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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방

사회어른을 찾아 - 박인수 백석예술대학교 음악대학원 원장

천부적인 더듬이로 소리를 완성하는 이 시대의 음악가

[인터넷 대한뉴스] 글 김윤옥 기자 | 사진 이정영 기자, 제공 박인수 교수

 

공연을 마치고 평생 고마운 아내 안희복 교수와 함께


내적 성숙도는 소리로 연결되며 청중에게 감흥이 그대로 전달된다. 진실한 말이 상대를 움직이듯이 음악가의 내적인 에너지가 어떤 색을 띠느냐에 따라 소리도 달리 전달된다. 박인수 교수는 타고난 감성과 부단한 노력으로 득음의 경지를 꿈꾸는 세계적인 테너다.

 

조선일보에서 5월 16일 ‘테너 박인수의 삶과 음악' 출판기념회 기사를 보았다. 음반은 10여 장 냈지만 책 출간은 처음이다. 잊고 있었던 옛 기억이 떠올랐다. 박인수 교수와 미아리 삼총사인 최성균 한국사회복지미래경영협회 회장이 행사를 주관하며 공연을 부탁했었다. 그날도 역시 많은 제자들과 함께 무대를 훌륭하게 꾸며주었다.

 

너무나도 얇은 감사의 봉투를 건네는데 전혀 개의치 않으며 한 말씀 했다. “최 회장과 나는 각별한 사이야. 얼마든 상관없어.” 기본이 갖추어졌기에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 사는 도리를 알며 실패를 당당히 인정한다. 대한민국 음악 크로스오버의 원조다. 그의 제자 20여 명이 대학 강단과 세계 5대 메이저 오페라극장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300여 회의 오페라 주역과 2,000회를 넘는 콘서트를 했으며 벨칸토 창법을 연구하여 현재도 일주일에 2번 공개 마스터클래스를 한다. 제자들과 같이 공연하고 연구한 지가 30년이 넘었다. 70세를 훌쩍 넘겼지만 아직 현역이다. 음악계의 어른이며 다음 세대와 소통의 대가다. 본지 사회어른으로 모신 이유다.

 

박인수 교수


수줍음 많은 소년이었다. 한때는 운동도 열심히 했다. 돈을 벌기 위해 벌인 사업들은 모두 실패했다. 중·고 동창인 우준형씨는 박 교수를 음악에 다시 입문하게 한 고마운 은인이다. 서울대 성악과 졸업, 버펄로 뉴욕주립대학 음대 졸업, 줄리아드 음악학교 마리아 칼라스 장학생, 1983년~2003년까지 서울대 음대 교수, 2004년부터 백석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백건우 씨가 피아노로 대한민국을 알렸다면 박 교수는 오페라계의 한류를 일찍부터 일으킨 분이다.

 

가수 이동원 씨와 부른 ‘향수'는 전 국민에게 노래에 대한 향수를 자아냈다. 국립오페라단에서 물러설 때나 가십으로 다른 이들의 입에 오르내릴 때에도 상대하지 않았으나 세월이 깔끔히 정리해주었다. 멋을 알고 풍류를 아는 이들과는 흉금을 트고 지내지만 권위나 권력을 소중히 여기는 부류와는 아예 상종을 안 한다. 타고난 자질을 갈고 닦으며 음악 이외 자리는 색깔이 분명해 가릴 줄 아는 진정한 한량이다. 같은 길을 가는 안희복 전 한세대학교 교수와 1남을 두었다.

 

인격이 소리에 미치는 영향


밥은 누구나 짓지만 밥맛은 천차만별이듯이 음악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잘 통찰해 놓은 박 교수의 글이 있어 발췌했다. ‘소리와 음악을 양분하여 말하나, 나는 소리가 모든 것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소리는 음악의 정제미와 세련미, 그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의 지적 소양, 그의 성품과 양심까지도 반영한다.

 

다시 말해 참으로 좋은 소리를 연마하는 과정에는 단순한 음악적 발전을 위한 공부뿐만 아니라 모든 노력과 삶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먼저 인간이 되라는 옛말이 있는데 음악가에게 있어 이 말의 의미는 더욱 특별하다. 오로지 소리만을 연구하며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니 차츰 좋은 소리와 그렇지 못한 소리가 왜 그렇게 들리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음악가 개인의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음악은 소리의 균형과 인격의 균형을 고루 갖추었을 때에야 비로소 안정감 있게 나온다.

 

성악가들 가운데 역사적인 대가들은 단순히 소리를 잘 내고 노래 잘하는 가수라기보다는 모든 면에서 균형이 잘 갖추어진 이들이다. 그 대가들은 어디에도 치우침 없이 밸런스를 완벽하게 유지할 줄 알았다. 그들은 사자처럼 포효하다가도 양처럼 순하게 노래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수줍은 표현 가운데 좌중을 호령하는 박력이 있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때론 다부진 면이 있었던 것이다.'

 

- 인격적으로 갖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십니까.

워낙 ‘향수' 노래로 유명한 분이고 여러 매체에 소개도 많이 된 분이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음악을 경외하고 사람을 경외하지. 처음 만나는 사람이 식당에서 다른 사람을 막 대하는 모습을 보면 다음에는 절대 안 만나.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많이 보고 배우지. 그 외에는 어려서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해 책을 많이 봐. 인생을 배우고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장이잖아. 특히 춘추전국시대를 다룬 ‘열국지'는 여러 번 읽었고 가장 좋아하는 책이야. 구약성경과 비슷하기도 하고 역사라는 것이 되풀이되잖아. 우리나라 쏠림현상이 강한 것도 역사적으로 지정학적인 영향이 많아.”

 

취재진은 30여 분간 음악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 곳에 문리가 트이면 다 통한다지만 역사 이야기만 듣다 헤어질 수 없어 박 교수 제자 정호윤과 그의 아버지 정지태 씨(박 교수 책을 출간한 지성과 영성의 대표)와 점심을 같이하며 자리가 이어졌다.

 

스승과 제자


정호윤은 국내는 물론 벨기에 왕립 국제성악콩쿠르 등 세계 유명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고 비엔나 국립오페라단 주역으로 활동하다 지금은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스승의 출판기념회 축하와 구리아트홀 개관 축하 KBS 교향악단과의 협연을 위해 서울에 머물 때였다.

 

1990년대 중후반 박 교수는 지인들로부터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으니 노래를 그만두라는 조언을 듣는다. 본인도 문제점이 있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언젠가 책에서 본 벨칸토 창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벨칸토 발성 황금기는 1600~1850년경으로 한번 익히면 죽을 때까지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발성법이다.

 

세계도서관에 산재해 있는 기록을 찾는데 미국에 체류하는 아들 상준이가 많은 도움을 주었고 박 교수는 그를 통합 연구하여 그만의 목소리를 되찾았다. 1993년 이후 입학한 서울대 제자들에게는 벨칸토 발성법을 지도했다. 그 발성법을 배운 제자가 오페라의 본고장 유럽에서 인정받고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 정호윤 씨도 벨칸토 창법으로 공부했나요.


“네. 저는 96학번입니다. 기존의 창법과 입 모양이 다릅니다. 예전 교수법은 입 모양을 옆으로 벌리지 못하게 가르쳤지만 벨칸토 창법은 입구조에 따라 인위적이 아닌 자연스러운 발성을 하는 거죠. 교수님께서는 밥도 많이 사주시고 공연도 같이 다니고 좋은 추억거리가 많습니다. 유럽에 있지만 제 소리에 문제가 있을 때면 제일 먼저 찾아뵙고 스승님께 도움을 받습니다.”

 

박 교수의 제자사랑은 남다르다. 실력과 대중에게 알려진 인기만으로도 얼마든지 독무대가 가능하지만 대부분 공연에 꼭 제자들을 대동하여 같이 무대에 선다. 제자들에게 많은 기회를 부여함과 동시에 대중에게 더 많은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다. 이날 가까이에서 본 스승과 제자는 흉허물 없이 옛이야기를 흥겹게 나누는 모습이 사제지간이 아니라 부자지간 같았다. 박인수 교수 50주년 기념음악회 때 천리길도 마다않고 전 세계에서 제자들이 몰려와 같이 공연한 것은 당연한 일이면서도 또 귀한 장면이었다. 


삶의 회한


그는 나름대로 선택과 집중의 삶을 살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당시 왜 좀 더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을까'하는 점과 언제나 더 잘하려고 하는 과욕이 실패의 원인이었다고 했다. 어중간한 것 없이 공연은 성공 아니면 실패였다.

 

- 미처 못다 한 말이나 일이 있다면.


“아내와는 서로의 예술세계를 존중하며 살기로 했지. 자식도 안 낳으려다가 어머님의 성화에 아들을 낳았지만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장 도움을 준 사람은 역시 자식이야. 지향하는 곳까지 다다르려는 예술가의 욕심에 때로는 이기적일 수 있었지만 우리 가족은 서로의 길을 가는 좋은 반려자라고 생각해.

 

그리고 난 평생 여러 사람에게서 도움을 많이 받았지. 사람 관계를 잘해야 하는데 공연 등 바쁘다는 핑계로 사람 노릇을 제대로 못한 면이 없지 않아. 게을러서 그런 것도 있고 생각이 부족해 잘 알지 못했던 것도 많은데 어떻게 보면 바쁘다는 것은 핑계고 성의 부족이지 않았을까 싶어. 아내도 참 고마운 사람인데 내가 표현을 잘 못하지. 플루티스트에서 내 뒷바라지를 하느라 성악으로 전향했는데… 물론 당시 뉴욕에 오신 김자경 선생께서 전공을 바꿨다는 소리에 아내의 노래를 청해 듣고는 실력에 놀랄 정도로 성악에도 자질이 있었지.”

 

취재 후기


회를 거듭할수록 ‘사회어른을 찾아' 글을 쓰는 것이 어려워진다. 기자의 그릇은 종지인데 어찌 9첩 반상을 알겠는가! 박 교수님에게는 천부적인 더듬이가 있다. 피아노 연주자 랑랑, 호르비츠 등이 세계에서 주목받기 전 그들의 연주를 가장 훌륭하다고 평했던 그다. 인터뷰 후 기사를 쓰기까지 박 교수님의 CD를 수도 없이 들었다.

 

고음에서 애절하게 감기는 그의 소리를 듣고 매력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세상에 음과 양이 존재하는데 그의 소리는 나비와 같다. 암수를 오가며 열매를 맺게 하는 나비처럼 그의 소리는 대한민국 문화의 커다란 결실을 전 세계에 퍼트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나는 예술이 어떤 형식이나 틀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영혼을 풀어 놓는 자유로움이 있어야 한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자유롭다. 물리적인 발성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있는데 그것은 정신적인 자유로움에서 도달 할 수 있는 경지 즉 4차원의 소리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일반인의 사고 잣대를 들이밀지 말자. 그는 이 시대의 거인이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3년 7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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