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대한뉴스] 글 조선영 / 사진 오스트리아 관광청
‘ 나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또 다시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전날의 슬픔만이 나에게 엄습해 옵니다. 이렇게 환희도 친근감도 없이 하루가 지나갑니다’. 슈베르트의 일기 중에서
슈베르트의 유년시절
슈베르트는 1797년 오스트리아 빈의 교외 리히텐탈에서 초등학교 교장인 아버지와 요리사인 어머니의 4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슈베르트가 5살부터 악기교육을 시키고 1년 뒤 그의 아버지의 학교에 입학해 그때부터 공식적인 음악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는 슈베르트에게 바이올린의 기초를 가르쳤으며, 그의 형 이그나츠는 피아노 교습을 시켰다.
슈베르트에게 아버지가 음악을 가르친 이유는 당시 가족음악회 형식이 유행이었기 때문에 취미로 하기를 원했지 그를 음악인으로 키우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중에 어른이 된 슈베르트는 교사가 되기 바라는 아버지와 진로문제로 갈등을 겪기도 했다. 1808년 황립 왕실 신학교에 최고의 성적으로 들어간 슈베르트는 본격적인 음악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1814년 리히텐탈 성당의 100주년을 맞아 슈베르트는 그의 최초의 미사곡 바장조를 작곡하게 되는데 미사곡의 소프라노 솔리스트 테레제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는 외모가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목소리가 아름다워 노래를 아주 잘 불렀다고 한다.
둘은 서로 사랑해 약혼까지 했지만 당시 슈베르트는 가정을 책임질 만큼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를 떠나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1824년 에스터하지家의 피아노교사로 있을 때 에스터하지 가문의 두 딸 중 캐롤린을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높은 신분의 벽은 소심한 슈베르트에게는 넘을 수 없는 큰 산이었다.
그녀를 잊지 못하던 슈베르트는 그의 8번 미완성 교향곡을 통해 ‘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나의 교향곡도 미완성으로 두리라’고 하며, 아직 그녀 외에 다른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가곡의왕’ 슈베르트 음악인생의 버팀목이 된 친구들
‘슈베르티아데’라는 슈베르트의 친구들, 시인, 화가, 음악가들로 이루어진 친목모임을 중심으로 슈베르트가 음악활동을 하고 생활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15년부터는 그의 재능을 안 친구들의 도움으로 작곡하기 시작해 수백 곡의 가곡을 작곡하고 괴테의 시에 곡을 붙여 ‘마왕’, ‘들장미’ 같은 명곡도 이때 탄생하게 되었다. 1817년에는 성악가 포글을 만나게 되는데, 당시 최고의 성악가이자 빈 궁정 극장의 명가수로 슈베르트보다 25세 연상이었다. 슈베르트는 포글을 위해 가곡들을 작곡했고 그가 노래를 불러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슈베르트는 천재답게 작곡을 아주 빠르게 완성하는 것으로 유명했고, 그래서 자신의 곡을 기억하지 못하기도 했다. 하루는 포글이 노래를 하고 자신이 반주를 한 후 ‘이 곡 참 좋은데 누구 작품이지?’ 라고 포글에게 물어본 적도 있다고 한다. 슈베르트의 작품 1천여 곡 중에 7백여 곡이 가곡으로 슈베르트는 시와 음악을 합친 이 낭만적인 가곡을 하나의 또 다른 예술로 개척했다고도 볼 수 있다.
작품이야기
‘네 손을 위한 판타지아 바단조(fantasy for piano 4 hands in f minor D.940)’
피아노곡 중에 최고로 손꼽히는 곡 중의 하나로 ‘네 손을 위한 판타지아 바단조(fantasy for piano 4 hands in f minor D.940)’가 있는데 이 곡은 피아노 한대에 두 사람이 함께 치는 곡으로 얼마 전 드라마를 통해 소개되어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 곡은 슈베르트가 에스터하지家의 딸 캐롤린에게 헌정한 곡으로 연주할 때 두 사람의 손이 유난히 많이 스친다. 사랑하는 캐롤린의 손조차 잡지 못해 함께 연주하며 스치는 것만으로도 가슴 저린 사랑을 한 슈베르트의 마음이 느껴지는 슬픈 단조의 곡이다.
아베마리아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는 당시 최고의 역사소설가인 스코틀랜드의 월터스콧의 ‘호수의 여인’ 중 여주인공 엘렌의 기도에 곡을 쓴 것으로, 원래 가사는 호수의 바위위에서 성모상에게 아버지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비는 내용이지만, 나중에 바이올린곡으로 편곡되어 유명해졌고, 기도문 성모송으로 개사해 지금의 유명한 아베마리아가 되었다.
송어(Die Forelle)
이 곡은 시인 슈바르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슈베르트의 친구 포글이 자신들의 모임인 ‘슈베르티아데’에서 초연했다. 그 후 2년 뒤 둘이 떠난 오스트리아 북부지방 여행에서 파움가르트너라는 광산학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 ‘송어’ 노래를 듣고 실내악곡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해 탄생된 곡이 피아노 5중주 ‘송어’다. 피아노의 선율이 맑은 시냇물에서 이리저리 뛰는 물고기의 움직임을 잘 표현하고 있는 곡이다.
이 ‘송어’는 성악곡이든 실내악곡이든 아름다운 멜로디가 역시 슈베르트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곡이다.
자신의 우상 베토벤과의 만남… 1년 뒤 찾아온 슈베르트의 죽음
평소에 베토벤을 존경해왔던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만나고자 했지만 소심한 성격으로 만날 용기조차 가지지 못했고, 베토벤의 청력상실을 비롯한 합병증으로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만날 기회를 더더욱 가지지 못했다. 그러다 지인들의 권유로 슈베르트가 용기를 내어 1827년 베토벤 집을 방문하여 만나게 되는데 베토벤은 자신이 사는 곳과 불과 2km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에게 인사하며 자신이 작곡한 악보를 보여주자, 베토벤은 그의 악보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으며, 이렇게 늦게 만난 것에 대해 후회하며 “자네를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내 명은 이제 다 되었네. 슈베르트, 자네는 분명 훌륭한 음악가가 될 것이네. 그러니 용기를 잃지 말게…”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베토벤은 청력상실로 듣지 못하는 탓에 슈베르트에게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적으라고 했지만, 슈베르트는 자신이 존경하는 음악가의 병이 든 처참한 모습을 보고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괴로운 나머지 인사말도 없이 그대로 방을 뛰쳐나가버렸다. 이것이 베토벤이 죽기 일주일 전의 일이었고,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리고 슈베르트는 1주일 뒤 베토벤이 죽자 그의 장례에 참여하였다. 베토벤이 죽은 1년 뒤인 1828년 슈베르트는 원인모를 병을 얻어 몸져누웠다. 그의 병세는 날로 악화되어 기억력이 감퇴되고 헛것이 보이며 혼잣말을 하는 등 정신이상의 증세를 보이다가 31세의 젊은 나이로 빈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슈베르트의 아버지는 유해를 교회에 묻으려 했지만, 당시 그를 돌보던 둘째 형이 평소에 존경하던 베토벤의 옆에 묻어주자고 제안을 해 빈 중앙 묘지의 베토벤 무덤 옆에 나란히 묻혔다.
기자 뒷말
우리가 사람의 일생을 계절에 비유해 이야기할 때 죽음이 다가오는 시기를 겨울로 말하기도 한다. 슈베르트는 자신의 죽음을 느낀 듯 ‘겨울나그네’를 작곡하고 생을 마감했다. 슈베르트에 대한 글을 쓰며, 그에 대한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떠오르는 슈베르트에 대한 그림은 오스트리아의 겨울 칼바람에 움츠린 어깨, 코트 깃을 잔뜩 여민 채 거리를 방황하는 쉴 곳 없는 가난한 음악가의 모습이다.
연주자는 노래든 기악곡이든 자신의 감정을 실어 연주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연주자들 중에 왠지 모를 슬픔의 혼이 숨어있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슬픔이 담겨있는 목소리, 우수에 찬 슬픔의 소리를 내는 악기들, 이처럼 슈베르트의 음악에서도 아름다운 멜로디 속에서 그의 슬픔과 눈물이 느껴진다.
경쾌함 속에 숨어있는 외로움의 선율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긴장감 속에 터질 듯 터질 듯 터지지 않은 절제된 음악이 슈베르트의 짧고 가난해서 힘들었던 생을 안타까워하는 한 방울의 눈물을 떨구게 한다. 슈베르트에게 다가온 인생의 겨울이 너무도 빨라 많은 음악애호가들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음악의 형식과 구성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아름답고 순수함을 느끼게 해준 천재음악가의 영광을 슈베르트 자신이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4년 7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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