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뉴스 이경화 기자)= 정월대보름은 음력 1월 15일, 새해 첫 보름달이 뜨는 날로 한 해의 풍요와 건강을 기원하는 우리 민족의 세시풍속이다. 설이 가족 중심의 명절이라면, 정월대보름은 마을 공동체가 함께 어울리며 복을 비는 날이다. 달빛 아래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안녕을 묻고, 한 해 농사의 풍년과 가정의 평안을 기원했다. 보름달에 담은 소망 정월대보름의 상징은 단연 ‘보름달’이다. 둥글고 환한 달은 완성과 충만을 뜻한다. 예부터 사람들은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고, 그 마음은 지금도 이어진다. “올해는 무탈하게, 우리 가족 건강하게.” 등. 소박하지만 가장 절실한 바람이 달빛에 실린다. 대표 풍속과 의미 ■ 부럼 깨기 - 새벽에 호두, 땅콩, 밤 등을 깨물어 먹으며 한 해 동안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기를 기원했다. 건강을 바라는 지혜가 담긴 풍습이다. ■ 오곡밥과 묵은 나물 먹기 - 쌀·조·수수·콩·팥 등 다섯 가지 곡식으로 지은 오곡밥은 풍요를 상징한다. 여러 나물을 함께 먹는 것은 다양한 복을 고루 받으라는 뜻을 담고 있다. ■ 달집태우기 -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아 쌓은 달집에 불을 놓으며 액운을 태워 보내고 복을 맞이했다. 불꽃이 높이 오를수록
설날이 지나고 찾아오는 또 다른 특별한 날, 정월대보름. 정월(1월)의 보름날을 가리키는 말로, 음력 1월 15일에 해당하는 한국의 전통 명절이다. 설날 이후 처음 맞는 보름날로 '상원', 혹은 '오기일(烏忌日)'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번 정월대보름이 특별다는 사실, 무려 개기월식이 함께 찾아온다고 하니, 밤하늘을 수놓을 붉은달을 기대해도 좋을 둣하다. 한 해의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며, 가족과 함께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정월대보름. 흔히 달맞이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나, 전통적으로는 설날보다 더 성대하게 지냈던 명절이었다. 대보름 전날인 음력 14일부터 행하는 여러 가지 풍속들이 있다. 원래는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15일 동안 축제일이었으며, 이 시기에는 빚 독촉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옛날에는 큰 축제였다. 이보다 좀 더 옛날에는 정월 대보름 이튿날을 실질적인 한 해의 시작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하는 설도 있다. 새 학년이 시작하는 날은 3월 1일이지만 3·1절이 있어 본격적인 새 학기는 3월 2일부터 시작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또한 세배를 드릴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이날에는 부럼, 오곡밥, 약밥, 귀밝이술, 복쌈, 김과 취나물
찌개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표면에 떠오르는 뿌연 거품이다. 된장찌개든 김치찌개든, 고기 육수를 낸 국물이든 예외는 없다. 많은 이들이 습관적으로 국자로 거품을 걷어내지만, 과연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것일까. 거품의 정체는 무엇인가 찌개 거품의 주성분은 단백질과 불순물이다. 특히 고기를 넣어 끓일 경우, 근육 속 수용성 단백질(알부민 등)이 열을 만나 응고하면서 미세한 기포와 함께 떠오른다. 핏물, 미세 지방, 뼛가루 같은 잔여물도 함께 섞인다. 이 때문에 전통 한식 조리에서는 “처음 끓을 때 거품을 걷어야 국물이 맑아진다”고 배워왔다. 위생 문제일까, 미관 문제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거품을 걷어내지 않는다고 해서 위생상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가열된 상태라면 세균은 대부분 사멸한다. 다만 문제는 맛과 질감이다. 거품을 제거하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현상이 생길 수 있다. 국물이 탁해지거나 잡내가 남을 가능성이 있다 또 표면 질감이 거칠어진다 특히 사골국이나 맑은 장국처럼 ‘청탕(淸湯)’을 지향하는 요리에서는 거품 제거가 거의 필수 과정이다. 된장찌개·김치찌개: 양념이 강하고 탁한 국물이 특징이므로 거품 제거가
(대한뉴스 이경화 기자)= ‘충무로’ 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영화’이다. ‘영화인의 거리’, ‘낭만의 거리’로 불리며 한국 영화를 상징한다. 또한 충무로는 을지로의 인쇄 골목과 더불어 인쇄업 중심지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충무로가 얼마나 오래된 생활의 터전이었는지 좀처럼 체감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대로변 충무로역 8번 출구에서 단 한 블록만 안으로 접어들면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겉으로는 도심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시장의 심장을 품고 있는 곳이 바로 인현시장이다. 인현시장의 역사는 1950년대 전후(戰後) 복구 시기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골목형 시장으로 7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조선시대 선조의 일곱째 아들인 인성군이 살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시장이 형성될 당시 충무로 일대에서 활동하는 소규모 제조 및 문화산업 종사자들의 식사와 생필품을 공급하기 위한 생활형 점포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계획된 시장’이 아니라 사람의 이동과 필요가 만든 자생형 골목 시장이다. 따라서 인현시장은 오늘날 대형 상업시설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즉 길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의 삶’이 먼저였던 공간이다. 시장의 특징은
명절을 지내며 시가(媤家) 호칭을 둘러싼 갈등이 온라인에서 잇따라 제기되며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도련님', '서방님', '아가씨' 등 전통적인 호칭을 두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불만이 커지는 분위기다. 사회가 변하고 사람들 관계가 다양해짐에 따라 호칭 예절도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개그맨 부부 중에 이혼한 커플이 없어서 제목이 ‘1호가 될 순 없어’라고 했던 JTBC의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 한번은 손지창·오연수 부부가 출연했는데 남편은 아내를 ‘여보’라고 부르고, 아내는 남편을 ‘오빠’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 외 남편이 연하이고 아내가 연상이었던 부부는 처음에는 남자 쪽에서 아내를 ‘누나’라고 하다가 사랑을 확인하고 난 뒤에는 ‘야’라는 표현도 했다고 한다. 또 다른 부부는 남편이 연상의 경우인데, 처음에는 여자 쪽에서 ‘오빠’라고 하다가 언제부터인가 ‘야’라고 불렀다고 한다. 부부가 그 누구보다도 가깝고 허물없는 사이여서 서로 부르는 말도 자유분방한 면이 있다. 시대가 변해서 남편을 ‘오빠’ ‘야’, 아내를 ‘누나’ ‘야’라는 호칭은 보기에도 듣기에도 좋지 않다. 시대적 변화에 따른 호칭의 예절에 대해 살펴봤다. 부부간의 호칭은 관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