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전국체육대회의 막이 올랐다. 사진은 입장식 광경(52.10.18) 1952년 당시 19개 종목에 출전 선수는 3300명이었고 2024년 105회 전국체육대회는 49개 종목에 2만여 명의 선수들이 경쟁하고 있다.
전국민 쥐잡기대회, 담배만들기 대회, 교통정리대회, 교련실기대회, 우량아 선발대회등 지금 들으면 이름도 생소한 별난 경기들이지만 이 속에는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당시의 사회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금은 컴퓨터의 보급으로 구시대 유물이 됐지만 타자경진대회도 60-70년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1956년 국무회의에서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정했다. 정부는 1956년부터 국군의 날 기념행사를 하고있다.
한미재단으로부터 인수받은 관광버스로 외국인 충남 공주 갑사 방문
북악터널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에서 성북구 정릉동을 잇는 길이 약 810M, 쌍굴형태로 조성된 정릉로의 왕복 4차선의 터널이다. 서대문구 홍은동, 종로구 부암동 지역에서 성북구 정릉동, 도봉구, 동대문구 방향에 이르는 도로로써 동서 지역 간의 교통소통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당초 1971년 준공시에 터널은 순차선 너비 9.7m였지만 갓길 및 통행에 필요한 공간이 필요해 좌우 각각 1.2m가 넓게 조성되었다. 현재 너비 12.1m, 높이 6.25m이다.
목욕탕의 성장은 곧 우리나라 산업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1960년대 경제개발에 착수하면서 위생시설 보급 문제가 대두되었는데, 이 시기 정부는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목욕탕 설립을 추진한다. 삶의 질을 높인다기보다는 전염병 등 공중보건에 대응하는 측면이 컸다. 목욕은커녕 세수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시절, 비록 외관은 초라했으나 마을마다 입구에 ‘건강’이라는 문구가 적힌 공동목욕탕이 들어섰다. 노동회관에서도 노동자들을 위한 욕탕을 마련했다. 덕분에 위생에 대한 관념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59년에 외국영화가 203편 수입될 정도로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 전성기를 구가하듯 ‘영화의 날’ 행사가 개최된 서울 명동 시공관 앞이 시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이날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연속 상영. 12,000명 이상의 관람인원을 돌파했다. 명동 시공관은 국제극장에서 1947년 12월에는 시공관(市公館)으로 개칭하고 영화관 및 극장으로 사용되었다. 1957년 6월 1일, 명동예술회관으로 개칭하였으며, 국립극장이 되었다. 1973년 폐쇄 이후 36년을 거쳐 2009년 6월 5일 명동예술극장으로 다시 개관했다.
1960년대 초까지 한강대교 인근 모래사장에서 수영을 즐길 수도 있었다. 둔치가 모래사장이었고 피서철에 한강에서 수영을 즐기는 모습은 매우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인구 유입이 계속되면서 각종 산업 시설도 들어서고 각종 공장에서 흘러나온 오폐수와 생활 하수가 한강으로 유입되며 한강의 수질이 나빠졌고, 수영도 금지되었다. 지금은 신고 후 수상레저는 이용가능하다.
경인고속도로는 고속국도 제120호선이다. 1967년 3월 24일 착공하여 1968년 12월 21일에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이다. 실제 건설은 29.5㎞로 건설되었으나 1985년에 현재의 제물포길에 해당하는 서울특별시 양평·신월 구간 5.6㎞는 서울시로 이관되어 현재의 총연장은 23.9㎞이며, 기점은 인천광역시 남구 용현동이고 종점은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월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