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단어 아이(Kid)와 어른(Adult)이 만나 탄생한 ‘키덜트(Kidult)’,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만화 속 주인공이나 영웅들을 통해 일상을 잠시 잊고 추억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에 추억 속 캐릭터들이 여러 산업제품과 만나 시너지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달 ‘월리를 찾아라’ 테마로 매장 인테리어를 꾸몄고 롯데월드몰은 스누피 65주년 행사를 개최했다. 패션…뷰티업계도 캐릭터 사용에 적극적이다. 삼성물산 에잇세컨즈는 ‘에잇몬과 친구들’을 적용한 봄시즌 상품을 내놨고 아모레퍼시픽 라네즈옴므는 어벤저스 화장품을 출시했다. 캐릭터 마케팅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배경에는 소비자인 ‘키덜트족’이, 강력한 구매계층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한국 캐릭터산업 시장규모는 미국시장의 14조원 대비 약 1/20로 걸음마 상태다. 그러나 2014년 5천억원대를 돌파하고 곧 1조원에 달할 정도로 빠른 성장을 이루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외국문화의 유입제한이 해제되면서, 어른이 된 아이들은 문화국경 없이 어릴 때의 없애지 못한 욕망을 장난감 등을 구매하면서 해소하게 되고, 이를 누리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형성되면서 단순히 물건을 소유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는 취미까지로 확산되고 있다.
‘레고문화’ 신조어를 만들어낸 레고와 프라모델
90년대 초 레고를 가지고 노는 친구가 있다면 ‘부잣집 도련님’이라 불릴 정도로 레고가격은 만만치 않았다. 과거 레고를 눈으로만 담았던 일부 아이들은 성년이 되어 보상심리로 레고조립을 하기 시작했다. 레고는 이제는 아이들의 전용장난감이 아닌 어른들의 향수 속 취미가 됐고 ‘레고문화’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냈다. 레고그룹은 다양한 레고시리즈를 출시해 소비자의 기대에 호응했다. 높은 수준의 집중력을 요하는 청소년 이상의 나이에 적합한 ‘레고테크닉’은 장난감과 과학을 결합해 진보된 테마를 만들었고 스타워즈나 배트맨, 해리포터 등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주제로 한 제품들도 생산됐다. 최고로 인기가 많았던 테마는 스타워즈로 등장인물과 전투기, 우주비행선 등 많은 캐릭터와 배경장치들이 제작됐었다. 레고제품으로 투자하는 사례도 있다. 보관상태가 좋은 레고는 연평균 12%로 믿지 못할 수익률을 기록했다. 부동산 시리즈로 불리는 모듈러의 경우 투자가치가 특히 높다. 2007년 출시된 ‘카페코너’는 89파운드(15만원)에서 2096파운드(365만원)로 20배 넘게 뛰었다. 일명 ‘레테크’(레고+재테크)라 불리는데 레고는 전 세계적으로 마니아층이 두텁고 한 번 출시된 제품은 단종되기 때문이다. 키덜트족을 위한 조립완구는 레고뿐만이 아니다. 프라모델이라 불리는 플라스틱모델은 사물을 일정비율로 축소한 제품과 건담 프라모델 제품으로 나뉘는데, 대부분의 제품이 조립과 도색이 필요하며 완성품이 실제와 가까울수록 가치를 인정받는다. 프라모델은 키덜트의 가장 오래된 대표적인 상품이다.
새로운 하늘길을 여는 ‘드론’
드론은 군사용에서 민간용으로 확산되면서 어른들의 고급 장난감으로 탈바꿈했다.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이 장애물을 피해 가며 빠른 속도로 다른 경쟁 드론을 앞지르는 모습은 실제로 비행하는 것 같은 스릴을 준다. FPV 드론이다. 프로펠러가 달린 헬리콥터 형태로 다른 드론보다 조종이 상대적으로 쉬운 장점이 있지만 레이싱을 즐기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다양한 드론들이 대거 출시되면서 이미 1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취미로 드론을 조종하고 있다. 드론과 드론레이싱에 대한 국내 관심이 커지면서 2015년 부산 벡스코에서 ‘드론쇼코리아’ 드론레이싱 대회가 개최됐다. 짧은 시간 안에 시장수요는 확대됐지만 레이싱이나 조종을 즐길 여건은 아직 좋지 않다. 크기와 무게를 비롯한 세부적인 드론비행에 관한 법규가 확립되지 않았고 카메라가 장착된 일부 드론에 대한 ‘사생활 침해’라는 선입견의 벽도 높다. 단순한 취미에서 심도 있는 기술을 습득하고 싶다면 자격증을 취득할 수도 있다. 자격증은 국가자격증과 민간자격증으로 나뉘고 필기, 실기시험을 거쳐 2년 안에 지도조종자의 자격을 획득할 수 있다. 드론은 현재 취미용으로 일반인들에게 많이 보급되어 있지만, 앞으로 군사용, 산업용에 개발을 박차게 되면서 새로운 직업군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키덜트 전시회를 연 일러스트레이터 GB DAY 작가는 키덜트 열풍에 대해 “과거 일본의 만화·SF영화 등 소수 분야의 마니아를 지칭한 ‘오타쿠’가 ‘광적으로 집착한다.’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한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되며 사회인식을 바꿀 수 있었던 가장 큰 공신은 SNS”라고 말했다. 취미활동을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매체가 된 SNS로 심도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힘이 세져 대중이 쉽게 접하고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키덜트 시장은 점점 확대되지만, 대중이 선호하고 사용되는 토종캐릭터의 수는 많지 않다. 80년대 컬러TV, 게임기, 댄스음악 등의 문화적 수혜가 쏟아졌고 이는 대부분 외국문화상품들이어서 유입된 외국캐릭터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먹고살기 급급했던 우리들의 현실에선 토종캐릭터 개발에 힘을 쏟을 만한 여력이 없었다. 키덜트 산업이 일러스트로 넘어가고 있는 지금 일러스트레이터 GB DAY 작가는 “우리나라 캐릭터산업을 활성화하기에 국내 수집문화형성이 여전히 한정돼 있다.”며 “토종캐릭터를 이용한 새로운 형태의 캐릭터 플랫폼을 만들고 이에 기업들은 국내캐릭터 육성을 위해 협업을 통한 캐릭터 갤러리, 박물관 설립 등 다양한 접근과 장기적인 홍보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돈이 되는 외국캐릭터의 활용보다 다양한 연령대가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캐릭터 개발에 대한 투자나 도전,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국내 토종애니메이션과 캐릭터에 대한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