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는 인체에서 가장 큰 장기이며 모든 장기를 포장지처럼 둘러싸고 있다. 외부의 다양한 자극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혈관의 확장과 수축, 발한으로 인한 체온조절, 지방과 오래된 각질의 배출 등 다양한 기능이 있다. 온몸의 피부에서는 촉각을 느낀다. 일반 성인의 경우 면적은 약 1.6~2㎡ 정도이다. 우리 몸은 7년에 한 번씩 새로 바뀐다고 한다. 그중 피부는 한 달 정도 노력하면 피부 표피층을 부드럽고 매끄럽게 바꿀 수 있다. 진피의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것은 약 3개월, 피부의 전반적인 톤이 개선되려면 약 7개월, 부분이 아닌 몸 전체를 다시 프로그래밍하는 데는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야 한다. 한편, 화장으로 인해 피부호흡을 못 하면 피부가 망가진다거나 몸에 금가루를 바른 퍼포먼스는 피부호흡이 어려워 단시간밖에 못 한다거나 하는 말이 있다. 정말 피부호흡을 못 하면 생명에 지장이 있을까. 과거 인간은 몸집이 커지면서 피부호흡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대신 허파에 공기를 넣고 심장에서 온몸에 산소를 보내는 시스템으로 몸 구석구석까지 산소를 공급하게 되었다. 즉 사람은 피부호흡의 비율은 겨우 0.6%에 지나지 않고, 허파와 심장의 활동으로 온몸에 산소를 보
21세기를 살고 있는 MZ세대들에게 1960년대는 어쩌면 그저 낯설거나 혹은 관심 밖의 시대일 수도 있겠다. 1960년대는 도시화, 산업화로 대변되는 시대다. 특히 1962년 국가가 주도했던 산업육성정책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처음으로 실시되면서 농촌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사람들이 끊임없이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광복 직후 서울의 인구는 80만명 정도였으나 1960년 서울의 인구는 240만명을 넘어서게 된다. 1960년대 이후 서울의 성장은 우리나라 도시화의 과정을 거의 지배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적인 의미에서 도시화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도 1960년대 이후이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에는 이촌향도(離村向都)의 물결이 밀어닥 치게 된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도시인구의 비율은 1966년에 34%, 1970년에 41%로 늘었다. 1966~1970년 동안의 서울의 인구중가는 매년 평균 40만명 이상에 이르렀고 이는 우리나라 전 체 인구증가의 76%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재건운동의 유행으로 젊은 남녀 '재건데이트' 유행 1963년에는 시골 어린이가 배가 고파서 술도가의 술 찌꺼기를 얻어먹고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책상 앞에서
손톱은 '케라틴'이라는 단단한 단백질로 이루어진 피부의 일종으로 손톱 뿌리에 있는 반달형의 손톱 기질로부터 만들어진다. 몸의 말단에 있고 말초혈관이 모여 있는데, 영양분 전달이 어려워서 영양 부족이나 건강에 따른 영향을 받기 쉽다. 손톱에 특징적인 변화가 생기는 질환도 있으므로 손톱 색깔과 상태에 따라서 자신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손톱에 생긴 가로줄은 건강이 나쁘거나 스트레스의 영향으로 손톱의 성장이 일시적으로 정체된 것을 나타낸다. 손톱은 하루에 0.1mm씩 자란다고 하므로 손톱 뿌리에서 줄까지 길이를 재보면, 건강이 나빠진 시기를 알 수 있다. 가는 세로선이 보일 때는 노화로 인한 것으로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손톱이 부서질 것처럼 세로선이 선명하게 보인다면 혈액 순환 장애일 가능성이 있다. 손톱 색깔이 변했을 때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손톱이 하얗고 탁한 원인으로 가장 많은 것은 조백선(손톱 무좀)이지만, 손톱이 하얗고 탁하면서 불투명한 유리처럼 될 때는 만성적인 신장 장애나 간경변증이 아닌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손톱이 얇아지면서 가운데가 둥글게 패여 스푼처럼 된 스푼 손톱과 창백한 푸른빛일 때는 철 결핍성 빈혈, 보라색은 심장과
우리나라에는 차가 언제 들어왔을까? 차의 유래와 관련하여 자생설, 수로왕비 전래설, 대렴 전래설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국내외에서 널리 알려진 설은 대렴 전래설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828년(신라 흥덕왕 3)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이 당의 문종황제로부터 차를 대접받고, 귀국길에 차 종자를 가지고 와서 왕께 드렸더니 지리산에 심으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차를 일컫는 명칭에는 ‘차’와 ‘다’가 섞여서 사용된다. ‘차’는 본래 중국 북부의 음(音)인데 ‘다’는 중국 남북조시대의 남조의 오(吳)나라의 음이다. 우리나라에는 중국 화북 지역의 ‘차’와 ‘다’가 들어와서 지금 둘다 사용되고 있다. 차는 예로부터 다양한 민간요법으로 내려와 생활문화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우리 몸을 다스리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선옥죽차는 다양한 품종의 둥굴레 중에서도 향미 및 약효가 뛰어난 용둥굴레를 이용해 만든 차이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둥굴레차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용둥굴레의 꽃은 5~6월에 피며 잎겨드랑이에 2개씩 달리는 데 2개의 포에 싸여 있다. 봄에 올라오는 새순은 죽순과 비슷한 모습이다. 뿌리를 재료로 차로 만드는데 뿌
명절을 맞아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는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선물은 받는 사람의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 선물을 선택한 사람의 센스를 돋보이게도 하고, 받는 사람의 품격도 높여준다. 선물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기쁨이 같으면 그 기쁨은 두 배가 될 것이다. 간혹 체면을 앞세워서 어떤 선물이 좋은지 묻지도 못하고, 선물을 받고도 싫은지 좋은지 표현 못 하는 때도 있다. 명절에는 선물하는 이의 배려가 더욱 돋보일 수 있게, 선물하는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선물의 의미와 선물 잘 주는 노하우를 살펴봤다. 선물의 의미 선물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어떤 물건 따위를 선사함 또는 그 물건’으로 정의된다. 일상에서 말하는 선물은 물건에 대한 정의를 넘어 그것을 전달하기까지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과 행위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생일을 맞은 어떤 사람에게 케이크를 선물한다고 생각해보자. 먼저 선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어떤 종류가 좋을까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제과점으로 직접 가서 여러 종류 중에서 하나를 고른다. 지갑을 열고 값을 치르며 경제적 지출이 생겼다. 그것을 조심스럽게 들고 선물을 받을 주인공에게
설이 다가오면 집집마다 상 위에 오르는 음식의 무게만큼이나 마음의 무게도 달라진다. 떡국 한 그릇을 올리며 조상을 떠올리는 시간, 우리는 그것을 흔히 ‘차례’라 부른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묻는다. 차례와 제사는 무엇이 다른가. 두 의례는 모두 조상을 기리는 전통이라는 점에서 뿌리는 같다. 그러나 그 성격과 맥락은 분명히 구분된다. 차례는 명절에 올리는 절기 제례다. 설과 추석, 계절의 문턱에서 후손이 조상께 안부를 묻고 감사의 뜻을 전하는 의식이다. 특정 한 분만을 모신다기보다 집안의 여러 조상을 함께 기리는 경우가 많다. 형식도 비교적 간소하다. 설 차례상에 떡국이 오르는 이유는 단순한 음식의 문제가 아니다. 새해를 맞는 공동체의 의지를 조상과 나누겠다는 상징이다. 차례는 추모라기보다 ‘인사’에 가깝다. 반면 제사는 고인의 기일에 올리는 의례다. 시간도 명절 아침이 아니라 기일 밤이나 전날 밤이 전통이다. 대상 역시 특정 고인이다. 절차와 상차림도 차례보다 엄격하다. 홍동백서, 좌포우혜 같은 진설 원칙이 강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제사는 공동체의 축제적 성격보다 한 인물의 삶을 기억하고 기리는 추모의 성격이 강하다. 분위기 또한 보다 경건하다. 요컨대
발렌타인데이의 시작은 3세기(269년)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황제의 허락 아래에서만 결혼할 수 있었는데, 사제 밸런타인(Valentine)은 서로 사랑하는 젊은이들을 황제의 허락 없이 결혼을 시켜준 죄로 순교했다. 그가 순교한 뒤 이날을 축일로 정하고 해마다 애인들의 날로 기념하여 온다. 이날은 여자가 평소 좋아했던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허락된다. 주로 사랑을 전하는 매개체는 초콜릿이다. 최근에는 초콜릿 이외에도 자기만의 개성적인 선물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발렌타인데이는 1980년대 중반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유입되었는데 일부에서는 젊은이들의 욕구를 악용하려는 상혼이 빚어낸 그릇된 사회현상이라고도 하지만, 남녀가 이날을 이용해서 서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용기를 내기도 하는 날이다. 우리나라에도 ‘연인의 날’이 있었다. 벌레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양력 3월 5일경)이 그 날이었다. 경칩날 정을 돋우고 싶은 부부나 멀어진 정을 다시 잇고 싶은 부부 그리고 사랑하고 싶은 처녀 총각들은 은밀히 숨어서 은행을 나눠먹었다.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서로 마주 바라보고만 있어도 사랑의 결실이 오간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기호식품의 사전적 정의는 ‘독특한 향미가 있어 기분을 돋우고 흥분이 되는 식품’이다. 기호식품은 그 짧은 역사를 실감할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파급력으로 이미 우리 삶의 깊숙한 부분까지 자리 잡았다. 모카라떼 커피를 마시며 베스트셀러를 보거나, 마트에서 초콜릿을 카트 안에 밀어 넣으며 기호식품이 주는 작은 행복을 느끼는 일이 일상이 된 것. 여기서 잠깐,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은 먹을거리들은 대체 언제부터 등장한 걸까. 식생활 개선과 입맛의 서구화 1970년대에도 세계적으로 식량난은 여전해 정부는 쌀 소비절약의 일환으로 쌀보다 밀가루 음식 위주의 식생활과 새로운 주식으로 감자, 고구마를 개발·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혼합곡을 판매하고 무미일(無米日)을 제정하는 등 혼식을 장려해 강제적이긴 하지만 좀 더 바람직한 형태의 식생활이 이뤄지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유제품, 소시지, 대두유 등 기름지거나 단백질 함량이 높은 동물성 식품과 커피, 청량음료 등 기호식품의 생산이 증가하기 시작해 서구화로의 변화가 더욱 가속화, 일반화됐다. 풍부한 식생활과 소비활동은 경제발전과 함께 자연스럽게 증가되었다. 1961년 육류 소비량은 1인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백년의추억'은 100번 버스안내양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였다. 지금은 사라진 직업인 버스안내양에 대해 알아보자. 1928년 4월 22일 버스가 등장했다. 경성부가 일본 이시가와지마 조선소에서 만든 '우즈레' 라 불리는 12인승 상자형 버스를 도입한 것. 정원은 22명이었으며, 차비는 구역별 7전으로 책정했다. 경성부에서 버스를 운행했기 때문에 '부영버스'라 불리던 버스는 경성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낯선 이동 수단이라는 점도 눈길을 끌었지만, 그보다 '뻐스 걸' 이라 불렸던 여차장들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경성 사람들의 러시아워를 책임졌던 버스 여차장들은 종일 자동차 소음과 매연 그리고 성마른 승객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버스의 개통에 발맞춰 경성 부영버스 회사에서는 여차장을 모집했다. 응모 자격은 15세에서 20세 미만의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미혼 여성으로 조선에서 최초로 선발된 여차장은 모두 12명이었다. 6.2:1의 경쟁률을 뚫어야 여차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다. 업무는 고되었지만, 여성의 사회활동에 제약이 많았던 당시에는 인기 있는 직업 가운데 하나로 1930년에는 7명의 여차장을 뽑는데 99명이 지원
입춘, 봄을 알리는 날이 되면 봄이란 걸 느낄 만큼 만족스럽지 않다. 하늘에 봄이 오는 것은 한겨울 동지(冬至)부터 라고 한다. 밤과 낮의 길이가 똑같은 이때를 기점으로 비로소 낮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기 때문이다. 지구가 서서히 덥혀져 봄이 땅까지 도착하는 데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입춘은 그 당일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절기 즉 우수(雨水) 전까지의 기간을 모두 포함한다. 대개 한 절기는 15, 16일 정도 되는데, 입춘의 처음 5일은 동풍이 불어와 언 땅을 녹이고 다음 5일은 벌레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마지막 5일은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입춘이 되면 사람들은 자연으로부터 봄을 모셔와 한 해 농사지을 마음부터 준비한다. 그래서 주로 입춘에 굿을 하거나 점을 보기도 했다. 그리고 입춘에 날씨가 좋거나 보리 뿌리를 뽑아 봐서 뿌리가 많이 나 있으면 풍년을 점쳤다. 그리고 입춘이 음력 설날보다 빠르고 느린 것에 따라 봄의 날씨를 짐작해 보기도 했다. 또, 대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을 붙여놓고 한 해 좋은 일이 있기를 기원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은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양기가 솟아 경사가 많아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