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의 성장은 곧 우리나라 산업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1960년대 경제개발에 착수하면서 위생시설 보급 문제가 대두되었는데, 이 시기 정부는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목욕탕 설립을 추진한다. 삶의 질을 높인다기보다는 전염병 등 공중보건에 대응하는 측면이 컸다. 목욕은커녕 세수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시절, 비록 외관은 초라했으나 마을마다 입구에 ‘건강’이라는 문구가 적힌 공동목욕탕이 들어섰다. 노동회관에서도 노동자들을 위한 욕탕을 마련했다. 덕분에 위생에 대한 관념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59년에 외국영화가 203편 수입될 정도로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 전성기를 구가하듯 ‘영화의 날’ 행사가 개최된 서울 명동 시공관 앞이 시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이날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연속 상영. 12,000명 이상의 관람인원을 돌파했다. 명동 시공관은 국제극장에서 1947년 12월에는 시공관(市公館)으로 개칭하고 영화관 및 극장으로 사용되었다. 1957년 6월 1일, 명동예술회관으로 개칭하였으며, 국립극장이 되었다. 1973년 폐쇄 이후 36년을 거쳐 2009년 6월 5일 명동예술극장으로 다시 개관했다.
1960년대 초까지 한강대교 인근 모래사장에서 수영을 즐길 수도 있었다. 둔치가 모래사장이었고 피서철에 한강에서 수영을 즐기는 모습은 매우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인구 유입이 계속되면서 각종 산업 시설도 들어서고 각종 공장에서 흘러나온 오폐수와 생활 하수가 한강으로 유입되며 한강의 수질이 나빠졌고, 수영도 금지되었다. 지금은 신고 후 수상레저는 이용가능하다.
경인고속도로는 고속국도 제120호선이다. 1967년 3월 24일 착공하여 1968년 12월 21일에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이다. 실제 건설은 29.5㎞로 건설되었으나 1985년에 현재의 제물포길에 해당하는 서울특별시 양평·신월 구간 5.6㎞는 서울시로 이관되어 현재의 총연장은 23.9㎞이며, 기점은 인천광역시 남구 용현동이고 종점은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월동이다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제헌 헌법)이 제정, 공포된 것을 기념하는 대한민국의 국경일로,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지정하는 법정 국경일 가운데 유일하게 공휴일이 아닌 기념일이기도 하다. 1961년 7월17일 제13회 제헌절을 맞아 시공관에서 윤보선 대통령, 윤태일 서울시장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가졌다.
1967년 일제고사(一齊考査)는 대한민국에서 전국의 학교 또는 특정 지역 내의 모든 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이 동시에(일제히) 치르는 형태의 시험을 뜻한다. ‘일제고사’는 일제고사 형태로 시행되던 시험의 명칭이기도 하다. 일제고사는 1998년에 폐지되었다. 지금은 2008년부터 시행되는 전국 단위의 각종 진단평가와 학업성취도평가를 흔히 일제고사라고 칭한다. 책가방을 올리고 컨닝을 예방했던 그시절, 요즘은 책가방 대신 가림판으로 대신하고 있다.
남북간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이 시기에는 승공반공 운동이 활발했다. 1969년 6월에 열린 승공 반공 시가행진 대회에는 어린학생에서부터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많은 국민이 참석했다.
제1회 현충일을 맞아 전몰장병 추도식이 서울 동작동 국군묘지에서 거행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제1회 현충일 추도사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작성했으며, 이를 그의 연설문집에 남겼다. 82세의 노(老) 대통령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불참했다. 현충일은 1956년 4월 현충기념일'로 지정되었다가 1975년 1월 현충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