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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일반

아름다운 결혼식 - 두 예술가의 만남

21C 본이 되는, 삶속에 예술을 승화시킨 젊은 두 작가의 아름다운 결혼식

김덕호 도밍고와 이인화 카타리나

작가는 흔히들 자기만의 세계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김덕호와 이인화 작가는 작품에서는 물론 실생활인 결혼식에서 작가로서의 세계를 표현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만나 5년간의 열애 끝에, 예술가인 두 사람이 만나 새 출발을 하는 성스러운 자리를 그들만의 색깔로 그려냈다.

글 김윤옥

   
 

▲ 많은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결혼식의 주인공인 맑은 영혼의 두 예술가, 신부 이인화와 신랑 김덕호

 

   
 

2014년 8월 30일 오전 11시 천주교 수원교구 오전동 성당, 흰 블라우스에 회색바지 검은색 단화차림의 평상복에 들꽃을 그저 묶어 아무런 장식 없이 부케로 소박하게 들고 있는 사람이 신부였다. 신랑은 신부와 같은 흰색 난방에 검은색 바지차림, 성당 앞자리 몇 줄만 사람이 앉아 있고 나머지 자리에는 천사들이 앉아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당당함과 행복에 겨운 얼굴의 신부와 그녀를 맞이하는 신랑의 모습은 일반적인 결혼문화에 젖어 있는 기자의 눈에는 충격이자 그들의 신선함이 신성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신랑과 신부는 만족하며 그들만의 예식을 즐기는 동안 도리어 혼배성사 겸 결혼식을 주재하는 젊은 신부님은 이런 결혼식은 처음 접해본다며 성당에서의 혼배 절차만을 끝낸 채 행복하게 잘 살라는 덕담을 남기고는 총총히 떠났다.

- 어떻게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지요

“저와 아내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도예전공 학부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제가 군대 제대 후, 학교에 복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원생이었던 아내를 알게 되었고, 열심히 작업하던 모습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1년 정도 지나 작업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게 되고 서로의 일을 도와주며,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다보니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에 제가 석사를 졸업하면서 일공공작업실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작가로서 대학교에 강의를 나가는 강사로서, 경제적·사회적으로 안정됨에 따라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 결혼식을 이렇게 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저 김덕호와 배우자가 된 이인화는 백자를 만드는 공예가입니다. 물질의 대중화가 이루어진 현대사회에서 공예가의 수는 줄어들었고, 공예의 가치를 아는 이들도 많지 않습니다. 저희는 공예가로서 숙련된 기술을 바탕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도 노력하지만, 무언가 실재하는 것을 만드는 공예가의 삶은 어떠하여야 하는가도 함께 고민합니다. 공예적 삶을 살아가는 작가가 되어야 저희가 만든 좋은 공예품들이 사회적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직접 무언가를 만들 때, 다른 이가 만든 물건을 살 때, 오래된 물건이 낡거나 고장 났을 때,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여야 할 때 등 어떻게 보면 별일 아닌 일들에 대해 고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부부가 되기 위해 결혼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화려하고 큰 예식장에서 하는 결혼식은 실용적이지 않으며, 실용에 기반 한 실재하는 것을 만드는 사람인 저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 결혼식 준비는 어떻게 했어요

“저희 둘은 5년이란 짧지 않은 연애기간이 있었습니다. 결혼을 결심한 뒤, 양가부모님께 결혼식에 대한 저희의 생각을 이야기하였고, 양가 어르신들 역시 이러한 생각을 존중하여 주셨습니다. 양가 모두 오래된 천주교집안이었기에 우선 혼인교리를 받았으며, 약식으로 하는 혼배성사를 할 수 있는 성당을 찾아보았습니다. 다행히 저의 조부모님이 다니시는 오전동 성당의 신부님께서 흔쾌히 응해주셨고, 이렇게 가족들만 모시고 소박한 혼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잘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결혼식은 저희들 힘으로 하고 싶었습니다. 저희 형편대로 손님은 양가 합쳐 30명으로 정하고 그에 맞추어 초청했습니다. 피로연은 둘이 여기저기 다니며 양가 어른들이 자연스레 인사하며 가까워질 수 있는 조용하고 경치 좋은 한정식집으로 정했습니다.”

- 결혼선물은

“결혼반지는 독일의 금속작가인 카우프만 부부의 작품입니다. 그 공예가 부부는 서울대학교 도예전공 황갑순 교수님과 절친한 지인으로, 저와 인화 둘 다 그들의 작품을 꼭 소장하고 싶었고, 예단, 예물 등을 생략하고 결혼을 준비하면서 그들의 작품 중 하나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결혼식에 착용한 브로치는 제가 구운 흰색도자기에 작은 진주를 심고 금속작가인 엄세희의 협업 작품으로 두 개를 만들어 한 개는 오래전 제가 아내에게 선물한 것입니다. 두 개를 만들며 결혼식 의상에 같이 다는 꿈을 꾸었는데 오늘 이루었습니다.

- 두 사람의 해외전시회가 있었다면서요

“네, 2013년 도쿄 루비 갤러리에서‘김덕호이인화 이인전’을 했습니다. 세라믹을 소재로 생활자기를 전시했는데요 전시회 기간 동안 반응이 좋아 갤러리에서는 저희 둘의 작품을 계속 진열해 놓았답니다. 몇 번을 구경만 하며 작품을 보고 간 일본 주부가 하루는 오더니 남아있는 작품을 다 가져갔답니다. 지금도 꾸준히 주문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저희들의 작품이 인정을 받은 첫 해외전시회라 더 기쁩니다.

취재후기

신랑 김덕호는 남양성지를 발굴하고 개간한 박지환 신부님의 조카다. 박 신부님은 당뇨로 당신의 발이 썩어 들어가면서도 자신의 치료보다는 아픈 신도들을 위해 가가호호 방문하시며 신부님으로서 노을이 다할 때까지 당신의 본분을 다하신 분이다. 그런 유전자가 흘러 작가로서의 남다른 고뇌가, 결혼이라는 사회적 약속의 획일적인 틀을 벗어나 두 공예가의 예와 실용이 중시된 아름다운 결혼공예작품을 탄생시킨 것은 아닌지… 요즘 인사 한 번 하고 나면 결혼청첩장을 돌리고 부모에게 눈도장 찍기 위해 결혼식장을 찾는 이들이 많다. 이런 결혼세태에서 두 사람의 진정한 결혼의 의미를 살리는 횡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랑 김덕호의 할아버지는 서울대 약학과를 나오신 그 지역의 유지다. 집안의 장손주가 혼배성사로 결혼식을 대신하고 하객을 초청 안 하니 처음에는 많이 아쉬워했지만 두 사람의 뜻을 이해하고는 대견해 하셨단다. 이 날의 결혼식은 삶에서 무엇이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아는 이 시대의 젊은 현자, 맑은 영혼의 두 공예가가 만들어 낸 걸작품이었다.

   

▲ 도쿄 루비 갤러리 전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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