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대한뉴스] 글 사진 김채환 여행전문가
경사지게 만든 루클라 공항의 활주로
에베레스트 트레킹은 루클라(Lukla 해발 2,840m) 텐징-힐러리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시작된다. 18인승 프롭 경비행기의 트랩을 내려오자마자 안개 끼고 정신없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와 달리 햇볕이 강하게 내려쬐고,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가 상쾌한 맛을 준다. 이 공항은 활주로가 12도 경사져서 착륙 때는 오르막이 되어 활주거리를 짧게 만든 것이 독특하다. 이륙하는 비행기들은 활주로를 달리기 전에 프로펠러를 최대 출력으로 돌아갈 때까지 제동을 걸었다가, 최대로 돌아간다 싶으면 그 순간 제동장치를 풀고 순식간에 내리막 활주로를 달려 산 사이로 한 마리의 잠자리처럼 날아간다. 공항시설이라고 해봐야 우리나라 시골 버스정류장 수준의 분위기다.
이곳은 포터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셰르파(Sherpas)족의 터전이다. 카트만두에서 예약을 하여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포터를 만나 배낭을 넘겨주고 에베레스트 트레킹 첫걸음을 시작한다. 루클라 공항 근처 마을의 길가에는 등산용품점과 로지(lodge)들이 늘어서 있다.
점심을 먹고 위쪽 팍딩(Phakding)을 향해 숲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고산지대에서는 천천히 움직이고, 하루에 500m 정도의 고도를 올라가야 무리가 없다. 본격적으로 산길로 들어서면 왼쪽으로는 두드코시(Dudh koshi) 강이 나타난다. 이는 ‘우유 빛의 강’이라는 뜻으로, 물이 계곡의 바위에 부딪쳐서 흰 포말이 우유빛깔을 띄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출렁대는 쇠줄다리도 건너는데 처음에는 흥미롭지만 나중에는 여러 번 건너게 되니 이것도 둔감해진다. 좁은 산길에는 얼굴이 검게 탄 현지 짐꾼들도 가쁜 숨을 내쉬고, 짐을 운반하는 야크도 딸랑 딸랑 소리를 내며 올라간다(사실은 4,000m 위에 사는 야크가 아니라 물소와의 교배종인 좁교). 수백 미터 낭떠러지의 좁은 길에서 마주치면 산 쪽으로 붙어서 비켜주는 것이 안전하다.
히말라야의 산속에는 해가 일찍 저물어 5시면 깜깜해지고 기온이 뚝 떨어진다. 네팔 산속 로지에서의 첫날 밤. 듣던 바대로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전기불이 꺼졌다 켜졌다 한다. 거실과 주방을 겸하는 다목적 식당에는 난로가 있어서 훈훈하기는 한데 공기가 너무 탁해서 9시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네팔과 티베트를 이어주던 남체 바자르
계란 두 개와 토스트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친 후 몬조(Monjo)를 거쳐 조르살레(Jorsale)로 가는 길은 가벼운 오르막길이다. 우리나라의 산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머리를 들어 높은 곳을 바라보면 하얀 눈을 이고 있는 설산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이런 경치를 보기 위해 힘들여 히말라야로 오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이곳 입구에 체크 포인트가 있어서 입산료를 내고 등산허가를 받아야 한다.
남체(Namche 3,440m)는 쿰부 히말라야 지역 등반과 트레킹의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제법 큰 마을이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티베트 지역과 히말라야 산간지역의 교역 중심지이었으나 지금은 관광숙박업으로 기능이 변하였다. 빵집과 레스토랑, 트레킹 용품가게 등의 상점과 소박하다 못해 허접하지만 나이트클럽, 당구장 등 상업 오락시설도 있다. 내려오는 길에도 들르게 되어 트레커들에겐 매우 익숙하고 정겨운 마을이다.
남체 바자르에서는 매주 토요일에 장(Saturday Market)이 서는데 과거에는 티베트사람들이 히말라야를 넘어 와서 여기에서 물건을 팔고 다시 넘어갔다고 한다. 지금은 고산족 사람들이 운동화, 전자제품 등의 생필품을 사가고, 산에서 닭이나 야크치즈 등 농산물들을 가지고 내려와서 판다. 고지대의 산골 마을이어서 아침의 일출은 조금 늦은 편이다. 동네에서는 까마귀가 울고, 날은 밝았는데 산에는 아직 달이 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루클라에서 인상적으로 눈앞에 보이던 콩데리(Kongde Ri·5802m) 봉우리는 더욱 가까이에 우뚝 솟아 있다.
남체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어슬렁거리게 된다. 고소적응을 위해 이틀 정도 그저 먹고, 자고, 쉬는 것만 한다. 쿰중마을(3,890m)에는 약 1,000명이 살고 있는데 에베레스트를 첫 등정한 전설적인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가 50여 년 전에 세운 학교도 있다. 이곳의 아이들은 그나마 다른 지역보다 많은 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꿈을 키우고 있다. 마을길에는 단순한 돌들이 아니라 티베트 경전을 새겨놓은 마니석으로 중앙분리대를 만들어 놓은 곳이 많다.
남체에서는 ‘에베레스트 뷰 호텔’(3,860m)이 있는데 일본계 자본과 합자해 세워진 5성급의 비싼 호텔이다. 시설은 허름하지만 테라스 카페의 전망은 일품이다. 왼쪽은 따우체(Tawoche 6,542m), 정면은 눕체(Nuptse 7,864m), 에베레스트(8,850m), 오른쪽으로는 로체(Lhotse 8,501m) 등 흰 눈을 이고 있는 히말라야의 연봉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오후 늦게 찾아간 국립공원 박물관, 히말라야에 사는 동식물들의 먼지 쌓인 사진들을 전시해 놓았는데 5분 정도면 다 볼 수 있다. 박물관의 마당에는 탐 세르쿠 봉과 아마 다블람을 배경으로 퇴색된 파고다가 서 있다. 그 옆에는 히말라야의 거친 풍상에 의해 거의 해체가 된 헬리콥터 한 대가 널브러져 있다.
옆에는 호텔이 있고 같은 건물의 한 부분에 히말라야 등반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관이 있다. 이 셰르파 뮤지움에는 500여 년 전 티베트에서 이주했다는 셰르파족의 풍물을 전시해 놓았다. 실내전시관이 어두침침하여 제대로 전시물을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석양의 붉은 놀에 물든 설산을 보며 밀크티 한잔…
남체에서 하루거리인 텡보체(Tengboche 3,860m)로 가는 길에는 에베레스트 등정 50주년을 맞아 스위스 제네바 롤렉스의 지원으로 텐징 노르게이 세르파를 기념하여 텐지의 큰 딸 등이 세운 스투파가 서있다. 점심을 먹은 푼기텐가(Phunki Tenga 3,250m) 마을을 지나면 600m 고도의 급격한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산길을 지나 텡보체 입구 문을 통과해 들어서면 이런 높은 곳에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넓은 평원이 순식간에 펼쳐진다. 텡보체는 산마루에 위치하고 있는데 쿰부계곡 최대의 사원과 몇 개의 로지가 있는 마을이다.
사원의 입구 양쪽에 있는 커다란 마니차는 한 바퀴 돌때마다 종소리가 울린다. 오후 3시 무렵 두 명의 어린 승려가 소라 모양의 나팔을 부니 승려들이 법당으로 모여든다. 험준한 산골의 사원이지만 내부는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승려가 처음엔 비디오를 못 찍게 하였으나 불전에 시주를 하고 공손하게 절을 하는 모습이 마음을 움직였는지 촬영을 허락하였다. 법당에는 4m 가까운 커다란 석가모니불이 위엄 있는 자세로 있다.
전설에 의하면 사원을 만든 라마 상제 도르제는 히말라야를 날아와 팡보체와 텡보체의 바위 위에 내렸는데 그 때 내린 발자국이 남아 있다고 한다. 곰빠에 있는 학교에서는 겨울엔 15명 여름엔 40명 정도의 젊은 승려들이 종교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1989년 1월 화재가 일어나 절을 다 태웠지만 많은 경전, 탱화, 기타 종교적 성물은 모두 무사히 옮겼다. 붉은색 벽돌로 다시 지었지만 중후한 분위기와 차분함이 여전히 매력적이다. 평원 위에서 아래를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는 화려한 티벳 절과 조그맣고 귀여워 보이는 여러 로지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들, 텡보체는 정말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특히 저녁 무렵 하루의 고된 등정을 마치고, 석양에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흰 눈 덮인 설산의 찬란한 색깔을 보며 낡은 나무의자에 앉아 마시는 한잔의 따끈한 밀크티의 맛은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반면에 로지에는 난방시설이 없어서 침낭 하나로 히말라야의 긴 밤을 보내야 된다. 춥기 때문에 뜨거운 물을 천커버의 물병에 담아 침낭 속에 넣으면 그나마 훈훈하게 잠을 잘 수 있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별이 쏟아지는 듯하다.
며칠 사이에 요령이 생겨서, 포터를 로지식당으로 먼저 올려 보내 라면을 끓여놓도록 했다. 이곳에서는 화력이 약해서인지 식사는 주문 후 거의 한 시간이 지나야 먹을 수 있다. 손과 발끝이 저리다. 기압이 낮고 공기가 희박하여 신체 끝부분까지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생기는 고산증상이 나타난다.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는 설산들의 향연
로부체(Lobuche 4,940m)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두꺼운 옷을 껴입고 깜깜한 밤길을 헤드랜턴에 의지하여 마지막 로지가 있는 고락셉(Gorak Shep 5,140m)을 거쳐 칼라파타르(Kala Pathar, 5,545m)로 향한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에베레스트의 전망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이런 정도의 수고쯤은 감내해야 되겠지. 칼라파타르는 푸모리 봉(Pumo Ri 7,165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나온 작은 능선이다. 봉우리는 아니고 능선의 경사 변환점으로 ‘검은 바위’란 뜻이다. 일반인들이 올라가는 트레킹의 최종 목적지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유명한 곳이다.
황량한 자갈과 바위로 이루어진 돌길의 급경사를 오르니 서서히 등 뒤로부터 동이 트며 아침 햇살을 받은 설산들이 붉은 광채를 내뿜는다. 지금까지 내가 올랐던 최고 높이를 경신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꼭대기는 좁은 공간인 데다가 산소부족으로 어지럽고 바람이 세차게 몰아쳐서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도 쉽지가 않다.
그래도 주변 산군들과 어우러진 설경은 여기까지 오기 위한 그 동안의 고생을 한방에 다 해소시켜주기에 충분하다. 정면에는 흰 눈을 이고 있는 푸모리가 산신마냥 버티고 있다.
세계 4위봉 로체(Lhotse 8,511m) 동쪽으로 ‘눕체'(Nuptse 7,879m)를 포함한 주변의 모든 봉우리들은 모두가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에베레스트는 오히려 눈을 많이 품지 않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많은 트레커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대자연이 빚어놓은 이 코발트빛 하늘을 배경으로 빛나는 설산의 향연을 가슴에 담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산 길에는 마침 푸자 날이라 스님의 축복도 잠시 받았는데 이 축복은 루크라 로지의 3시간여 계속된 푸자 의식에서 스님 7명으로부터 받은 축복과 함께 히말라야와 에베레스트의 축복으로 평생 잊지 못할 마음의 등불로 남겨둔다.
본 기사의 전문은 대한뉴스 2014년 4월호(www.daehannews.kr)에 자세히 나와 있으며
교보문고, 영풍문고, MBC(내), 반디앤 루니스, 테크노 마트 프라임 문고를 비롯
전국 지사 및 지국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 보기 쉬운 뉴스 인터넷대한뉴스(www.idhn.co.kr) -
- 저작권자 인터넷대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