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전경, 청계고가도로 옆 높이 솟은 삼일빌딩이 단연 눈에 띈다
한조가 되어 달리기를 준비 중인 고 신성일과 고 윤정희의 모습. 윤정희는 사극영화 밤샘 촬영을 하여 참석이 힘들었지만, 장동휘 황정순 등 선배연기자들의 부탁으로 잠시 촬영을 중단하고 참석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조여인 헤어스타일에다 잠을 못자서 얼굴이 부었다고 한다. 생전에 500여편의 영화에 출연한 신성일씨는 2018년 11월 일 세상을 떠났으며 한국의 오드리 햅번으로 불리던 윤정희씨는 2023년 1월21일 세상을 떠났다.
태극기 앞세우고 가두투쟁 벌이고 있는 시민들 (60. 4. 20) 시민들이 4.19 혁명 당시 태극기를 앞세우고 가두투쟁을 벌이고 있다. 4.19 혁명은 1960년 4월에 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정부 민주주의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의 부정 선거에 항의하며 민주적 절차에 의한 정권 교체를 요구했다. 직접적인 원인은 3월 15일 실시된 자유당 정권의 불법·부정 선거였으나, 근본적인 원인은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탄압이다. 시위가 거세지자 4월 26일 이승만은 사임을 발표했고, 허정의 과도 정부가 수립됐다.
1971년 4월 20일 봄맞이 벚꽃놀이가 시작된 창경궁 앞이 나들이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한국어린이음악단은 1951년 4월 한국전쟁 당시 해군 정훈감실에서 한국을 도와준 유엔군을 위로해주기 위해서 계획하고 만든 합창단으로 부산으로 피난 왔던 서울중앙방송국(훗날 KBS) 소속 어린이들이 중심으로 7~12세 사이의 노래를 잘 부르는 어린이 25명으로 구성돼있었다. 어린이합창단은 1953년 7월 휴전까지 군병원의 환자들을 위한 위로공연과 유엔군 부대를 찾아가서 그 나라의 민요, 동요를 부르며 유엔군 군인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 실제 전선까지 가 전쟁으로 지친 군인들을 위해서 공연을 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합창단은 더이상 위문공연을 할 필요가 없어지자 합창단장은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손원일 제독에게 "미국 대도시 순회 공연을 제의해 미국에서의 공연이 성사되었다. 특히 한국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 공연에서 영어로 "Longing for Brother (오빠생각)"을 부르자 많은 사람들이 울었으며 택사스에서의 공연때는 1만 5천명의 관중들이 모였다,
1970년 3월 30일 9명의 일본 적군파가 도쿄발 후쿠오카행 일본항공(JAL) 여객기를 공중 납치했다. 요도호에는 승무원 7명과 승객 등 115명이 타고 있었고 적군파는 기장을 권총으로 위협해 평양으로 갈 것을 요구하였다. 범인들은 북한으로 가던 중 3월 31일 김포공항에 비상착륙한 뒤 승무원과 승객을 인질로 잡고 북한까지 안전한 비행 보장을 요구했다. 결국 김포공항에서 범인들은 한국정부의 설득으로탑승객 전원을 석방하는 대신 야마무라 신지로 당시 운수성 정무차관을 인질로 잡고 79시간 만에 북한으로 떠났다. 그 후 평양에 도착 후 납치범들을 내려놓고 하네바 공항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