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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기 청와대 신임 비서실장이 지난달 2일 오후 국회를 방문해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인사를 하고 있다. |
지난 2월 27일 박근혜 정부 집권 3년차를 이끌어가게 될 새로운 비서실장에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이 내정되었다. 그동안 직을 맡아왔던 김기춘 비서실장은 박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아왔으나 정치 현안에 대해 유연한 대처를 하지 못해 일찍부터 교체설이 나돌았다. 그래서 김기춘 비서실장의 후임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었다. 취임 당일 반응은 엇갈렸다. 국무총리 인선의 후폭풍인지 너무 안이한 선택을 한 것이 아니냐는 반응까지 나왔다. 이병기 비서실장의 내정 이유와 소통행보, 지금까지의 행적,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에 대해 짚어봤다.
내정 이유와 소통행보
집권 3년차에 접어든 박근혜 정부는 경기침체와 저성장 기조, 지난해 갑자기 일어난 세월호 사건, 국회에 묶여 있는 경제활성화법, 일본과의 갈등과 진전 없는 남북대화 상황에다가 김기춘 비서실장 문제와 불통의 이미지까지 박근혜 정부가 풀어야 할 문제가 많이 산재돼 있는 상황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이병기 비서실장 내정은 이완구 국무총리 내정과 함께 속도감 있게 집권 3년차를 이끌어나가겠다는 굳은 의지로 엿볼 수 있다.
이병기 비서실장은 주일 대사와 국정원장을 역임해 외교와 안보문제를 함께 풀 수 있는 동시에 현 정부의 산적한 문제를 풀어갈 만한 인물로 평가된다. 발표 당일 청와대에서도 국제관계와 남북관계에 밝고, 대통령을 보좌해 대통령 비서실 조직을 잘 이끌어가고 청와대와 국민 사이에 소통의 길을 열어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취임 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 비서실장은 소통을 강조하고 현안들을 보고 받았다.
지난 3월 2일에는 국회를 찾아 여야 지도부와 국회의장을 예방하는 등 이전 비서실장들과는 다른 행보를 이어갔다. 특히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를 찾아간 자리에서는“낮은 자세로 대통령을 보필하고 국민여론과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여야와 당·정·청의 원활한 소통으로 법안 처리와 신속한 정책 추진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김기춘 비서실장을 보면 잘 알겠지만 대통령 비서실장직은 실권이 막강하다.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는 비서실을 대표하는 직위로, 대통령의 명을 받아 비서실의 사무를 처리하고 지휘·감독하며, 장관급 정무직 공무원으로 국가의전서열 18위에 해당한다. 특히 대통령이 임명하는 직위 등 대통령 비서실의 인사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지금까지 지적돼 온 청와대 인사권에 깊게 관여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행보
이 비서실장은 외무고시 8회 출신으로 대통령 비서실 의전수석을 지낸 바 있다. 지난 2007년에는 대선 경선캠프에서 선거대책부위원장을 맡았고, 2013년 대선에서는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고문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도왔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2013년 5월 주일대사를 거쳐 지난해 6월 국정원장에 임명됐다. 대통령선거 공작 및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작으로 권위가 땅에 떨어진 국정원을 쇄신시키고 직원들이 국정원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도록 만들어나갈 인물로 평가됐다. 그러나 7개월도 안 된 국정원장 자리에서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정무형 비서실장으로서 시작은 합격점
이완구 국무총리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정치적인 타격을 입으면서 당·정·청 관계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인물로 이병기 실장이 선택됐다. 다행스럽게도 이병기 실장은 이완구 국무총리와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와도 가까운 사이로 이후 원만한 당·정·청 관계를 바로 세워 원활한 소통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여당과 정부, 청와대 간의 엇박자가 어느 정도 교통정리되면서 박 대통령의 국정과제를 추진하는 데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병기 비서실장은 임명 다음 날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본인의 기사를 언론에서 너무 크게 다룬다며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언론에서는 비서실장이 언로가 막혀 있는 대통령에게 국민들의 생각과 여론을 있는 그대로 전해주는 가교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비판을 받아온 대표적인 이유가 사건·사고를 비롯해 정치현안에 대해 신속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병기 비서실장은 여야와 당·정·청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대통령이 중동 해외순방으로 자리를 비운 지난달 5일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테러사건이 벌어졌을 때 이병기 실장이 보여준 모습은 대단히 신속하고 정확했다. 지금까지 대통령 순방 중 발생한 사건들에 대한 부족한 정무감각과 늦은 상황판단이 문제가 되어왔다. 대통령의 해외일정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병기 실장은 사건이 벌어진 지 3시간 30분 후 보고받은 상황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는 등 발 빠른 대처를 했다. 자칫 시간을 끌었다가는 한·미관계가 악화될 수 있었지만, 박 대통령과 리퍼트 대사의 통화 후 미 국무부의 긍정적인 입장표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신속하게 보고를 한 이병기 비서실장 덕분이었다.
북한, 일본 등 외교 현안
이런 이병기 비서실장이 넘어야 할 산은 아주 많다. 이병기 실장은 1981년부터 1993년까지 노태우 대통령 취임 이전부터 가까이에서 보좌했기 때문에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선언의 의미와 배경을 잘 알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이병기 비서실장을 발탁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것이었는데,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에서는 지난달 5일 이병기 비서실장을‘반통일 대결광신자’라고 강력 비난하고 나섰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과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등이 국정원에서 조작 책동한 결과이며, 청와대가 이병기 국정원장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것은 국정원을 두둔한 행태라는 것이다.
또한 광복 70주년이자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병기 비서실장은 2013년 5월부터 2014년 7월까지 주일 대사를 역임했다. 주일 대사가 청와대 비서실장이 되었다는 점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불편한 양국관계가 어느 정도 전환점을 맞지 않겠느냐 하는 전망도 있다. 박 대통령을 지근에서 보좌하는 이병기 비서실장이 아베 총리내각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과 긴밀하게 연락하고 있고, 야치 쇼타로 국가안보국장과도 교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둘은 아베 총리의 복심이자 외교 책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런 탓에 일본 언론들도 일본통인 이병기 비서실장이 악화된 한·일관계를 풀어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과거사 부정과 우경화로 인해 벌어진 한·일관계가 단순한 제스처로 풀어지기는 만무하다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나오며 - 국내 현안
지난달 6일 국정운영 주도권을 두고 미묘한 시각차가 보였다. 정부와 청와대, 새누리당 수뇌부가 모인 자리에서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는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주안점을 두고 무조건적인 협력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병기 비서실장은 당·정·청 일체론을 주장하며, 국정운영 3년차이자 총선을 앞둔 시기에 한 몸처럼 협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더 멀다. 공무원연금개혁을 포함해 경제개혁법안 통과 등 이병기 비서실장이 박 대통령의 곁에서 보좌하며 야당과 당·정·청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소통하며 국정을 운영해 나가느냐에 따라 그 성과가 나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