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은 처음에는 1956년 5월 8일을 어머니날 기념일로 지정하였다가 1973년 3월 30일 "어버이날'로 바뀌었다.1956년 5월 8일 제1회 어머니날 행사 이후 17년을 기념일로 하다가 70년대에 들어와 “아버지날은?” 라는 아버지들의 섭섭함이 거론되기도 하여 1973년 5월 8일부터는 어버이날로 기념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어머니날의 유래는 50년대 한국전쟁 이후 고아와 남편없이 혼자 사는 여성들이 많아 아이들을 혼자 키우는 여성들이 많았다. 그래서 5월 8일 어머니 날 기념일에는 "장한 어머니"로 뽑힌 어머니들에게 상장과 상품을 주는 행사를 진행했다. 고시 수석 합격자의 어머니, 유명 운동 선수의 어머니 등 혼자서 아이들 교육에 힘쓴 어머니를 선발하여 상을 주었다.
우리 사회는 과연 언제부터 ‘아이를 낳지 않는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을까. 지금의 저출산 위기는 마치 오랜 시간 누적된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보이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국가는 정반대의 고민을 하고 있었다. 더 많이 낳으라고 독려하던 시대에서, 더 적게 낳으라고 통제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다시 아이를 낳아달라고 호소하는 사회로 돌아섰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변화가 ‘표어’라는 가장 일상적인 언어로 국민에게 전달되었다는 사실이다. 한 시대의 가치관과 국가 전략은 짧고 직관적인 문장 속에 응축되어 있었고, 그 문장들은 개인의 선택을 바꾸고 사회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결국 출산율의 변화는 단순한 인구 문제가 아니라, 시대가 개인에게 요구했던 삶의 방식의 변화이기도 했다. 현재 노년기에 있는 베이비부머(1946년 이후부터 1965년 사이에 출생한 사람들) 세대들에게는 산아제한을 가족계획으로 강조하던 출산억제 정책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을 것이다. 또 청년들은 성장과정 내내 저출산의 심각성을 심심찮게 들어왔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출산정책을 축약했던 표어들은 시대별로 어떻게 변해 왔을까. 1950년대 인구부족 6·25 전쟁 이후 인구 부족에 대응해 “3남
1955년부터 청와대의 전신인 경무대 개방은 연례행사가 됐다. 봄마다 2~3일씩 정원을 열었다. 1959년 봄 5일간 방문객이 20만명이나 됐다. 갓 쓴 할아버지에서 두메산골 소년까지 방방곡곡에서 온 국민이 평생 잊지 못할 봄나들이를 했다. 제2공화국 청와대의 문턱은 더 낮아져 봄꽃 만발한 1961년 4월엔 10일부터 월말까지 매주 월·수·금요일 청와대를 공개했다. 그때마다 효자동행 전차와 버스들은 초만원을 이뤘다. 5.16 쿠데타로 제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박정희 정권도 청와대 개방이라는 전통마저 무너뜨리지는 않았다. 한일회담 반대 시위가 격화됐던 1964년을 제외하고 1963년부터 거의 매년 봄 5~6일씩 청와대 뜰이 개방됐다. 시민들은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 근처까지 구경할 수 있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3월 13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한국 어르신의 일과 삶 패널(KSWL)」제1차 데이터 설명회를 개최하고 조사 설계와 데이터 구성, 분석 방법 등을 연구자 및 관계자들과 공유했다. 이번 설명회에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 전문가, 정책 관계자 등이 참석했으며, 「한국 어르신의 일과 삶 패널(KSWL)」 패널의 표본 설계 방식과 조사 대상 특성, 데이터 파일 구조, 주요 변수 등이 구체적으로 소개됐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김수영 원장은 “어르신의 일이 삶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데이터를 통해 분석하고 정책적 근거를 축적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또한, “풍부한 경험을 지닌 베이비부머세대의 역량이 청년세대와 조화를 이루어 우리사회의 생산성을 높이는 자산이 될 수 있도록 데이터 기반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앞으로도 「한국 어르신의 일과 삶 패널(KSWL)」 데이터를 이용자에게 공개하고, 데이터 활용과 후속 연구를 확대해 노인 일자리 정책의 성과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2026년은 제2차「한국 어르신의 일과 삶 패널(KSWL)」 패널 본조사가
1960년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79달러에 불과했다. 국가 경제력이 세계 125개 국가 중 101위로 최빈국 수준이었다. 5ㆍ16 군사정부는 경제재건 계획 수립에 신속하게 착수했다. 쿠데타 두 달 만인 1961년 7월22일 경제기획원을 신설했다. 기획, 예산, 외자 등 당시 3대 핵심 경제개발수단을 갖춘 경제기획원은 다시 두 달 만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시안을 만들었다. 개발계획을 재빨리 기안한 데는 자유당 말기 본격적인 의미의 한국 최초의 경제개발계획인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4ㆍ19혁명 이후에 민주당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우리 경제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군사정부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1962년 1월13일 세상에 공표됐다. '한강의 기적' '수출 한국'의 시작이었다.
한국의 장례 문화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빈소를 차리지 않는 ‘무빈소’, 전통적인 염습 절차를 생략하는 ‘무염습’,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무형식’ 등 이른바 ‘3무(無) 장례’가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처럼 많은 조문객을 맞이하며 3일 동안 장례를 치르는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간소하고 실질적인 형태로 고인을 기리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사회 구조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1인 가구 증가와 가족·친지 관계망의 축소, 경제적 양극화에 따른 장례 비용 부담, 허례허식보다는 실용을 중시하는 인식 확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11일 상조업계에 따르면 손님맞이용 빈소를 따로 차리지 않는 ‘무빈소 장례’는 2025년 기준 전체 장례의 약 15~20% 수준까지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 이전만 해도 1% 안팎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가파른 증가세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학병원 장례식장은 여전히 빈소 장례가 대부분이지만 지방의 일반 장례식장에서는 무빈소 장례 비중이 40~50%에 이를 정도로 늘고 있다”고 전했다. 무빈소 장례가 증가한 가장 큰 이유로는 장례 비용 부담이 꼽힌다. 최근 평균 장례비
중국 전국시대에 추나라 노나라와 전쟁을 벌였는데 패했다. 추나라 왕인 목공은 맹자에게 이웃 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이야기를 하며 적군의 손에 자기 나라의 장군과 관원들이 죽는데도 백성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지켜만 봤다고 원망했다. 그러면서 백성들을 처벌하자니 숫자가 너무 많고 가만히 두자니 다음에 또 그런 일이 다시 생길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조언을 구했다. 왕 의 이야기를 들은 맹자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전에 흉년과 재난이 들어 백성들이 굶어 죽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눈물 짓고 있을 때 왕의 창고에는 곡식과 재물이 가득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관리도 백성들의 어려움을 왕에게 전하지 않았고, 굶어 죽어가는 백성들을 그냥 방치했습니다. 일찍이 증자께서 이르시길 ‘경계하고 또 경계해라. ’네게서 나간 것은 네게로 돌아온다‘라고 하셨습니다. 백성들은 이제야 당한 것을 되갚았을 뿐입니다.
일과 후 퇴근길, 거리를 걷다 보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작은 천막 하나가 발걸음을 멈추게 하던 시절이 있었다. 빨간 비닐 천막 아래 모여 앉아 국물 한 모금에 하루의 피로를 풀던 곳, 바로 포장마차다. 하지만 이제 도시의 밤거리에서 포장마차를 발견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나마 드라마에서는 자주 볼수 있지만, 한때 포장마차는 한국 도시 풍경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퇴근길 직장인, 늦은 밤 공부를 마친 학생, 하루 장사를 마친 상인까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좁은 의자에 나란히 앉아 따뜻한 국물과 소박한 안주를 나누던 공간이었다. 오뎅과 떡볶이, 순대, 소주 한 잔이 어우러진 포장마차는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생활 공동체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포장마차의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도시 미관 정비 정책과 도로 점용 규제, 위생 기준 강화 등이 주요 이유로 꼽힌다. 여기에 임대료 상승과 고령화도 영향을 미쳤다. 오랫동안 포장마차를 지켜온 상인들이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장사를 이어가기 어려워졌지만, 젊은 세대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 도시의 변화도 한몫한다. 과거에는 거리에서 간단히 먹고
'천리마가 소금수레를 끈다'라는 뜻으로, '뛰어난 사람이 걸맞지 않은 천한 일에 종사함'을 비유한다. '전국책(戰國策)'의 '초책(楚策)'편에서 유래했다. '한명(汗明)'이 초나라 재상 '춘신군(春申君)'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에 다시 만나고 싶었지만, '춘신군'은 '한명'에게 당신을 이미 잘 알고 있으니 더 이상 만날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러자 '한명'은 현명한 '순(舜)'임금도 영명한 '요(堯)'임금을 모실 때 3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서로를 잘 알게 됐다고 하면서, 자신이나 '춘신군'도 '요순(堯舜)'보다 현명하지 못하니 더 자주 만나야 서로를 알 수 있을 거라고 설득하여, 5일에 한 번씩 만나게 됐다. '한명'이 '춘신군'에게 말했다. "군(君)께서는 천리마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천리마가 나이가 들어 소금수레를 끌며 '태행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夫驥之齒至矣, 服鹽車而上太行). 발굽은 세우고 무릎은 구부리고, 꼬리는 축 늘어지고 가죽은 벗겨진 채 침과 땀이 범벅이 되어, 산중턱에서 소금수레를 끌고 올라가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백락'은 이 광경을 보고 마차에서 내려 말을 붙잡고 울며, 자신의 베옷을 벗어 말에게
“여성이 권리를 요구한 날이, 이제는 세상을 바꾸는 날이 되었다.” 매년 3월 8일, 전 세계는 보라색으로 물든다. 꽃다발과 축하 메시지, 거리의 행진과 강연, 그리고 SNS를 채우는 해시태그까지. 바로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이다. 하지만 이 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진 ‘권리의 역사’이자,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평등의 과제’다. -거리에서 시작된 변화의 역사 세계 여성의 날의 뿌리는 20세기 초 노동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1908년 미국 뉴욕, 여성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이들의 외침은 국제적인 움직임으로 확산됐고, 1910년 독일의 여성운동가 클라라 체트킨은 국제 회의에서 ‘세계 여성의 날’을 제안한다. 그 제안은 현실이 됐다. 1911년 유럽 여러 나라에서 첫 기념행사가 열렸고, 1975년에는 유엔이 공식 기념일로 채택하며 전 세계적 의미를 갖게 됐다. 이 날은 단순히 과거를 기리는 데 머물지 않는다. 매년 새로운 주제를 통해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환기한다. 세계 곳곳에서 여성의 사회 참여는 크게 늘어났지만, 여전히 해결
설날이 지나고 찾아오는 또 다른 특별한 날, 정월대보름. 정월(1월)의 보름날을 가리키는 말로, 음력 1월 15일에 해당하는 한국의 전통 명절이다. 설날 이후 처음 맞는 보름날로 '상원', 혹은 '오기일(烏忌日)'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번 정월대보름이 특별다는 사실, 무려 개기월식이 함께 찾아온다고 하니, 밤하늘을 수놓을 붉은달을 기대해도 좋을 둣하다. 한 해의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며, 가족과 함께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정월대보름. 흔히 달맞이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나, 전통적으로는 설날보다 더 성대하게 지냈던 명절이었다. 대보름 전날인 음력 14일부터 행하는 여러 가지 풍속들이 있다. 원래는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15일 동안 축제일이었으며, 이 시기에는 빚 독촉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옛날에는 큰 축제였다. 이보다 좀 더 옛날에는 정월 대보름 이튿날을 실질적인 한 해의 시작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하는 설도 있다. 새 학년이 시작하는 날은 3월 1일이지만 3·1절이 있어 본격적인 새 학기는 3월 2일부터 시작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또한 세배를 드릴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이날에는 부럼, 오곡밥, 약밥, 귀밝이술, 복쌈, 김과 취나물
새 학기가 시작되면 일부 아이들은 두통이나 복통을 호소하고, 짜증이 늘거나 등교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를 ‘개학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이는 방학 동안 느슨해진 생활 리듬과 학업 부담이 갑자기 시작되면서 나타나는 일종의 적응 스트레스 반응이다. 두통·복통부터 무기력까지… “마음의 신호” 개학증후군은 의학적 진단명은 아니지만, 개학 전후로 나타나는 신체적·정서적 증상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아침 기상 곤란 ▲집중력 저하 ▲두통·복통 ▲식욕 부진 ▲짜증과 불안감 등이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보건교사는 “개학을 앞두고 보건실을 찾는 학생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며 “검사상 이상이 없는데도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꾀병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청소년 상담 전문가는 “환경 변화에 대한 스트레스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며 “특히 학업 부담이나 교우 관계 걱정이 큰 학생일수록 증상이 심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왜 생길까? 가장 큰 원인은 생활 리듬의 급격한 변화다. 방학 동안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이 굳어지면, 개학 후 이른 등교 시간에 적응하기 어렵다. 또한
1963년 3월 2일 서울 금호초등학교 1963년 입학식. 1960년에 서울 시내 초등학교의 교실은 1100여 개나 부족해 2부제 수업을 하고도 한 반 학생이 보통 80명, 심할 때는 100명이 넘는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학생들은 공부해야 했다.
피부는 인체에서 가장 큰 장기이며 모든 장기를 포장지처럼 둘러싸고 있다. 외부의 다양한 자극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혈관의 확장과 수축, 발한으로 인한 체온조절, 지방과 오래된 각질의 배출 등 다양한 기능이 있다. 온몸의 피부에서는 촉각을 느낀다. 일반 성인의 경우 면적은 약 1.6~2㎡ 정도이다. 우리 몸은 7년에 한 번씩 새로 바뀐다고 한다. 그중 피부는 한 달 정도 노력하면 피부 표피층을 부드럽고 매끄럽게 바꿀 수 있다. 진피의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것은 약 3개월, 피부의 전반적인 톤이 개선되려면 약 7개월, 부분이 아닌 몸 전체를 다시 프로그래밍하는 데는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야 한다. 한편, 화장으로 인해 피부호흡을 못 하면 피부가 망가진다거나 몸에 금가루를 바른 퍼포먼스는 피부호흡이 어려워 단시간밖에 못 한다거나 하는 말이 있다. 정말 피부호흡을 못 하면 생명에 지장이 있을까. 과거 인간은 몸집이 커지면서 피부호흡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대신 허파에 공기를 넣고 심장에서 온몸에 산소를 보내는 시스템으로 몸 구석구석까지 산소를 공급하게 되었다. 즉 사람은 피부호흡의 비율은 겨우 0.6%에 지나지 않고, 허파와 심장의 활동으로 온몸에 산소를 보
손톱은 '케라틴'이라는 단단한 단백질로 이루어진 피부의 일종으로 손톱 뿌리에 있는 반달형의 손톱 기질로부터 만들어진다. 몸의 말단에 있고 말초혈관이 모여 있는데, 영양분 전달이 어려워서 영양 부족이나 건강에 따른 영향을 받기 쉽다. 손톱에 특징적인 변화가 생기는 질환도 있으므로 손톱 색깔과 상태에 따라서 자신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손톱에 생긴 가로줄은 건강이 나쁘거나 스트레스의 영향으로 손톱의 성장이 일시적으로 정체된 것을 나타낸다. 손톱은 하루에 0.1mm씩 자란다고 하므로 손톱 뿌리에서 줄까지 길이를 재보면, 건강이 나빠진 시기를 알 수 있다. 가는 세로선이 보일 때는 노화로 인한 것으로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손톱이 부서질 것처럼 세로선이 선명하게 보인다면 혈액 순환 장애일 가능성이 있다. 손톱 색깔이 변했을 때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손톱이 하얗고 탁한 원인으로 가장 많은 것은 조백선(손톱 무좀)이지만, 손톱이 하얗고 탁하면서 불투명한 유리처럼 될 때는 만성적인 신장 장애나 간경변증이 아닌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손톱이 얇아지면서 가운데가 둥글게 패여 스푼처럼 된 스푼 손톱과 창백한 푸른빛일 때는 철 결핍성 빈혈, 보라색은 심장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