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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전시/도서

화려한 음악으로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오라토리오 ‘메시아’ 의 작곡가 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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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드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600여명의 시드니합창단

기자는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뮤직페어라인의 황금홀에서 오라토리오 메시아전곡 공연을 본 적이 있다. 조금 지루함을 느낄 때쯤 유명한 할렐루야 코러스부분이 시작되자 관객들이 모두 일어서기 시작했다. 왜 일어서는지도 모르는채 따라 일어서서 합창부분을 들었다. 나중에 헨델이 메시아 초연당시 조지2세가 이 할렐루야 부분에서 기립을 한 이후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일이라는것을 알았다. 영국에서부터 시작된 기립은 200년이 넘은 지금도 전 유럽에서 통하며 헨델음악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있다. 그의 음악 속에 있는, 관객을 이끄는 그 음악의 힘을 느껴보자.

 

음악이 고프던 헨델의 유년시절

헨델은 1685223, 독일의 할레에서 작센의 아우구스트 공작의 궁정 이발사 겸 외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헨델은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또 천재적인 재능이 보였으나 그를 법률가로 키우려는 아버지의 반대가 너무나 심해 클라비코드라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 작고 부드러운 악기를 숨겨놓고 매일매일 연습하곤 했다. 그러다 8세 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할레 지방의 영주인 작센 바이센펠스 공작 앞에서 우연찮게 연주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때 공작은 그의 연주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고, 헨델의 아버지를 설득해 법률 공부와 병행한다는 조건을 달고 음악 수업을 받는 것을 허락했다.

그래서 작센 할레시의 본당교회의 작곡가이며 오르간연주자였던 차하우에게서 오르간, 바이올린과 오보에등 많은 악기들과 당시 음악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과목들 배우게 되었다. 언제나 꿈꾸기만 하던 음악공부를 하기 시작한 헨델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실력을 가지게 되어 17세 때에는 할레시의 본당교회의 오르간 주자가 되었다. 그의 음악은 할레시에서 음악에 관심이 많은 부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몇 해 동안 이탈리아에서 연주법을 완전히 익히고 작곡을 배울 수 있도록 자금을 대주겠다는 제의도 받았으나 헨델은 그런 제의를 단호히 거절하고 자기 힘으로 이탈리아에 갈 여비를 마련하려했다.

 

이탈리아에서 빛나던 그의 오페라

1703년 여름, 헨델은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동료 마테존과 함께 유명한 오르가니스트 부크스테후데의 연주를 들으러 뤼벡에 갔다. 이 사람은 이미 고령으로 후임자를 물색중이었는데헨델은 그 자리를 노렸으나, 그러려면 30살이 가까운 부크스테후데의 딸을 아내로 맞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하릴없이 돌아왔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다행히 헨델은 170520세 때 겨울 함부르크에서 오페라 알미라가 대성공을 거둬 나폴리,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에 3년동안 머물며 이탈리아 음악양식을 모두 익혔다. 베네치아에서 초연된 헨델의 신작 오페라 아그리피나의 성공 또한 대단했다.

 

런던에서 초연된 오페라 리날도

그리고 헨델은 나중에 영국의 조지 1세가 될 사람인 게오르그 루드비히의 간청으로 하노버로 가게 된다.

하노버의 루드비히는 남달리 음악을 좋아하여 궁정에는 호화로운 오페라 극장을 가지고 있었고 어디서도 볼수없는 정원 극장도 갖추고 있었다. 하노버에서 궁정의 음악장에 취임하고 그 다음해에 휴가차 런던에 온 헨델은 이 곳이 마음에 들었다. 오페라 리날도1711년에 런던 퀸즈극장에서 초연되어 절찬을 받았다. '리날도의 대표적인 아리아는 지금도 유명한 영화 파리넬리의 울게하소서이다. 십자군 전쟁때 전쟁의 영웅 리날도가 인질로 잡힌 자신의 연인을 구한다는 내용으로 오페라리날도의 성공으로 런던에서의 그의 지위는 높아져 런던으로 이주했다.

 

조지1세에게 헌정한 수상음악

하노버의 궁정악장으로 있다가 영국으로 휴가차 왔던 헨델은 돌아가지 않았다. 이에 하노버의 루드비히는 헨델에게 화가 많이 나 있었다. 그런데 하노버의 루드비히가 영국의 앤여왕이 죽자 영국의 왕으로 즉위한 것이다. 헨델은 어떻게 해서든 불편한 관계를 만회하고 싶어 조지1세가 템즈강에서 뱃놀이를 할때 50여명의 궁정악사를 다른 배에 태워 왕이 타고 있던 배 가까이에서 연주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이 음악이 마음에 들었던 조지 1세는 다시 헨델과 가까워졌다고 한다. 이 음악은 총 22곡으로 1시간가량 연주되고 모두 명랑하고 밝은 분위기의 곡이다.

 

여러 오페라상연 실패 후 헨델을 다시 살린 오라토리오메시아

런던에서 높은 명성을 얻은 헨델은 주위의 다른 작곡가들의 시샘을 견뎌내질 못하고 오페라상연을 거듭 실패하고 만다.

오페라의 작곡과 상연에 온 심혈을 기울였던 헨델은 마침내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허약해져서, 요양을 한 뒤에 다시 작곡에 몰두했다. 이때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작곡해 다시 영국인들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메시아는 지금도 클래식의 보물이라고도 평가 받는 곡이다. 3부의 곡으로 1부는 그리스도의 예언과 탄생‘ 2부는 수난과 속죄’ 3부는 '부활과 영원한 생명으로 총 250페이지가 넘는 악보를 24일 만에 완성해 헨델자신도 신께서 나에게 오셨던 것 같다라고 했을 정도이다. 1742413일에 더블린에서 초연되어 절찬을 받았는데 이후에도 계속 매진됐고 연주회장에 한명이라도 더 들어가기 위해 남자들은 검을 차지 못했고 여자들은 드레스를 부풀리는 패치코트를 금했을 정도라고 한다.

작곡가 하이든이 영국을 방문했을때 메시아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아 천지창조를 쓰겠다는 결심을 했다고도 전해진다.

 

왕궁의 불꽃놀이

1749년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을 멈추는 평화조약체결을 기념하기위해 국왕의 요청으로 작곡한 관현악곡이다. 4곡의 모음곡인데 불꽃이 오르기 전에 연주되는 서곡이 유명하다. 당시 101발의 불꽃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오발이 되어 화재가 나서 소동이 일자 헨델은 불꽃놀이나 불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했다고도 전해진다. 당시 제대로 연주는 못했지만 웅장하고 화려함으로 헨델의 대표적 작품이 되었다.

 

헨델의 말년

헨델은 1751년에 오라토리오 예프타를 작곡하고 있는 동안에 장님이 되었으며, 2의 고향인 런던에서 마침내 1759414, 성 금요일의 아침 8시에 귀하 후 34년간 살았던 집에서 눈을 감았다. 이 대작곡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3000여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다. 그리고 영국 국왕은 헨델이 음악에 남긴 공적을 기려서 그 유해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매장시켰다.

영국 최고의 역사적인 위인들이 묻혀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한 음악가의 묘로서는 아주 명예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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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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