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는 최첨단 시설중의 하나였던 방송용 이동녹음자동차 (57. 3. 18)
지금은 사라진 활판 신문제작 시절의 조판실 (67. 3. 30)
울산 제3비료공장 준공식 (67. 3. 15)
전주공업단지 및 새한제지 공장기공식 (67. 3. 23)
1962년 1월 13일, 자주경제의 달성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됐다. 세계 최빈국(最貧國)인 대한민국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경제개발이 시급했다. 이에 신정부는 1961년 7월 22일에 경제기획원을 설립한다. 경제정책 방향과 수립을 이끈 경제기획원은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자립경제의 달성을 위한 기반 구축이 그 목표로 ‘한강의 기적’ ‘수출 한국’의 시작이었다.
6.25 전쟁이 휴전된 1954년의 3.1절 기념행사. 서울 종로거리의 전차 선로와 전선이 새삼 낯설고, 각종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가 눈길을 끈다. 다시 기념식을 갖는 오늘의 우리 모습은 훗날 후세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우리 헌법에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3.1 운동에 있다’고 천명하고 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국민통합과 희망의 국가 비전을 열어가는 새로운 토대가 되길 기대해본다.
6.25 전쟁의 휴전회담이 추진되던 1952년 3.1운동 기념행사장의 참가 시민들. 3.1운동은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했다. 3.1운동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일본제국의 무단통치(武斷統治)를 거부하고 한국의 독립을 선언했으며, 이는 민중과 지식인의 반향을 일으켜 대규모의 전국적 시위로 발전했다. 정부는 100주년을 맞아 국민들과 함께하는 기억과 계승, 예우와 감사, 참여와 통합을 추진방향으로 설정하고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
1971년 전국 동계체육대회가 춘천 공지천에서 열렸다. 우리나라 빙상대회는 1920년 한강 특설링크에서 개최된 ‘전 조선빙상경기대회’를 효시로 삼고 있으며, 50~60년대까지는 날씨 등에 따라 서울 한강, 원주, 춘천 공지천 등을 옮겨 다니며 개최됐다. 이후 1972년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이 개장되면서 빙상대회는 태릉스케이트장과 동대문 실내링크에서 개최됐다.
대한적십자사가 헝가리 난민에게 보내는 구호품을 인천항에서 선적하고 있다. 이는 한 국민이 대한적십자사에 기부한 660만원으로 구매한 1만6천800마의 면포로 오스트리아로 망명해온 헝가리 난민들에게 구호품으로 전달됐다.
광복과 더불어 귀환동포들이 생활근거지로 모여들어 터를 잡고 노점을 차림으로써 형성된 국제시장이 6.25전쟁 피난민들이 섞이며 성시를 이룬다. 그러나 1950년 말 화재에 이어 1952년과 1953년에도 연달아 화염에 휩싸이게 되고, 특히 1953년 발생한 화재로 가옥 4천260여 동이 잿더미가 되어 약 1만3천295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 화재는 어마어마한 물적 피해는 물론 난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