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를 청결하게 하는 목욕이 위생관리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면서 60년대 초 농촌에도 공동목욕시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를 반영하듯 문짝에 ‘건강’이라고 써져 있다. 이후 새마을운동을 거치면서 공동목욕시설이 활발해지고, 오늘날 우리의 목욕문화는 피로를 풀고 위생을 관리하는 것은 물론 가족들과 함께 편하게 쉬는 공간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여전히 취약한 계층이 증가하면서 목욕 등 기본적 삶의 질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에 최근에는 취약계층 이동 목욕서비스나 취약지역에 작은목욕탕 설치 등의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59년에 외국영화가 203편 수입될 정도로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 전성기를 구가하듯 ‘영화의 날’ 행사가 개최된 서울 명동 시공관 앞이 시민들로 운산운해를 이루고 있다. (59. 8. 20)
서울 답십리 마장2동 수재민 대피소의 옹색한 모습이 쓸쓸하다. 8월 19일 기록적인 폭우로 안양·시흥을 비롯해 서울 곳곳에서도 큰 수재가 나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72. 8. 20)
제3대 대통령 취임 및 제11회 광복절 기념행사가 옛 중앙청 앞 광장과 세종로 일대에서 치러졌다. 식장에서 바라본 세종로 일대의 모습이 오늘날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56. 8. 15)
청계천은 비가 오면 자주 범람하고 서울로 유입된 인구가 많아지면서 하수와 오물로 악취를 풍기기 시작하자 주변 판자촌을 철거하고 복개를 시행했다. 복개공사는 몇 차례에 걸쳐 나누어 진행됐으며, 1958년에 착수한 광교에서 주교까지의 첫 구간공사가 1960년 4월에 마무리 됐고, 이후 구간별로 복개공사와 고가도로 건설이 계속된 끝에 청계고가도로가 1976년에 완공됐다. 오늘날 역사와 문화의 복원이자 생명 복원 사업으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청계천 복원공사가 시행돼 고가도로를 해체하고 하천을 복원했다.
베트남 전쟁은 대한민국 군대가 외국에서 싸운 첫 전쟁이었다. 베트남 파병은 1964년 비전투 부대 파견을 시작으로 1964년 9월부터 1973년까지 8년 5개월 동안 이뤄졌다. 이 기간에 총 4만7천872명이 베트남에 파병되어 1천170회의 대규모 작전과 55만6천여회의 군사 활동을 수행했다. 베트남 파병은 한미동맹 강화와 군사력 증강, 그리고 경제성장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 그러나 전사 5천여명, 부상 1만5천여명이라는 인명피해와 최근에는 고엽제 피해자 문제, 베트남 한국인 2세 문제, 민간인 살상 문제 등 부정적인 결과도 초래했다.
원두막이 정겨운 충주지역 밭에서 농민이 수박을 수확하고 있다.
수마가 할퀴고 간 당시의 도시거리를 두 여학생이 걸어가고 있다.
대학생 봉사단이 경기도 양주에서 농촌 봉사활동 펼치고 있다.
6.26 전쟁 휴정협정이 시작될 무렵의 육군병참학교 모습이 초라하다. 그러나 한옥과 천막이 뒤섞인 열악한 환경에도 우리 군은 교육훈련에 열중했다. 육군병참학교는 군 병참에 관련된 이론 및 기술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로 당시 우리 군은 육군병기학교(1948년 10월 5일)와 육군병참학교(1949년 5월 1일)를 운영했다. 이후 여러 개의 군수 관련 학교를 통합해 현재는 육군종합군수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육군군수학교는 1948년 10월 5일에 설립된 병기학교의 연대기를 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