 날을 만들었다. 세계인의 날이 가지는 의미는 이제 국경을 넘어 지구촌은 하나이며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가치를 되새기 데 있다. 첫 번째,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선언. 오늘날 한국에는 다양한 국적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일하고, 배우고, 가정을 이루며 살아간다. 이들은 더 이상 ‘손님’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가 더 성숙한 사회”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두 번째, 편견과 차별을 돌아보게 하는 날이다. 세계인의 날은 축제의
(대한뉴스 유경호 논설위원장) = 매년 5월 10일은 대한민국 ‘유권자의 날’이다. 이날은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표의 무게가 얼마나 중요한지 기억하는 날이다. 단순히 투표를 독려하는 기념일이 아니고 민주주의의 주인이 국민임을 다시 되새기고, 한 사람의 선택이 나라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의미 있는 날이다. 유권자의 날이 하필 5월 10일로 정해진 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1948년 5월 10일은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 선거인 제헌국회의원 총선거가 새행된 날이다. 당시 국민은 직접 투표를 통해 국회의원을 선출했고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헌법이 만들어졌다. 당시 선거의 의미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정국의 혼란을 지나 국민 스스로 나라의 틀을 세우기 위해 참여한 첫 전국 단위 선거였다. 이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안으로 2012년 5월 10일부터 ‘유권자의 날’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담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나온다”는 민주주의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서다. 숫자 ‘5·10’은 국민이 주인이라는 뜻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돌이켜보면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투
(대한뉴스 유경호 논설위원장) = 법의 날은 왜 만들어졌을까 1964년 당시 정부가 국민의 준법정신을 높이고 법치주의 확립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제정됐다. 초창기에는 5월 1일을 법의 날로 기념했으나 이후 날짜가 바뀌어 현재는 4월 25일로 기념하고 있다. 즉 법의 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국민에게 법의 중요성을 알리고 법을 지키는 시민의식을 높이며 대한민국 사법제도의 출발을 되새기는 날이다. 국민과 함께 헌법 수호 의지를 천명하는 제63회 ‘법의 날’ 기념식이 법무부(장관 정성호)와 대한변호사협회(회장 김정욱)와 함께 4월 24 금요일 10시 엘타워 7층 그랜드홀에서 기념식을 개최했다. ‘법의 날’은 법의 존엄성을 되새기고 국민의 준법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제정된 국가기념일로서, 국민주권정부가 들어선 후 처음 맞이한 이번 기념식은, 지난 12·3 비상계엄에 맞서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수호한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국민이 수호한 헌정질서, 인권과 법치를 이루다”라는 주제로 국민과 함께 헌법 수호 의지를 천명하는 행사로 진행하였다. 법의 날 의미는 무엇일까. 민주사히는 힘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아니라 법 앞의 평등 위에서 유지된다. 법이 무너지면
법의 날은 왜 만들어졌을까 1964년 당시 정부가 국민의 준법정신을 높이고 법치주의 확립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제정됐다. 초창기에는 5월 1일을 법의 날로 기념했으나 이후 날짜가 바뀌어 현재는 4월 25일로 기념하고 있다. 즉 법의 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국민에게 법의 중요성을 알리고 법을 지키는 시민의식을 높이며 대한민국 사법제도의 출발을 되새기는 날이다. 국민과 함께 헌법 수호 의지를 천명하는 제63회 ‘법의 날’ 기념식이 법무부(장관 정성호)와 대한변호사협회(회장 김정욱)와 함께 4월 24 금요일 10시 엘타워 7층 그랜드홀에서 기념식을 개최했다. ‘법의 날’은 법의 존엄성을 되새기고 국민의 준법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제정된 국가기념일로서, 국민주권정부가 들어선 후 처음 맞이한 이번 기념식은, 지난 12·3 비상계엄에 맞서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수호한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국민이 수호한 헌정질서, 인권과 법치를 이루다”라는 주제로 국민과 함께 헌법 수호 의지를 천명하는 행사로 진행하였다. 법의 날 의미는 무엇일까. 민주사히는 힘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아니라 법 앞의 평등 위에서 유지된다. 법이 무너지면 사회는 감정과 힘의 논리로 흐르기
(대한뉴스 유경호 논설위원장) = 매년 4월 11일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날은 일제강점기 3·1 운동 정신을 계승해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고, 나라의 자주독립을 이루고자 상해에서 수립되었다는 역사적 의미가 크다. 또한 오늘날 대한민국의 뿌리를 되짚는 중요한 기준점이다. 기념일은 1990년부터 2018년까지는 4월 13일이었다. 그 후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1922년 달력인 ‘대한민국4년역서’에 4월 11일을 ‘헌법발포일’로 기록한 것이 발견되면서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에 4월 11일로 변경하였다. 107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기념일을 맞아 우리는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본다. ‘정부란 무엇인가’라고. 임시정부는 1919년 3·1운동 이후,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도 국민 스스로 세운 ‘대한민국의 시작’이었다. 총칼이 아닌 의지와 신념으로 세운 정부였다. 국토도, 군대도, 재정도 부족했지만 그 중심에는 분명한 가치가 있었다. 바로 국민이 주인인 나라, 민주공화국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정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곧 다가올 지방선거는 단순히 지역의 일꾼을 뽑는 절차가 아니다. 이는 국민이 권력을 위임하는 과정이며,
(대한뉴스 유경호 논설위원장) = 요즘 TV를 틀면 연일 이란과 이스라엘 분쟁 관련 뉴스가 먼저 나온다. 나와는 상관없는 멀리 떨어진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화면 속 폭격과 긴장, 그리고 불안정한 국제 정세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일깨운다. 이러한 시기에 평화의 무게를 떠올리며 다가오는 서해수호의 날은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서해수호의 날은 서해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웅을 기리기 위한 기념일이다. 날짜는 매년 3월 넷째 주 금요일이다. 서해는 늘 잔잔해 보이지만, 그 바다에는 결코 잔잔하지 않았던 역사가 흐르고 있다.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사건, 그리고 연평도 포격전. 이 세 사건은 우리에게 ‘평화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분명히 각인시켰다. 특히 스무 살 남짓의 젊은 장병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바다 위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날은 단순한 추모의 시간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잊고 지내는 ‘안전’과 ‘평화’가 어떤 희생 위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날이다. 중동의 전쟁 뉴스를 통해 평화는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전쟁이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순간,
3월 15일은 ‘3·15의거’ 기념일이다. 그런데 이날을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3·15의거’ 기념일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민주주의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국가의 주권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아닌 모든 국민이 주인이고, 국민의 권력을 기반으로 정치를 구현한다는 뜻이다. 즉 나라의 중요한 결정과 권력이 특정 개인이나 소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있다는 것이다. 먼저 ‘3·15의거’ 기념일이 왜 중요한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60년 3월 15일에 실시된 제4대 대통령 선거 및 제 5대 부통령 선거를 일컬어 3‧15부정선거라 부른다. 이 선거에서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은 내무부 조직, 정치깡패, 외곽단체 등을 동원한 선거 부정행위가 있었다. 즉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반발하여 마산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가 바로 ‘3·15의거’이다 그리고 이것은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3·15의거가 일어난 계기는 부정선거에 대한 국민의 분노였다. 1960년 당시 정권은 대통령과 부통령 선거에서 정권 유지를 위해 여러 방식의 부정을 저질렀다. 예를 들면, 미리 투표함에 표를 넣어두는 사전 투표 조
주식 시장이 활기를 띨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빚투’, 즉 빚을 내서 투자하는 행위다. 낮은 금리와 상승장에 대한 기대가 맞물리면 개인 투자자들은 더 큰 수익을 기대하며 증권사 신용융자나 대출을 통해 투자 규모를 키운다. 그러나 빚으로 키운 투자금은 시장이 흔들릴 때 가장 먼저 투자자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칼날이 되기도 한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개인 투자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약 13조4000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중동 사태로 코스피가 역대급 낙폭과 반등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 장세 속에서도 개인 투자자들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저가 매수에 나서는 모습이다. 급락장을 매수 기회로 여기는 ‘한국 개미’ 특유의 투자 성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는 평가다. 특히 빚을 내 주식을 사는 ‘빚투’ 규모가 빠르게 늘어난 점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빚투의 가장 큰 문제는 투자 판단이 시장의 흐름이 아니라 ‘빚의 압박’에 좌우된다는 점이다. 주가가 조금만 떨어져도 투자자는 손실을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결국 공포 속에서 주식을 급히 처분하는 상황에 몰린다. 반대로 주가가 오르면 더 큰 수익을 기대하며 추가로 빚을 내는 악순환에 빠지기
중동 지역에서 발생한 공습 소식이 전해진 지 하루 만에 국제 유가와 국내 기름값이 들썩이고 있다. 실제로 석유 생산 시설이 크게 파괴되지 않았더라도, 전쟁과 군사 충돌의 가능성만으로도 에너지 시장은 즉각 반응한다. 이는 석유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세계 경제와 직결된 전략 자원이기 때문이다. 국제 원유 시장은 ‘공급 불안’에 매우 민감하다. 공습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제기되는 우려는 산유국의 생산 차질과 해상 운송로의 안전 문제다. 특히 중동은 세계 원유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경우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는 심리가 즉각적으로 가격에 반영된다. 실제로 원유가 아직 줄지 않았더라도, 앞으로 부족해질 수 있다는 기대와 불안이 선물시장 가격을 먼저 끌어올린다. 또 하나의 요인은 투기적 거래다. 전쟁이나 분쟁이 발생하면 투자자들은 유가 상승을 예상하고 선물시장에 자금을 몰아넣는다. 이러한 움직임은 실제 수급 상황보다 더 빠르게 가격을 상승시키며, 그 여파는 곧바로 각국의 정유사와 주유소 가격에도 반영된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원유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국제 유가 변동이 국내 기름값에 직접적인 영향
(대한뉴스 유경호 논설위원장) = 나라면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았을까. 온 나라가 일제의 수탈로 신음할 때 오직 광복을 위해 대한독립 만세를 뜨겁게 외친 독립운동가들. 나라를 되찾는데 남녀 구분은 따로 없었다. 1919년 3월 1일 대한독립선언서가 발표됐다. 거사는 애초에 파고다공원에서 열리기로 했으나 갑자기 태화관으로 장소를 바꿨다.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군중심리로 인해 혹 불상사가 생길까 우려됐고 일본 경찰의 눈도 피하기 위해서였다. 태화관은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은 이완용이 살던 집이었다. 지금의 종로구 인사동 194-27 태화빌딩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다. 그 후 107년의 세월이 흘렀다. 3·1운동의 주축이 된 곳은 서울 종로이다. 독립선언서를 총지휘했던 캠프 손병희 집 터,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곳 보성사 옛터, 독립선언서를 보관하고 배부했던 곳 이종일 집터, 독립을 선포한 곳 태화관, 학생들의 독립운동 본부였던 승동교회 등. 그중 이종일 집터에는 현재 세계 어린이 운동 발상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당시 3·1운동은 학생과 시민, 종교인과 지식인 등 신분과 계층을 초월하여 특정 집단이 아닌 ‘국민 모두의 운동’이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는
(대한뉴스 유경호 논설위원장) =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명절을 지내는 방식은 달라져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설날은 단순한 휴일이 아니고 우리가 누구와 연결된 존재인가? 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설날 풍경’하면 떠오르는 것은 집마다 방앗간에서 가래떡을 뽑는 분주한 모습, 떡국을 포함해 여러 가지 음식을 종류별로 준비해 차례 지내는 모습, 웃어른께 세배하고 덕담을 나누는 모습, 윷놀이·연날리기 등 놀이를 함께 즐기는 모습 등이 연상된다. 이러한 풍경은 가족 중심의 명절이었다. 오늘날 가족의 형태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1인 가구의 증가, 초고령화, 비혼과 만혼, 멀어진 고향 등 한 지붕 아래 모여 사는 가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설날에 가족을 기다린다는 전통적 서사는 이미 현실과 다르다. 그럼에도 묻지 않을 수 없다. 형식은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본질은 무엇일까. 고향은 단지 지리적 장소가 아니다.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삶의 출발점을 되새기는 상징적 공간이다. 직접 방문하지 못하더라도 안부를 묻고 마음을 전하는 일은 여전히 가능하다. 세대 역시 단순한 의식이 아니다. 몸을 낮춰 웃어른께 절을 하는 것은 존중이며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