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6 (목)

  • 맑음동두천 5.6℃
  • 흐림강릉 8.9℃
  • 맑음서울 6.9℃
  • 구름조금대전 7.4℃
  • 대구 9.2℃
  • 흐림울산 9.2℃
  • 맑음광주 10.2℃
  • 흐림부산 10.5℃
  • 맑음고창 ℃
  • 맑음제주 15.5℃
  • 맑음강화 8.3℃
  • 흐림보은 7.8℃
  • 구름조금금산 7.9℃
  • 맑음강진군 11.7℃
  • 흐림경주시 8.8℃
  • 구름많음거제 11.5℃
기상청 제공
월간구독신청

공연/전시/도서

백건우, 연륜 묻어나는 터치로 좌중 압도

러시아 작곡가 스크랴빈, 라흐마니노프와 함께한 날

9월 23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이 열렸다. 이날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1990년 즈음 예술의전당에서 라흐마니노프 연습곡 발췌와 스크랴빈 소나타 6번을 연주한 이후 25년 만에 다시 국내에서 연주를 선보였다.
 
대한뉴스 10월호 내지 출력용1.jpg
 
흔히들 싸우면서 큰다고 말한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라이벌 스크랴빈(1872~1915)과 라흐마니노프(1873 ~1943)가 그런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같은 선생님에게 수학하기도 한 이 두 작곡가를 살펴보는 일은 아주 흥미롭다. 스크랴빈은 생전에 피아니스트로 잘 알려졌었고, 사후에는 작곡가로 더 유명해졌다. 반대로 라흐마니노프는 생전에 작곡가로 더 유명했다. 스크랴빈이 살아있을 때는 잘 지내지 못하다가 그가 죽고 나자 공연 때마다 스크랴빈의 곡을 연주함으로써 작곡가로 재평가받을 수 있게 했다.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의 프로그램을 본 순간‘아, 이게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다.‘당대 러시아 라이벌 작곡가의, 그것도 대표곡이 아닌 곡으로 구성한 이유가 뭘까?’ 라는 궁금증이 빨리 공연을 보고 싶다는 조바심이 들게 했다.
 
2층 좌석만 몇 개 비었을 뿐 거의 만석에 가까운 관객들이 연주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내 아나운서의‘스크랴빈 24개 전주곡’순서를 연주자가 변경했다는 설명과 함께 곧 1부의 막이 올랐다. 말끔한 차림 보다는 수수한 차림새라고 할까? 연주자에게서 긴장감보다는 편안함을 먼저 떠올릴 수 있었다. 스크랴빈의 24개 전주곡은 1~3분정도의 짧은 곡들로 소나타처럼 뭔가를 느끼고 떠올리기가 어려워 감흥을 받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백건우씨는 마치 한곡의 곡을 연주하는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흐름을 주어‘스크랴빈의 24개 전주곡’이 아닌‘백건우의 24개 전주곡’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부드럽지만 강렬한 터치, 그리고 선명하게 들리는 주제들은 마치 피아노를 치는 손이 하나 더 있는듯한 느낌을 주었다. 2부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소나타 1번이 연주되었다.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2번보다는 조금 생소했다. 독일의 작가 괴테의‘파우스트’를 모티브로 1악장은 파우스트, 2악장은 그레첸, 마지막 3악장은 메피스토펠레스의 성격을 보여준다.
 
1악장이 끝나고 2악장의 느린 템포는 늘어지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운 터치는 서정성을 충분히 드러냈고 섬세한 페달링이 인상적이었다. 3악장은 진정 좌중을 압도하는 화려하고 격렬한 연주로 나이를 느낄 수 없는 파워를 보여주었다.
 
우뢰와 같은 박수와 반복되는 커튼콜로 앵콜곡이 시작되었다. 흐르는듯한 왼손의 아르페지오가 인상적인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 op32-5를 연주했다. 마지막 감흥을 느끼고 있는 그 찰나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아쉬움을 남겼다.
 
삶의 연륜에서 묻어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욕심없는 연주가 관객들로 하여금 클래식 음악의 편안함을 들려줬다. 음악이란 작곡가가 누구인가보다 연주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그 곡이 가슴에 남을 수도 있고 듣고 흘려버릴 수도 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연주였다. 성악가들이 노래를 끝낼 때 끝까지 음의 피치를 놓치지 않으려 호흡을 잡고 여운을 두는 것처럼 곡이 끝날 때 마다 그의 손에 남아있는 음들을 한번 더 감아올려 들어올리는 듯한 마무리의 손길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since 1995 대한뉴스 홈페이지 http://www.daehannews.kr에서 더 많은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