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명성 악용한 동영상 유포ㆍ신상 공개 판쳐
"네티켓 교육ㆍ예방 노력 기울여야"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 지난 11일 경기 고양시의 한 중학교 졸업식에서는 충격적인 `알몸 뒤풀이'가 벌어졌다.
같은 중학교 출신인 고교생 선배들이 이날 졸업한 후배들을 불러내 한겨울 추위에 속옷을 벗을 것을 요구했다. 옷 벗기를 거부한 일부 학생들은 강제로 옷을 찢어 알몸을 드러내게 했다.
더구나 이런 모습은 캠코더와 카메라로 촬영된 뒤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졌다. 일부 사진에는 학생들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됐다. 사진이 올라간 사이트에서는 피해학생의 신상 정보까지 거론됐다.
수치심에 시달리던 피해학생과 학부모는 사진과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학생을 처벌해달라는 고소장을 경찰서에 냈다.
◇ IT강국 무색케 하는 `인터넷 폭력'
우리나라는 인터넷 강국이다.
미국의 웹트래픽 전문업체 아카마이에 따르면 한국의 인터넷 평균 속도는 14.6Mbps로 세계 1위다. 인터넷 이용률은 75%에 달해 전 세계 평균(23%)의 세배를 넘는다.
하지만 인터넷 문화도 가장 앞섰는지는 미지수다. 넘쳐나는 음란물과 불법 다운로드, 쏟아지는 스팸 메일 등은 인터넷 강국이라는 말을 무색케 한다. 후진국 수준이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최근에는 인터넷 문화를 자성케 하는 또다른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바로 `인터넷 폭력' 문제다.
인터넷 댓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급한 비난과 욕설은 한 순간의 감정이 분출된 결과라는 변명이 가능할 지 모른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 상에서 특정한 인물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의도적인 공격 양상은 `폭력'이라는 단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키 작은 남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던 한 여대생은 순식간에 자신의 사진, 출신학교, 행적 등 온갖 신상정보가 인터넷에 유포돼 일상적인 생활까지 힘들어지는 곤경을 겪었다.
또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은 여성에게 앙심을 품은 한 남성이 `조직폭력배인 남자친구를 시켜 나를 폭행했다'는 거짓 루머를 퍼뜨려 이 여성이 네티즌들의 지탄을 받게 만든 사건도 있었다.
최근 수년 새 잇따르고 있는 연예인들의 자살 사건도 `악플'로 불리는 네티즌들의 악성 댓글이나 비방성 루머가 배후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 익명성 악용한 폭력.."정신적 후유증 커"
인터넷 폭력에 대해 전문가들은 `익명성을 악용한 폭력'이라는 진단을 내놓는다.
익명성이 인터넷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다. 인터넷 토론방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는 토론이나 부당한 행태 등에 대한 제보 등은 사실 익명성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하지만 익명성을 악용할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인터넷 폭력의 배후에는 남의 신상을 드러내거나 피해자의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더라도 자신의 신분은 밝혀지지 않으리라는 음험한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
알몸 뒤풀이 사건을 수사하는 일산경찰서의 황의민 형사계장은 "(동영상이나 사진을 올린 것이) 과시하기 위한 건지 아니면 재미삼아 그런 건지 모르겠다. 여하튼 자신은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터넷 폭력의 피해자는 심각한 정신적 상처를 입게 된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등은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무서운 범죄행위로 볼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의 홍진표 정신과 교수는 "자신이 모욕을 당하거나 비굴해지는 모습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은 당사자에게 엄청난 정신적 충격과 후유증을 주게 된다. 자칫하면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이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전쟁, 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겪은 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지속적인 심리적 고통과 공포감을 느끼는 정신질환이다.
◇ "교육과 예방 노력 기울여야"
전문가들은 더 이상의 인터넷 폭력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인터넷 윤리 교육과 예방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많은 네티즌들이 알몸 뒤풀이와 같은 동영상, 사진 등을 인터넷에 올리거나 남의 신상을 공개할 경우 처벌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는 분명한 범죄 행위다.
형법에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제307조)는 조항이 있다.
또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제70조)는 조항도 있다.
인터넷문화협회의 박천욱 사무처장은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이러한 행위가 범죄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무엇보다 네티즌 스스로 죄의식을 가지고 이러한 행위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네티즌의 클릭 수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폭력적이거나 저급한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걸러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서 인터넷 윤리나 `네티켓'으로 불리는 인터넷 예절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정보윤리사업부의 김봉섭 박사는 "인터넷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그 윤리 수준은 이용도에 비해 상당히 뒤떨어져 있다. 어려서부터 도덕, 사회 등 주요 과목에서 인터넷 윤리를 교육시켜 양식과 품격을 갖춘 네티즌을 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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