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설비리·학력조작·매관매직까지
`모바일 상품권' 등 촌지문화도 진화
※편집자주 = 최근 검찰수사를 계기로 교육계의 고질적이고 관행적인 비리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이명박 대통령이 척결을 언급하고 나설 정도로 교육비리는 심각한 사회병폐로 지적된다. 이에 연합뉴스는 선진사회로의 진입을 가로막는 우리 사회의 교육비리 실태와 구조적인 원인, 전문가가 제시하는 대책 등을 3꼭지로 나눠 살펴봤다.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 서울지역 일선 학교의 시설공사와 방과후학교 비리 의혹 캐기로 시작된 검찰의 수사가 서울시교육청 고위층 인사들의 `매관매직(賣官賣職)'까지 파헤치는 쪽으로 확대되면서 교육비리와 전면전 양상을 띠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3일 `척결'이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교육비리 근절을 주문한 상황이어서 교육계에 대한 사정작업은 더욱 강도높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뿌리깊은 환부 `시설비리' = 교육 관련 비리는 각종 시설비리에서 교사의 촌지 수수에 이르기까지 매년 일선 학교에서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고질적인 병폐다.
그중에서 가장 만연해 있는 것이 칠판, 급식, 교과서 등 각종 자재나 시설 관련 비리다.
서울지역에서 작년 9월 부적격 칠판을 사주는 대가로 뒷돈을 챙긴 학교장들이 무더기로 적발되면서 교직사회의 부조리가 도마 위에 올랐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적발된 교직원은 모두 19명으로 숫자도 적지 않을뿐더러 현직 교장 13명이 연루됐다는 점에서 교직사회의 비리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만연해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2006년 10월 드러난 광주시의회의 신설학교 기자재 등과 관련한 납품비리도 학교 시설 비리의 한 사례로 꼽힌다.
당시 행정사무조사위원회가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A초등학교 등 일부 학교는 기자재ㆍ비품 명세서 작성에 도움을 준 특정업체와 계약을 한 것으로 밝혀져 유착 의혹이 불거졌다.
명세서에 수입품이라고 명시돼 있지 않음에도 국내산보다 약 40%가량 싼 중국산 책상과 탁자를 샀는가 하면 32만원으로 책정된 명세서와는 달리 10만원대의 저렴한 침대를 산 사례도 꽤 됐다.
광주시교육청은 2004년 24개 신설학교의 비품ㆍ기자재 구입 예산으로 53억3천600만원을 썼다.
이 같은 시설비리 행태를 분석해 보면 업자들이 먼저 교육공무원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교직원이 노골적으로 업자에게 금품을 요구하고 향응을 받은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일선 교사들 사이에는 교장 등이 수학여행때 입찰을 거쳐 선정하도록 돼있는 여행사를 이미 내정한 상황에서 입찰을 형식적으로 한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일선 고교의 한 교사는 "수학여행 때 교사는 인솔자라는 명분으로 공짜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모두 학생들 호주머니에서 지급된 것 아니겠느냐"며 씁쓰레 했다.
인천 모 초등학교 교사는 "업체 관계자들이 자주 교장실을 드나든다. 교장실에서 뭘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며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학력부정ㆍ인사비리도 `점입가경' = 시험문제 유출과 같은 학력부정과 `매관매직' 등의 인사비리가 시설비리보다 심각하다는 지적이 있다.
2005년 2월 서울 M고 교장과 교감, 교사들이 2001∼2002년 학부모로부터 돈을 받고 성적을 조작한 혐의가 드러나 2명이 구속되고 성적조작을 부탁한 학부모 등 4명이 불구속 입건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또 비슷한 시기 모 고교 교사가 검사 아버지를 둔 학생의 답안지를 고쳐줬다가 적발되고, 또 다른 고교 교사는 성적조작과 시험지 유출은 물론 학생회장 선거에까지 개입해 금품을 받은 사건이 드러나 교육계에 큰 파장을 초래하기도 했다.
더욱이 최근에는 검찰 수사에서 서울시교육청 고위 공무원들의 `매관매직' 실태가 드러나면서 교육계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현재까지 장학사와 장학관, 현직 교사 등 4∼5명이 구속 또는 불구속 입건되고 전·현직 최고위 인사를 비롯한 수십 명이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는 말까지 돌고 있어 사태가 어디까지 확산할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학생·학부모 이기심도 `한몫' = 이처럼 교육계에 각종 비리가 만연하게 된 데는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일부 학부모의 비뚤어진 이기심도 한 몫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1999년 검찰의 교육계 비리수사 과정에서 발견된 모 초등학교 여교사의 `촌지기록부'에는 이 교사가 담임을 맡은 반 학생 30여 명의 명단이 적혀 있고, 1년간 학부모들에게 받은 촌지액수와 선물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학기초와 스승의날이 들어 있는 5월에는 이 교사가 받은 촌지와 선물 합계액이 300만∼400만원 대에 달할 정도로 촌지 규모가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올해 초ㆍ중ㆍ고 자녀를 둔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도 교육계에서 촌지가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학부모 가운데 `촌지 제공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약 5명 중 1명인 18.6%에 달했던 것이다.
촌지 전달방식도 진화해 최근에는 현금, 상품권 등을 주고받기 어려워지자 휴대전화를 이용한 모바일 상품권 수수가 유행한다는 소문도 학부모 사이에서 나온다.
학생들의 이기적인 행태도 문제다. 200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이용해 부정행위를 저지른 수험생들이 무더기로 적발된 것도 "어떻게든 좋은 점수를 받고 보자"라는 이기심에서 비롯됐다.
대학생, 고등학교 재학생 및 선후배 등이 연루된 이 사건으로 14명이 구속되고 165명이 불구속 입건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고, 교육당국은 수능 고사장에 휴대전화 반입을 전면 금지하는 법까지 마련하게 됐다.
jslee@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