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대한뉴스]글 전 MBC 편성국장 신준우 | 사진 홍성준 기자, 연합뉴스
얼마 전 MBC 입사동기생 정문수 PD의 아들 결혼식에 다녀왔다. 많은 동기생이 모였다. 일찍 고인이 된 그는 실력이 걸출하고 의리 있는 사나이였고, 수준 높은 드라마를 많이 연출했다. 부인 배귀숙 씨도 동기생이었다. 양주 불곡산 자락 자택에도 초대받아 갔는데 아쉽기만 하다. 예식장이어서 서로 말을 아꼈지만, 과거 추억을 떠올리며 오늘의 방송 현실을 되새겨보기도 했다.
“역사가 힘이다”
1969년 8월 TV 개국을 앞두고 1기생이라는 자부심과 책임의식이 강했던 시기였다. 눈비를 맞으며 남산 송신소까지 걸어 올라가 ‘시험방송’을 하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벌써 2012년도 연말이다. 지난 1년 동안 큰 틀에서 방송계를 돌아보면 종편방송의 치열한 경쟁을 경험했고, 19대 총선과 런던올림픽 중계방송에 이어 18대 대선을 치렀다.
MBC, KBS, YTN 방송 파업이 있었다. 지금은 외형상 방송사들이 제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다.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고 새해를 맞고 있다. 나는 용인 산골에서 산다. 이제는 방송을 방송 (放 )하며 되도록 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안방, 길거리, 전철 안 등 곳곳에 TV가 자리 잡고 있으니 피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역사가 힘이다”는 말이 있듯이 지난 일을 정리해보고, 미래를 기대하는 일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방송계의 지난 1년을 되돌아보고, 특히 MBC에 대해 몇 마디 남기고자 한다.
2012년 공중파 방송
KBS는 역시 KBS다웠다. 전반기에 잠시 파업이 있었으나 전임사장은 공채 선배답게 슬기롭게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나갔다. 신임사장도 KBS PD 출신이어서 노사관계도 원만해 직원들과 잘 화합해 나갈 전망이다. 광고수입도 늘어나고 재정도 안정적이다. MBC가 뉴스데스크 등 보도부문이 저조했지만 KBS 9시 뉴스는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상징적인 모습이다.
KBS의 전체적인 채널 이미지도 좋아지고 있다. KBS 노사가 큰 관심이 있는 PD 저널리즘 프로그램인 ‘추적 60분’은 지난해 6월 1,000회를 돌파해 한국 최초의 탐사다큐멘터리답게 방송되고 있으며, 가족 시간대에 방송되는 일일연속극 ‘힘내요 미스터 김’은 불우아동교육에도 크게 도움을 주는 건전 홈드라마로 호평받고 있다. 연예오락 프로그램인 ‘1박2일’도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으로 꾸며지고 있다.
SBS는 크게 성공한 방송 1년이었다. MBC 출신이 SBS 경영진과 제작진으로 참여해 본인들의 발전은 물론 회사 경영도 더욱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 MBC가 장기간 파업과 경영진의 대처능력 부족으로 주춤한 사이 SBS는 괄목할 만큼 발전했다. 프로그램 제작도 활력이 붙은 것 같다. ‘8시 뉴스’도 MBC를 앞섰고, 드라마와 연예오락 프로그램도 좋은 평을 받고 있다. 한 때 방송계를 떠났던 강호동이 다시 출연한 ‘스타킹’도 살아났다. 미디어렙 초기 영업력 부족으로 좌초할 뻔했던 SBS가 MBC의 위기 상황을 틈타 급격한 성장세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SBS에 대한 시청자 인식과 이미지도 즐거운 오락을 주면서도 유익하다는 평을 받고 있어 민방의 좋은 이미지를 굳히는 한 해였다고 생각된다.
방송 3사 간의 광고 실적을 비교해 보면, 2011년도에는 MBC가 압도적 1위를 유지했으나 지난해에는 큰 격차로 3위에 머물고 있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 경쟁력을 하루빨리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자체분석을 내놓았다. MBC는 지난해 11월 5일부터 TV 프로그램을 개편해서 실시하고 있다. 평일 ‘뉴스데스크’를 저녁 9시에서 8시로 이동하고 핵심시간대의 편성 틀을 변화시킨 것이다. 이는 과거 본인이 편성담당을 할 때부터 검토해 보았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생활 패턴에 따른 뉴스 선택 존중과 뉴스의 다양화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장기간 파업으로 뉴스제작기반이 흔들리고 아이템 선정에 문제가 있는데다 MBC 이미지가 떨어진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PD 저널리즘의 대표격인 ‘PD수첩’의 현황은 이렇다. PD수첩 작가 6명은 일자리를 잃고 복직을 요청하고 있다. 회사는 이른바 ‘시험 PD’와 제작 작가 2명을 뽑아서 다시 12월에 방송계획을 세웠으나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얼마 전 ‘리영희 선생 추모행사’에서 해직언론인 복직촉구 콘서트가 진행되었는데, MBC 해직자들이 대거 참석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지난 6월 해고당한 최승호 PD가 소회를 밝혔다고 한다.
1990년 5월 ‘PD수첩’이 첫 방송을 시작했다. 1987년 민주화 요구가 거세게 일었고, 그 결과 노조가 결성되고 PD협회 등 직능단체가 탄생했다. ‘PD수첩’은 그런 시대적 배경에서 태어난 산물이었다. 그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방송한 이후 촛불시위로 이어져 결국 중단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MBC의 상징적인 프로그램 ‘PD수첩’이 정상화되기를 기대한다.
드라마 지나친 역사 왜곡 바로잡아야
2012년의 공중파방송 드라마는 어떠했는가. 드라마의 본질적인 흥미요소는 갈등구조와 그 해결, 삶의 질과 가치에 대한 분별력, 삶의 차이와 간접체험 등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어느 해보다 ‘막장드라마’는 줄어들어 드라마가 오랜만에 국민 정서순화와 통합을 이루는데 큰 몫을 했다. 지난 가을 진주에서 열렸던 세미나에서는 사극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예술적 자유를 인정하더라도 역사적인 사실을 지나치게 왜곡한 것은 비교육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공주의 남자’ <KBS2>, '해를 품은 달'<MBC>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종편방송 1년 기진맥진 채널 내다보여
1년 전 종편TV의 개국을 앞두고 TV의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방송인의 시대정신과 책임감이 중요하다는 글을 본지에 쓴 일이 있다. 특히 종편 채널이 1% 이상의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3년 이상을 버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생존의 관건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다른 나라 예에서도 그렇지만, 종편 방송에는 제작비를 많이 투입하는 관행이 있다. 지나친 경쟁을 하다 보면 1년도 안 되어 인사이동과 프로그램의 폐지가 뒤따르게 된다. 가까운 대만은 무분별한 방송사업 허가로 6개의 지상파 채널과 100여 개의 케이블채널이 난립해 자체 제작비 기반이 붕괴한 것은 물론이고 문화주권까지 위협받는 단계에 이르렀다. 불과 수년 사이에 벌어진 상황이다. 한국도 종편 4개 채널 가운데 벌써 기진맥진하는 채널이 내다보인다.
Jtbc는 80년 방송통폐합 때 없어진 TBC가 다시 부활한 느낌을 주었다. 저녁 8시부터 2시간 동안 시리즈물을 전진 배치해 시청자의 관심도를 높인 후 밤 10시에 메인뉴스를 방송해 뉴스시청률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채시라 주연의 ‘인수대비’는 시청률도 높았고 성공한 프로그램이었다. Jtbc는 우수한 방송 인력을 많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고 튼튼한 자본력을 배경으로 종편 방송에서 가장 활발한 방송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TV조선은 개국특집으로 초대형 가상드라마 ‘한반도’를 방송했고, 김수현 작가의 36부작 드라마를 방송했었다. 다른 종편TV도 비슷하지만 조선 TV는 신문의 전통을 살려서 18대 대선방송에 우수한 기자들을 총동원하는 등 총력전을 펼쳤다.
동아 TV(채널A)는 80년대 통폐합된 라디오 동아방송(DBS) 출신들이 자문하고 제작인력도 많이 확보했다. 오락을 비롯한 박종진의 ‘쾌도난마’와 보도 저널리즘을 강화하고 있다. MBNC매경TV)는 초기에는 YTN과도 차별화해서 보도부문뿐만 아니라 일반 프로그램도 활기가 있어 많은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채널이 점차 약화되고 있는 인상을 받게 된다. 특히 보도 기능을 제외한 방송기능이 약해 보였다.
정부가 발표한 ‘매체이용행태’에 의하면 지상파방송을 직접 시청하는 가구는 9.7%에 불과하다. 이는 콘텐츠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내용만 좋으면 종편TV도 많이 시청한다는 결론이다. 종편방송은 18대 대선정국을 맞아 좋은 기회를 얻은 것 같다. 조·중·동 보수신문이 운영하는 종편방송이어서 보수진영에는 유리한 국면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MBC 파업카드 너무 자주 사용
여의도 MBC 본사건물을 지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다. 장기간 파업으로 시청률이 뚝 떨어졌다. 회사 분위기가 안 좋은 데다 사기마저 떨어져 제작능력이 약화된 탓이다. MBC에 대한 시중 여론과 이미지도 매우 안 좋다. 선배들이 수십 년 쌓아올린 공든 탑인 ‘좋은 방송’과 좋은 이미지를 다시 회복하려면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다. 나는 1990년에 있었던 방송분야 국장추천제에서 다수표를 얻었고, 그 이후 오히려 고난의 길을 걸어왔다. 3대 정보기관이 언론사에 아직도 상주하던 시절이니 짐작이 갈 것이다. 나는 공정한 방송 정도를 생각하는 순수한 방송인이었을 뿐이었다.
결국 다음 주총에서 지방사로 밀려 나갔다. 정년 10여 년을 앞두고 MBC를 떠나 산자락을 헤맸던 세월이 있었다. 이제 와서 회사 노조를 탓하지 않는다. 나는 평화주의자다. 결론적으로 노사는 대화하고 소통해서 파업 없이 분쟁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내가 1989년에 쓴 정책대학원 논문 주제가 ‘MBC 노사 간의 문제 해결방안’이었다. 파업 없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문화와 전통을 만들어가기를 기원한다.
학문에도 ‘멈춤과 그침의 학’ 지학(止學)이 있다. 그치고 멈출 줄을 알아야 한다. MBC 노조는 파업카드를 너무 자주 써먹었다. 전면전을 너무 자주 했다. 잘해 보려고 노력한 경영진의 열정을 이해한다. 그러나 파업을 막기 위한 조정능력이 겨우 그 정도였던가. 파업종료 후 복귀했을 때, 전문분야와 관계없는 근무처 변경발령은 지나친 보복인사가 아니었던가. MBC 역사에 일찍이 없었던 131명 징계와 8명 해고는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어려울수록 방송인들이 서로 존중하고 아끼는 자세가 절실해 보인다. 이제 봄이 되면 MBC도 큰 변화가 올 것이다. 이제는 ‘좋은 방송’을 위해 냉정해져야 할 것이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3년 1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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