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대한뉴스]글 김병헌 기자 | 사진 BMW
항공기 엔진 제작으로 출발한 프리미엄 메이커
독일 특유의 장인 정신을 담아 ‘이 시대 최고의 명차’를 생산해온 프리미엄 메이커 BMW는 1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에서 항공기 엔진 제작회사로 출발했다. BMW의 엠블럼은 비행기의 프로펠러 형상과 바이에른주의 상징색인 파란색(하늘)과 흰색(눈)으로 이루어져 있다. 창업자 오토(Otto)는 이듬해 막스 프리츠(Max Friz) 등의 기술자를 영입, 회사이름을 BMW(Bayerishe Motoren Werke)로 정했다.
이들이 만든 엔진은 1차대전 중 독일 공군기인 조커, 하인켈 등에 쓰였다. 그러나 1차대전의 패망으로 더 이상 항공기 엔진을 만들 수 없게 된 BMW는 모터사이클 생산을 시작한다. 때마침 유럽에는 경제불황으로 모터사이클 붐이 일어 BMW의 새 사업은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22년에는 당시 모터사이클 경주를 석권하고 있던 영국의 트라이엄프를 제치고 유럽 모터사이클 경주를 제패한 패전한 독일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도 했다.
고비마다 히트 모델 내놓아 위기 극복
모터사이클의 성공을 발판으로 BMW는 1928년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우선 영국의 오스틴 세븐을 라이센스로 만들던 아이제나크사를 흡수해 3/15 딕시를 선보였고 1932년에는 고유모델로 827cc 20마력 엔진을 얹은 3/20을 내놓았다. 이듬해에는 베를린 모터쇼에 303을 출품했다. BMW 차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콩팥 모양의 키드니 그릴은 이때부터 쓰였다.
BMW는 1934년 1.5리터 엔진으로 시속 100km의 벽을 뚫은 315를 개발했고 이듬해에는 2.0리터 엔진으로 최고시속 115km를 기록한 319를 내놓았다. 319는 BMW의 첫 경주차이기도 하다. 1936년에는 6기통 2.0리터 80마력 엔진을 얹은 로드스터 328로 각종 레이스에서 우승을 휩쓸었다.
1939년에 일어난 제2차 세계대전으로 BMW는 또 한 번의 시련기를 맞게 되었다. 자동차생산을 중단하고 모터사이클만 생산하던 BMW는 종전 뒤에 해체 위기에까지 몰렸다. 하지만 2차대전 때 독일군 사이드카로 이름을 떨친 모터사이클 R75의 인기에 힘입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1951년 BMW는 전후 첫 모델로 6기통 엔진을 얹은 501을 발표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형차 붐에 발맞춰 56년 V8 엔진의 대형 로드스터 502, 503, 507도 차례로 선보였다. 507 로드스터는 미국 시장에서 차값만큼의 웃돈을 얹어주어야 살 수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유럽 전체가 불황이었고 고전적인 보디 스타일이 시대감각에 뒤진다는 평가를 받아 BMW의 고급차는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경영난에 빠진 1955년. 오토바이 엔진(단기통 245cc 12마력)을 얹은 이태리 라이센스 모델 이세타가 나왔다. ‘거품차’라는 애칭으로 불린 이세타는 300, 600, 700cc로 배기량을 키우면서 계속 생산되었지만 BMW의 경영난은 계속되어 벤츠와의 합병설까지 나돌았다. 다행히 1959년 헤르베르트 쿠완트가 대주주로 나서고 노동자와 소액투자가, 딜러들이 매각을 반대한 덕분에 BMW는 새 출발을 할 수 있었다.
1966년에는 생산기지를 본사가 있는 뮌헨에서 근교 딩골핀으로 넓혔고 1600의 2세대 모델 02 시리즈가 히트하면서 도약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이어 후속모델인 1600T1, 1802, 2002 등이 잇따라 성공하면서 BMW는 고성능 자동차메이커로 이미지를 굳혔다.
BMW는 뮌헨올림픽이 열리던 1972년에 5시리즈를 발표했다. 세 자리 숫자로 차체 크기와 엔진 배기량을 나타내는 BMW의 차 이름 표기방식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5시리즈는 BMW의 중심모델로 벤츠를 위협했다. ‘값어치 극대화'(value for money) 전력에 따라 만들어진 BMW의 새차는 상대적으로 싼값에 높은 품질과 고성능을 자랑했고 큰 인기를 얻었다.
1975년, BMW 라인업 가운데 기본이 되는 3시리즈가 나왔다. 뛰어난 고속주행 안정성과 경제성을 지닌 ‘고성능 컴팩트 세단’ 3시리즈는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넘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3시리즈는 라이벌인 벤츠가 부랴부랴 190E를 내놓을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듬해 제네바모터쇼에는 6시리즈가 등장했다. 벤츠 SL의 경쟁모델로 11년 동안 생산되며 미국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스포츠 쿠페 6시리즈는 1989년 8시리즈에 자리를 넘기게 된다. 1977년에는 BMW의 기함인 7시리즈가 데뷔했다. 87년 등장한 2세대 7시리즈는 독일에서 마이바흐 이후 50년 만에 V12 엔진을 등장시켰고 2002년 출시한 4세대는 ‘차와 인터넷을 결합한 꿈의 차’로 전 세계 프레스티지카 시장에 새바람을 몰고 왔다.
90년대 영국 최대의 자동차메이커 로버그룹을 인수하는 등 베른트 피세츠리더 회장 체제 아래서 몸집 불리기에 나섰던 BMW는 2000년 로버와 랜드로버를 다시 벤처 캐피탈 회사와 포드에 각각 넘겼다. 폭스바겐으로 자리를 옮긴 피세츠리더의 뒤를 이은 헬무트 판케 회장은 BMW와 미니, 롤스로이스로 전열을 재정비했다. 한편, BMW는 1995년 7월 수입차 업체 가운데 최초로 국내 법인인 BMW코리아를 설립했으며 한국에서 가장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시장 개척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1년 10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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