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의 중심부에 케른트너거리가 있는데 이 거리에는 빈 국립음대, 빈 시립음대가 있고 길 건너에는 오페라하우스가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강남이나 홍대 등지에 가면 흔히 유명 연예인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이곳에서는 유명한 음악가들을 볼 수 있다. 1990년 초 기자가 빈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작년에 타계한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아름다운 여자와 산책하는 것을 종종 본 적이 있다. 바로 소련에서 망명한 바이올리니스트 빅토리아 뮬로바다. 기자와 바로 한블럭 옆에 살았던 그녀가 한국에서 BBC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만을 기다렸다.

10월 21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스페인 출신의 지휘자 후안호 메나가 이끈 BBC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있었다. 음악회 시작을 알리며 연주되는 곡과 연주자에 대한 간단한 안내가 있었다. 1부의 구성은 브리튼의 심플 심포니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2부는 슈베르트의 9번 교향곡이었다.
다부진 모습의 지휘자 후안호 메나의 모습이 보이며 40여명의 현으로만 연주되는‘심플심포니’가 시작됐다. 천재적인 작곡가로 주목받던 브리튼이 런던 왕립학교를 졸업하며 작곡한 총 4악장으로 구성된 곡이다. 이 곡의 2악장은 모든 현이 활을 쓰지 않고 손가락으로 줄을 튕기는 피치카토주법을 사용하는 것이 매우 인상적인 곡이다.

‘심플심포니’가 끝나고 20여명의 관악파트를 포함한 오케스트라 단원이 추가되며 훤칠한 키의 빅토리아 뮬로바가 무대로 걸어 나왔다. 빅토리아 뮬로바가 20대 초반에 녹음한 시벨리우스 협주곡 음반만 듣던 기자는 30여년 후의 연주가 무척 궁금했다. 너무나도 무난하고 편안한 연주였다. 다만 3악장에서 오케스트라와 호흡이 조금 아쉬웠지만 잘 넘어갔고 50대 중반의 뮬로바는 30여년 전의 거침없는 연주와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앵콜곡으로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는 협주곡에서는 볼 수 없는 안정된 호흡과 프레이즈의 완성도를 통해 연륜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이 곡으로 요즘 뮬로바가 바흐에 심취했다는 소문이 사실임을 짧은 시간에 확실히 보여줬다.
2부는 기자가 너무나 좋아하는 슈베르트의 9번 ‘더 그레이트’로 시작됐다. 두 대의 호른이 주제를 연주하고 전 곡에서 들리는 주제는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든 슈베르트의 작품임을 알려줬다. 이곡은 슈베르트가 죽은 뒤 10년후에 초연된 곡이다. 슈만이 빈에서 슈베르트의 형을 통해 이 곡의 악보를 전달받았고, 독일로 와 친구인 멘델스존에게 지휘를 맡겨 초연된 것이다. 이렇게 이 곡은 슈만이 아니었다면 묻혀버릴 곡이었다. 50여분의 긴 곡이지만 4악장 마지막에 제1주제가 되풀이 되며 금관과 목관, 모든 현이 하나가 되어 장대하게 끝을 맺는다. 끊이지 않는 박수에 발레음악인 알베니스의 ‘마법의 오팔’을 앵콜곡으로 스페인의 향기를 보여줬다.
거의 만석에 가까운 관객의 떠나갈듯한 박수소리가 지휘자 후안호 메나의 한국에서의 성공적인 데뷔무대였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정열적이고 리드미컬한 몸짓의 지휘와 오케스트라단원들에게 모든 관객의 박수를 돌리는 그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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