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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전시/도서

눈으로 보는 미술과 귀로 듣는 음악,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바이올리니스트이자 화가 이민아 박사


(대한뉴스 조선영 기자)=20세기 현대음악가인 쇤베르크는 화가이자 작곡가였다. 그는 내면의 잠재된 감정을 표현하는 표현주의 음악과 표현주의 회화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세계대전 등 당시의 혼란의 시대적 상황을 무조성 12음 기법으로 난해한 곡을 작곡했고 그의 그림 또한 추상화다. 그의 친구인 칸딘스키는 쇤베르크의 음악을 들으며 추상화를 그렸다고 전한다. 또 반대로 드비쉬는 달빛을 피아노로 표현해 밤하늘의 달빛이 쏟아지는 모습을 상상하게 작곡했다. 이렇듯 음악과 미술은 서로 동떨어진 별개의 것이 아니며 함께 관객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다.

921일 인사동 갤러리 루벤에서 개인전을 앞둔 이민아 박사는 바이올리니스트이자 화가다. 기자는 인사동에서 그녀가 말하는 자신의 음악과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캘리포니아대학교 실내악, 음악치료 부문 박사학위 취득과 2022년 대한민국미술대전 41회 특선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음악과 미술을 겸하기가 쉽지 않은데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했는지요?

우선 열혈 어머니를 둔 덕이 제일 커요. 아마 막내딸 이여서인지 어머니께서 제게 예능을 시키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데요. 그래서 초등학교 입학하고 발레도 좀 배우고 했는데 보수적인 어머니 눈에 발레복이 맘에 안 들어 그만뒀어요. 그리고 초등 2학년 때 피아노를 시작했어요. 악보를 보고 음악에 대한 기본을 배웠는데 재미가 붙지 않고 영 실력이 느는 것 같지 않아서 다시 그만뒀어요.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다가 어머니의 권유로 아동 미술을 시작하게 되어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미술을 계속 배웠는데 그림 그리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그런데 당시 대학 교수였던 삼촌의 권유로 우연한 기회에 서울대 출신 선생님을 소개받고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되어 부산에서 서울로 유학을 와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 음악 세계가 이어지고 있어요.

 

미술을 더 좋아했는데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되었네요

, 그래서 항상 미술은 제 마음속 저 깊이에 묻어 두고 있었어요. 바이올린을 전공해도 언젠간 다시 그림을 그리리라 생각하며 말이죠. 그런데 바이올린이 운명이었나 봐요. 악기를 배우는데 오랜 기간 기초만 트레이닝을 시키는 겁니다. 다른 친구들은 힘들어 거의 그만두었는데 저는 선생님께서 하라는 데로 열심히 따라 했어요.

 

바이올린 선생님께서 특별한 교수법을 가지셨나봐요?

2 때 악기를 시작한 거라 다른 친구들보다 늦은 편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빨리 배워 곡을 연주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한 개의 음을 12시간 정도 연습해야 다음 음을 가르쳐 주셨어요. 힘의 원리를 알아서 활에 체중을 제대로 싣는 연습을 하라고 손목에 모래주머니를 채우고 힘을 빼야 된다고 물구나무서기를 시켰어요. 또 한창 공부해야 되는 시기에 도르래식의 팔의 움직임을 알아야 된다고 수영을 시키셨어요. 그 당시에는 선생님이 시키니까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따라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원리를 이해하고 기본기를 차근차근 잘 배운 덕에 대학에 들어가 제 실력은 순식간에 도약할 준비가 되어있었죠.

 

어린 나이에 힘들었을 텐데 끈기와 인내가 대단하시네요.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 저는 곡을 많이 하지 않아서 오케스트라 초견이나 연주가 너무 힘들었어요. 또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서 아이들 개인 레슨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아이들한테서도 많이 배웠고 특히 연습을 많이 했어요.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는 제 실력을 키워야 했으니까요. 저는 대학, 대학원 모두 입학할 때는 실력이 많이 부족했지만 졸업은 모두 수석으로 했어요. 처음엔 나는 안돼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엔 나도 되네가 되더라고요. 노력은 배신하지 않고 성취감은 음악의 즐거움을 배가 되게 만듭니다. 그래서 박사까지 욕심을 내서 체코 부르노 음대 연주학 박사를 취득해 교수가 됐고 또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실내악과 음악학 박사도 취득했어요.

 

어릴 때 생각한 대로 음악을 정복하고 미술을 다시 하신 건가요? 주로 그리는 그림은?

대학을 다니면서도 혼자 주말에는 그림을 그리러 가곤 했어요. 다행히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유화를 수채화처럼 그려나가며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되었어요. 선생님께서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나가보면 어떠냐고 권해서 나갔는데 입선을 했어요.

또 올해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는 특선을 받았어요. 그리고 921일부터 27일까지 인사동 루벤에서 개인전이 계획되어 있어요.

저는 풍경을 그리는 것을 좋아해요. 살아서 움직이는 바람과 물결, 꽃내음과 풀냄새, 그리고 따뜻한 햇살과 다양한 옷을 입고 있는 꽃과 사물들을 그리는 것을요. 그리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까 50이 넘은 나이에도 국전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 같아요.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와 그림을 그릴 때 언제가 더 행복하세요?

저는 반반이예요.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아요. 어릴 때부터 그저 그림 그리는 게 즐겁고 행복해서 같은 그림을 수백 번 그려도 전혀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았어요.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던 마음에 순수미술을 끝없이 공부했고, 밤을 새우며 작은 붓으로 배경을 그리고 물감이 마르는 시간 동안 또 다른 구상을 하며 구도를 상상하곤 했어요. 또 바이올린 연주를 하며 제가 보는 세상은 더 폭넓고 풍부해졌고, 음악을 통해 온 몸으로 느낀 나의 희열과 감정은 제가 그린 그림 한 점, 한 점에 스며들게 되었어요.

 

작년에 힘든 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작년에 딸을 하늘나라에 보냈어요. 제 딸 지윤이는 정신지체·뇌병변장애 1급으로 거동과 움직임은 불편했지만 항상 나에게 웃는 얼굴로 응원해 주었고, 내 인생의 모든 삶의 이유이자 전부였어요. 그런 딸 지윤이를 혼자 키웠지만 늘 행복했던 저는 음악과 미술의 세계에서 남들이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더 깊게 담아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더 나은 모습의 엄마, 더 당당한 엄마가 되어 지윤이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어 힘들었던 음악 박사 과정도 행복하게 이겨낼 수 있었어요.

제가 연주회가 있을 때 지윤이와 같은 장애를 가진 반 친구들을 점심으로 스테이크를 먹이고 음악회에 초대했어요. 예술의 전당에서는 40여명의 장애우가 관람한 것이 크게 이슈가 되기도 했어요. 주변의 사람들은 장애가 있는 딸을 돌보며 레슨하러 뛰어다니고 연습을 하고 그림도 그리려면 너무 힘들지 않냐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하지만 저는 어떤 어려움도 지윤이를 생각하면 큰 산은 평지가 되고, 큰 파도도 잔잔한 호수가 된 것처럼 마냥 즐겁기만 했어요. 제 눈엔 장애우가 아닌 제 딸이니까요. 지금은 지윤이가 없는 세상에서 이 땅에서 혼자서 그림을 그리고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지만, 그 시간은 제가 지윤이를 만나는 또 다른 시간이고 제 삶의 한 조각과도 같아요.

 

하고 싶은 말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들도 있겠지만, 사람은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그 모든 것에 시간을 집중해서 쏟느냐가 굉장히 다른 결과를 가지고 오게 됩니다. 지금은 더 나은 연주와 그림으로 제 삶을 녹여내기 위해 앞으로도 배움을 멈추지 않을 꺼예요. 노력이 쌓여 만들어진 제 인생의 탑은 너무 귀합니다. 나를 말없이 응원해주고 뒤에서 뿌듯해 하는, 마음이 따뜻한 어머니,든든한 큰오빠 이덕형, 작은오빠 이지형, 힘들 때 격려해 주고 기도해 주는 친구들 교회정관창 목사님과 교회 동료들, 옆에서 제게 힘이 되어주는 친구들. 그리고 제가 가진 역량을 끝없이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가르쳐 주시는 존경하는 선생님들, 이 모든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제가 이렇게 서서 오늘도 같은 길을 새로운 마음으로 걸어가고 있지 못할 것입니다. 끝으로 제 인생을 이끌어 나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우리는 가끔 언론을 통해 천재들의 탄생을 듣는다. 천재적인 실력을 가진 이들은 과연 훌륭한 선생님일까? 답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는지 방법을 모른다. 천재는 그냥 잘하니까 말이다.

이민아 박사의 인터뷰를 하고 나니 왜 제자들이 많은지, 왜 오랫동안 곁에서 배움을 멈추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 연습을 통해 얻은 성과의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학생들에게 괜찮아, 나도 잘 못했어, 하지만 지금은 이 자리에 있잖아. 너도 잘할 수 있어라는 용기를 줄 수 있는 것 같다.

예술가란 자신이 가진 연주 실력이나 그림 그리는 실력 등 기술을 가지고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 박사는 연주를 할 때 머릿속에는 빈 캔버스를 상상한다고 했다. 한음 한음 연주할 때마다 캔버스에는 한 번 한 번 붓질을 한다. 곡이 완성되면 그 옆에 또 하나의 그림이 같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민아 예술가의 연주와 그림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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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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