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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巨山 故 김영삼 전 대통령 현충원 영면

함박눈 속 국가장 영결식, 7천여명 참석

3.jpg▲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 영결식에 부인 손명순 여사와 아들 현철 씨 등 유가족과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이 생전영상을 보고 있다.앞줄 왼쪽부터 장녀 혜영 씨, 차남 현철 씨, 장남 은철 씨, 부인 손명순 여사,황교안 총리, 이명박 전 대통령.
 
평생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온몸을 던졌던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국립현충원 안장을 끝으로 영면에 들었다. 巨山 김 전 대통령은 22일 0시 22분경 폐혈증과 급성심부전으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향년 88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26일 오후 2시김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도착해 1시간 20분간 영결식이 국가장으로 엄수됐다.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국가장으로 치러진 김전 대통령의 영결식에는 장례위원장인 황교안 국무총리를 비롯해 국가 주요 인사, 각계 대표, 주한 외국대사 등 7천여명의 조문객이 참석했다. 지난 7박 10일다자외교 강행군 여파로 피로누적과 감기몸살로 인해박근혜 대통령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다시 찾아 영정이 국회의사당으로 출발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는것으로 대신했다.
 
손명순 여사와 현철씨 등 유족들은 행사장 앞쪽에서 영정 사진과 운구차의 의사당 진입을 지켜보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영결식장 맨 앞자리에는 유족들외에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부인 권양숙 여사, 장례위원장인 황교안 국무총리, 정의화 국회의장을 비롯한 3부 요인과 정부측 장례위원 2,222명, 주한외교단 및 조문사절 80여명, 유가족 관련 인사 100여명, 각계인사 등 7천여명 규모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불참했다. 김동건 전 KBS 아나운서의사회로 영결식은 국기에 대한 경례, 묵념, 약력 보고,조사, 추도사 낭독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1954년 국회의원에 당선,헌정사상 최연소, 최다선(9선)이라는 기록을 남긴 김전 대통령의 약력을 발표했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황교안 국무총리는 조사에서도 “대도무문의 정치 철학과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우리 국민과 더불어 민주화의 길을 걸으셨다” 며, 금융실명제 도입과군내 사조직 개혁, 공직자 재산공개, 일제잔재 청산 등고인의 업적을 나열하며 그의 삶을 기렸다. 이어 “대통령님이 염원하셨던 평화롭고 자유롭고 번영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오늘의 우리들이 해야 할 몫” 이라며, “이념과 종교, 지역과 계층의 모든 차이를 뛰어넘어 통합의 시대를 열겠다.” 고 강조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추도사에서 군사독재정권 시절 집요한 회유를 받으면서도 “핍박 받는 국민들을 남겨두고, 나 혼자 편하자고 고난의 현장을 떠날 수는 없다.” 며, “대통령님은 한결 같은 마음으로,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을 섬겨 오신, 진정한 문민정치가” 였다고회고했다. 김 전 의장은 “초산테러, 가택연금, 국회의원직 제명 등의 혹독한 탄압이 간단없이 자행됐지만,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기보다, 잠시 죽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겠다는 대통령님의 숭고한의지를 꺾지 못했다. 특히 1983年, 군부독재에 맞서목숨 걸고 결행한 23일간의 단식투쟁은 민주화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고 말했다.

4.jpg▲ 김영삼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광장을 지나 국가장 영결식이 엄수되는 국회로 향하고 있다.
 
추도사가 끝난 뒤에는 기독교, 불교, 천주교, 원불교의 종교의식이 행해졌고, 고인의 업적이 담긴 5분 분량의 영상도 상영됐다. 영상 상영이 끝난 후 헌화와 분향이 시작됐고, 직계 가족을 시작으로 황 국무총리, 정의화 국회의장, 양승태 대법원장 등 5부 요인과 주요내빈들까지 이어졌다. 이어진 추모공연에서는 바리톤고성현 한양대학교 교수가 고인이 평소 가족모임 등에서 즐겨부르던‘청산에 살리라’를 불렀다. 3군 조총대의 조총 발사를 끝으로 사회자가 폐회를 알렸다.김 전 대통령이 안장된 곳은 영원한 정적이자 동지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묘역에서 불과 300m 떨어진곳에 위치한다.
 
김 전 대통령은 1954년 국회의원에 최연소 당선된후 40대 기수론을 주창하며 한국 정치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었으나, 신군부의 탄압으로 인해 두 차례 가택연금 당하다 1983년에는 23일간 단식투쟁으로 민주화 운동의 신호탄을 알렸고, 6월 항쟁에서 대통령직선제를 이끌어 낸 중심에 있었다. 이후 3당 합당을통해 14대 대통령에 당선돼 하나회 해체, 지방자치 전면 실시,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공직자재산공개,5·18 특별법 제정 등의 성과를 남겼다. 김 전 대통령이 떠난 이 날만큼은 정쟁도 갈등도 없이 고인이 남긴 유지대로‘화합과 통합’의 메시지가 온 나라에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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