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대한뉴스]글 박현 기자 | 사진 연합뉴스
강인한 체력과 갈고 닦은 기량을 바탕으로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의 세계는 많은 사람들에게 무한한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관중들은 경기장에서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물론 그들이 흘리는 땀과 눈물에 흠뻑 젖어들어 하나가 되기도 한다. 특히 경기 중 멋진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에게는 환호와 응원의 함성을 아낌없이 보낸다.
이러한 스포츠 분야에서 신체적인 핸디캡, 즉 선천적 장애나 어린 시절의 사고 또는 선수생활 중의 병마나 치명적인 사고, 기타 신체적 불리함 등을 딛고 꿋꿋이 일어난 스타들이 있다. 이들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수많은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부단하게 노력해왔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이 있기에 스포츠는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다.
선천적 장애 딛고 일어서
선천적인 장애는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큰 불편을 초래한다. 더욱이 스포츠활동에는 엄청난 마이너스요소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혼신의 힘을 다해 이를 극복해낸 스포츠선수들이 있다.
우선 첫손으로 꼽을 수 있는 선수는 ‘의족 스프린터’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육상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6)다. 남아공 태생인 그는 두 다리 모두 종아리뼈가 없이 끝에 발가락 2개씩만 붙어 있는 장애아로 태어났다. 그는 의족이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부모의 결단으로 생후 11개월 만에 양 무릎 아래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이후 그는 걷거나 움직일 때면 줄곧 의족을 사용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넓은 운동장을 자유롭게 뛰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꿈은 실현됐다. 2004년 아테네장애인올림픽 육상 100m 달리기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2008년 베이징장애인올림픽 육상 100m, 200m, 400m 달리기에서도 역시 금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뤄냈다. 뿐만 아니라 지난 8월 대구육상세계선수권대회에도 참가, 비장애인 선수들과도 경합을 벌이며 전 세계의 육상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조막손 투수’ 짐 애보트(45)도 인간승리의 표본이다. 미국 미시간주 태생인 그는 오른쪽 손목 아래 손이 없는 대신 손가락이 한데 뭉쳐져 있는 상태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고교 시절 학교를 대표하는 좌완투수였으며 학교 미식축구팀을 주 대항 대회 우승으로 이끌었던 미식축구 쿼터백이기도 했다. 이어 야구국가대표팀의 에이스가 된 애보트는 1988년 서울올림픽 결승에서 역투, 미국이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비록 당시엔 야구가 시범종목이었지만 그 경기를 계기로 그의 조막손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게 됐다. 이후 그는 1989년 메이저리그에 진출, 10년간 통산 87승 108패, 방어율 4.25, 삼진 888개의 기록을 세웠다. 특히 1993년 9월 4일 뉴욕 양키스에서 뛰던 그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상대로 4-0 승리를 거두는 가운데 노히트 노런을 기록, 생애 최고의 장면을 연출했다.
유년시절의 비극 떨쳐내
누구든 아름답게 보내야 할 어린 시절에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리게 되면 많은 사람들의 동정을 받는다. 그런데 이를 떨쳐내고 정상의 자리에 오를 때 사람들의 동정은 감동으로 바뀐다.
재일동포 출신의 장 훈(72)은 일본 야구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입지전적인 선수다. 그는 1940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후진하는 트럭을 피하다가 옆에 있던 모닥불에 오른손을 짚어 화상을 입고 넷째 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이 들러붙는 사고를 당했다. 더구나 가난한 형편에 주위의 일본인들로부터 ‘조센징’이라 불리며 온갖 멸시와 냉대를 받는 등 재일동포에 대한 극심한 차별 속에 순탄치 않은 유년기를 겪었다.
그럼에도 왼손을 쓰며 중학생 시절 야구에 입문한 후 끊임없는 훈련 속에 놀라운 재능을 보이면서 1959년 프로야구단 도에이 플라이어즈에 입단했다. 이후 1981년 롯데 오리온스에서 은퇴할 때까지 23시즌을 뛰며 통산 2,752경기, 안타 3,085개, 타율 0.319, 홈런 504개, 타점 1,676점, 도루 319개의 경이적인 기록을 남겼다. 또한 16시즌에 타율 3할 이상을 기록했으며 타격왕 7회, 최고출루율 9회, 올스타 선정 18회라는 전인미답의 타이틀을 수상했다.
특히 3,085안타는 일본프로야구 사상 유일한 최다안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은퇴 후 그는 모국인 한국의 프로야구 탄생을 위해 힘을 쏟았으며 재일동포 출신 선수들을 진출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1990년 일본야구 명예의 전당에 사상 99번째로 가입,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브라질’하면 떠오르는 스포츠종목은 단연 축구다. 또 ‘축구’하면 바로 ‘축구황제’ 펠레를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펠레 못지않은 실력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며 브라질의 월드컵 우승에 견인차 역할을 한 선수가 있다. 바로 ‘드리블의 마술사’ 가린샤다. 그는 1933년 리우 데 자네이루 인근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심하게 앓았던 소아마비 때문에 그의 오른쪽 다리는 안으로 굽었으며 왼쪽 다리는 오른쪽 다리에 비해 6cm나 짧은 데다 바깥으로 휘었다. 다리 상태가 워낙 심각해 의사가 “보조장치 없이는 걸을 수 없을 것”이라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때로는 부드러운, 때로는 혹독한 어머니의 훈육 속에 축구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을 발휘하며 1955년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이후 그는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대회까지 A매치 총 54경기에 출전, 34골을 기록했다. 그중 1958년 스웨덴월드컵과 1962년 칠레월드컵에서 펠레와 함께 브라질의 2회 연속 우승을 이끈 주역으로 그 위상을 높였다.
특히 1962년 대회에서는 펠레가 조별 예선에서 입은 부상으로 남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자 가린샤는 팀을 이끌며 준결승과 결승에서 연속 2골씩을 기록, 우승과 함께 득점왕까지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무엇보다 그의 진가는 수비수의 타이밍을 빼앗는 드리블에 있었는데 그 이유는 기형적으로 생긴 두 다리에 있었다. 다리 자체가 일반 선수와 다르다 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템포로 공을 몰아 수비수가 방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정상에서 내려왔다 다시 정상을 향해
스포츠선수들은 정점을 찍은 후 서서히, 또는 빠르게 하강곡선을 그리며 팬들의 기억 속에서 차츰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중도에 예기치 않은 일로 선수생활을 포기하는 사례도 간혹 발생한다. 그러나 드물지만 몇몇 선수들은 정상의 자리에 있다가 뜻하지 않은 병마나 사고를 겪은 후에도 기적적으로 재기에 성공을 거두는 드라마틱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미국의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41)은 26세였던 1993년 세계사이클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독주를 예고했지만, 3년 후 고환암 판정과 함께 암세포가 뇌와 폐로 전이돼 2년의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는 치료를 위해 수술과 화학요법을 병행하며 이를 극복해냈다. 그 후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매년 3459.9km 대장정의 투르드프랑스 사이클대회에 참가해 연거푸 우승을 차지, 대회 7연패를 달성하며 세계 스포츠역사상 가장 극적인 기록을 달성했다. 대회 7연패 직후 그는 은퇴했다가 지난 2008년 현역으로 복귀, 이듬해 역시 투르드프랑스 사이클대회에서 3위에 올라 건재를 과시했다.
폭발적인 돌파력과 강력한 슈팅으로 전 세계 축구팬들을 사로잡았던 우루과이축구대표팀의 스트라이커 다리오 실바(40). 1994년 우루과이 국내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에도 참가, 국내 팬들에게도 낯이 익은 선수다. 이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와 영국 프리미어리그에도 진출, 성과를 높이고 있었다. 그러나 2006년 9월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친구들과 트럭을 타고 가다가 불의의 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고 그라운드를 떠나게 됐다. 그렇지만 그는 낙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축구인생 초기에 이런 시련을 겪지 않고 빛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니 신께 감사드린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후 2009년 1월 그는 자선축구경기에 의족을 달고 나와 페널티킥을 멋지게 성공시키는 장면을 연출해 수만 관중에게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나에게는 아직 두 팔이 있다”는 말과 함께 축구가 아닌 카누 선수로 제2의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도 출전하려는 굳센 의지를 밝힘과 동시에.
좌절, 실패를 겪는 사람들에게 귀감
장애나 질환은 아니지만 신체적 불리함을 뛰어넘어 정상급 스타로 성장한 선수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박지성(31)을 꼽을 수 있다. 그는 한국축구가 월드컵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후 네덜란드를 거쳐 지금은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축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한 그의 핸디캡은 다름 아닌 ‘평발’을 지니고 있다는 데 있다. 정상적인 발은 발바닥이 활처럼 휘어들어가 있는 아치 형태를 지니지만 평발은 그 아치가 내려앉아 편평해진 모양을 띈다.
이러한 평발을 갖고 있는 사람은 발바닥에 통증이 자주 발생하며 조금만 걸어도 쉽게 피로를 느끼고 장거리 보행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또 발의 스프링 역할이 잘 안 돼 달리기나 점프하는 행동이 부자연스럽고 민첩하지 못하다. 그런데도 그는 이를 지속적인 훈련과 노력으로 극복, 오늘도 한국 축구의 한 획을 긋고 있다.
그 무엇보다도 경쟁이 치열한 스포츠의 세계에서 신체적 핸디캡을 딛고 일어선 스타들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져준다. 좌절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또 그것으로 인해 주저앉기보다는 기나긴 인생에 쓴 약과 같은 존재로 삼으라고. 그리고 세상의 중심에 한 걸음 다가서라고 말이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1년 12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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